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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보는 하늘은 얼마나 화려한 지

장영희 서강대 영문과 교수
신은 인간의 계획을 싫어하시는 모양이다. 올가을 나는 계획이 참 많았다.
이제껏 연재했던 ‘문학의 숲’을 책으로 묶어 내는 일, 여름에 쓰던 논문을 마무리하는 일, 번역 한 권을 새로 시작하는 일, 그리고 올해만은 꼭 어머니와 함께 가을 여행을 떠나는 일 등…. 이 계획들이 다 성사된다면 난 참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장영희의 삶은 그런대로 잘 나가고 있다고 자부했다.

3년 전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안식년이라 나는 하버드대 방문교수 자격으로 보스턴에 있었다.그냥 무심히 보험료 밑천 뺀다고 건강 검진하다가 대번에 유방암 판정을 받고 그곳에서 수술 두 번 받고 귀국, 방사선 치료 받고 깨끗이 완치되었다. 학교에도, 가까운 친지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말끔히 마무리한 셈이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흠, 역시 장영희군. 남들이 무서워서 벌벌 떠는 암을 이렇게 초전박살내다니….”

그러다가 된통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지난 여름부터 느꼈던 허리와 목의 그 지독한 통증이 결국은 유방암이 목 뒤 경추 3번으로 전이된 때문이고, 척추암이라고 했다.

“빨리 입원하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이상하게 나는 놀라지 않았다. 꿈에도 예기치 않았던 일인데도 마치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듯, 그냥 풀썩 주저앉았을 뿐이다.

뒤돌아보면 내 인생에 이렇게 넘어지기를 수십 번, 남보다 조금 더 무거운 짐을 지고 가기에 좀 더 자주 넘어졌고, 그래서 어쩌면 넘어지기 전에 이미 넘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넘어질 때마다 번번이 죽을 힘 다해 다시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나는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넘어져 봤기에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입원한 지 3주째, 병실에서 보는 가을 햇살은 더욱 맑고 화사하다.

‘생명’을 생각하면 끝없이 마음이 선해지는 것을 느낀다. 행복, 성공, 사랑―삶에서 최고의 가치를 갖고 있는 이 단어들도 모두 생명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한낱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살아 있음’의 축복을 생각하면 한없이 착해지면서 이 세상 모든 사람,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가슴 벅차다.

그러고 보니 내 병은 더욱 더 선한 사람으로 태어나라는 경고인지도 모른다.입원하고 나흘 만에 통증이 조금 완화되고 나서야 나는 처음으로 다리 보조기를 신고 일어섰다. 그리고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문득 내 발바닥이 땅을 딛고 서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강한 희열이 느껴졌다. 직립인간으로서 직립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지, 누워서 보는 하늘이 아니라 서서 보는 하늘은 얼마나 더 화려한 지….

새삼 생각해 보니, 목을 나긋나긋하게 돌리며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는 일, 온몸의 뼈가 울리는 지독한 통증 없이 재채기 한 번을 시원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모르고 살아왔다.

이제 꼭 3년 만에 일단 이 칼럼을 접으려고 한다. 언젠가 이 칼럼에 ‘또 다른 시작’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거의 완성된 논문을 잃어버리고 다시 써야 했던 일, 완성된 논문을 도둑에게 헌정한 일화를 얘기하면서 나는 포크너의 말을 인용했다.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 그렇다. 문학은 삶의 용기를, 사랑을, 인간다운 삶을 가르친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삶을, 그들의 투쟁을, 그리고 그들의 승리를 나는 배우고 가르쳤다. 문학의 힘이 단지 허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떠나기 전,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우선 소중한 지면을 내게 할애해 준 조선일보에 감사한다. 위대한 작품을 남겨준 작가들이 너무 고맙고, 변변치 못한 선생을 두어 걸핏하면 내 글의 소재가 되는 나의 학생들에게도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글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독자 여러분, 당분간은 ‘영미시산책’에서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장영희 서강대 영문과 교수

[조선일보 2004-09-25 16:38]

<장영희 교수님, 일어나세요!>

서강대 장영희 교수님이 척추암으로 입원했다는 소식을 얼마전 접했다. 그리고 며칠 뒤 Books ‘문학의 숲’ 코너를 통해 장 교수님이 직접 쓰신 작별인사를 읽었다. 그동안 장 교수님의 ‘문학의 숲’을 읽으며 숨이 탁 트이는 듯 가벼워졌던 가슴이 이번에는 끝도 없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동안 장 교수님의 ‘영미시 산책’을 읽으며 얼음물에 담근 듯 맑아졌던 시야도 도시 스모그 속으로 걸어들어간 양 한순간에 막막해졌다. 장 교수의 글을 통해 감동과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낄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거칠고 숨가쁘지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또 그 사실을 장 교수만큼 미려한 문체를 통해 감동적으로 전할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는 것을.

단발머리 차림으로 미소짓는 사진과 함께 실리는 장 교수의 글을 읽고 있자면 영미시와 문학을 읽으며 ‘사랑’과 ‘인생’을 예찬하는 행복한 여인의 얼굴이 겹쳐지곤 했다.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즈의 시 ‘다름아니라(This is just to say)’에 등장하는 아침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몰래 꺼내먹은 얼음상자 속 자두(the plums in the icebox)처럼 그녀의 글은 너무나 달고 맛났다.
그러나 알고 보면 장 교수는 생후 1년 때 앓은 척수성 소아마비로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1급 장애인이다. 초등학교 이후 상급 학교들이 신체적 장애를 이유로 그녀가 입학시험을 치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아 그녀의 아버지께서 일일이 학교들을 찾아다니며 사정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조선일보에 실린 ‘아버지의 추억’에서 밝힌 바 있다.

대학들 역시 장애인이 합격해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그녀가 입학시험 치르는 것을 거절해 그녀의 아버지는 당시 서강대학교 영문과 과장님이셨던 브루닉 신부님에게까지 찾아갔다. 미국인인 그 신부님은 너무나 의아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무슨 그런 질문이 있는가. 시험을 머리로 보지 다리로 보는가.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험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라고 반문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두고두고 그때 일을 말씀하셨다고 장 교수는 썼다. 나도 두고두고 그 일화가 생각났다.

메마른 우리 사회에 맑은 숨결을 불어넣어 준 장 교수의 아름다운 글들은 그 벽안의 신부가 아니었으면 영영 만나지 못할 뻔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그분께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우러난다. 또한 그녀의 아버지(번역가이자 영문학자인 故 장왕록 박사)가 장애인 딸을 포기하지 않고 그녀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학교에서 똑같이 고등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을 잃지 않은 것이 나는 너무나 고맙다.

그 같은 아버지 밑에서 ‘의지와 노력으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배우며 자라서인지 장 교수는 명랑하고 강인하다.

그녀는 하버드대 교환교수로 보스턴에 있던 몇년 전, 굴지의 부동산회사와 싸워 ‘작은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어느날 장 교수가 살고 있는 하버드대 인근 벨몬트의 7층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났는데 맨 꼭대기인 7층에 사는 장 교수는 목발에 의지해 올라가는 데 꼭 2시간이 걸렸다. 다음 날 그녀는 아파트를 관리하는 부동산 회사에 “정상적인 학문 및 사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를 고칠 때까지 호텔로 옮겨달라”고 요구했지만 회사측은 거부했고, 1주일 내 수리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녀는 부동산 회사의 부당성을 고발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고 벨몬트 시의회에 연락했으며, 지역 언론들에 보도되면서 비로소 부동산 회사가 급한 불 끄기에 나섰다.

결국 3주가 지난 5월 초에야 엘리베이터는 다시 운행을 시작했지만 회사측은 장 교수에 대한 사과와 함께 두 달치 집세 2600달러(약 338만원)를 안 받기로 했고, 이후 장애인에 대한 최우선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힘없는 소수가 부당한 거대 권력을 상대로 일구어낸 작은 승리였다.

이런 의미에서일 것이다. 그녀가 “흠, 역시 장영희군. 남들이 무서워서 벌벌 떠는 암을 이렇게 초전박살내다니….”라고 쓴 것은.

남들보다 다리가 불편하면 남들보다 생각을 많이 하고, 남들보다 노력을 많이 하고, 남들보다 열배 백배 굳은 의지로 지금껏 그녀는 숱한 난관을 헤쳐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솟아나는 도전의 열정을 그녀는 즐거이 받아들였다.

장 교수는 2000년 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샘터)을 낸 직후 한 인터뷰에서 “덤덤한 삶을 혐오한다”고 했고 “습관화된 삶보다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현기증나는 삶이 백배는 재밌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든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해야 ‘사는 맛’이 느껴진다고 한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그녀에겐 유일무이한 ‘삶의 동반자’가 있다면 “주체할 수 없는 폭발적인 삶의 열정”이었다.

그러나 장 교수가 존경을 받는 것은 그 ‘투사’로서의 열정과 전투력 뿐만이 아니라 그같은 ‘전투적 삶’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남들보다도 더 풍요롭고 넉넉한 감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William Blake의 시 ‘순수를 꿈꾸며(Auguries of Innocence)’에서처럼 그녀는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발견하는(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능력이 있었다.

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은 생명 자체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감사를 표하는 글들로 가득하다. 그녀는 삶이 한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곤두박질 칠 때조차도 끊임 없이 ‘죽음’이 아닌 ‘삶’을 노래했다. 사소한 것에서도 생명을 발견하고 경탄의 노래를 이끌어내는 능력으로 장 교수는 국어문화운동본부(회장 남영신)로부터 ‘2002 올해의 문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소설가 이청준은 그녀의 글에 대해 ‘어둠을 밝음으로, 좁음을 넓음으로, 낮은 것을 높음으로, 작은 삶을 큰 삶으로 바꾸어가는 이야기들… 자신을 삶의 한 결핍의 기호로 내세워(실은 참사랑의 씨앗으로 삼아!) 그것을 자신과 가까운 이웃들의 삶 속에서 부끄럼 없이 채우고 한층 높고 값진 삶을 창조해 나가는, 수많은 결핍을 치유하고 더 높은 창조의 활력으로 삼기에 충분한 한 편의 사랑의 전도서’라고 칭송했다.

What is this life if, full of care, 무슨 인생이 그럴까, 근심에 찌들어
We have no time to stand and stare 가던 길 멈춰서 바라볼 시간 없다면
No time to see, when woods we pass, 숲 속 지날 때 다람쥐들이 풀숲에
Where squirrels hide their nuts in grass. 도토리 숨기는 걸 볼 시간 없다면
No time to see, in broad daylight, 한낮에 밤하늘처럼 별이 가득한
Streams full of stars, like skies at night 시냇물을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위의 W. H. 데이비스의 시 ‘여유(Leisure)’를 장 교수가 ‘영미시 산책’에서 소개했을 때 나는 험난한 소식으로 가득한 신문 한 구석에서 장 교수의 글을 읽는 것이야말로 바로 ‘가던 길을 멈춰 시냇물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교수는 이 시에 대한 짧은 해설에 이렇게 썼다.

<시인이 볼 때 우리는 분명 가던 길 멈춰 서서 바라볼 시간이 전혀 없는 딱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조금 더 높은 자리, 조금 더 넓은 집, 조금 더 많은 연봉을 쫓아 전전긍긍 살아가며 1억이든 2억이든 통장에 내가 목표한 액수가 모이면, 그때는 한가롭게 여행도 가고 남을 도우며 이런저런 봉사도 하면서 살리라 계획합니다. 인생이 공평한 것은, 그 누구에게도 내일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겁니다. 어느 날 문득 가슴에 멍울이 잡힌다면, 아픈 심장을 잡고 쓰러진다면, 그때는 이미 늦은 건지도 모릅니다. 길을 가다가 멈춰 서서 파란 하늘 한 번 쳐다보는 여유, 투명한 햇살 속에 반짝이는 코스모스 한 번 바라보는 여유, 작지만 큰 여유입니다.>

이런 생에 대한 교훈이 더이상 필요치 않은 장 교수에게 작은 여유마저도 삶은 허락치 않으려나 보다. ‘가슴의 멍울’이 겨우 치유됐는데 이번엔 척추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으니까. 그러나 장 교수가 이번에도 희망과 열정을 잃지 않고 또다시 하나의 장애물을 뛰어넘어 애독자들에게 돌아올 것을 믿는다.

에밀리 디킨슨의 ‘희망은 한 마리 새(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라는 시에 대해 장 교수 스스로가 쓴 것처럼.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 희망은 한 마리 새
That perches in the soul 영혼 위에 걸터앉아
And sings the tune without the words 가사 없는 곡조를 노래하며
And never stops at all…. 그칠 줄을 모른다(…)
I’ve heard it in the chilliest land And on the strangest sea, 아주 낯선 바다에서도 들었다.
Yet never in extremity 하나 아무리 절박한 때에도 내게
It asked a crumb of me. 빵 한 조각 청하지 않았다.
<희망은 우리의 영혼 속에 살짝 걸터앉아 있는 한 마리 새와 같습니다. 행복하고 기쁠 때는 잊고 살지만, 마음이 아플 때, 절망할 때 어느덧 곁에 와 손을 잡습니다. 희망은 우리가 열심히 일하거나 간절히 원해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상처에 새살이 나오듯, 죽은 가지에 새순이 돋아나듯, 희망은 절로 생기는 겁니다. 이제는 정말 막다른 골목이라고 생각할 때, 가만히 마음속 깊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한 마리 작은 새가 속삭입니다. “아니, 괜찮을 거야, 이게 끝이 아닐 거야. 넌 해낼 수 있어.” 그칠 줄 모르고 속삭입니다.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병들고도 병든지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교수님이 들려주신 이 희망의 메시지를 이제는 교수님께 돌려드리고 싶다. 남들 같으면 벌써 쓰러졌을, 몇번의 거센 폭풍우에 부딪혔지만 ‘그덕에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는 그녀. 독자들의 격려와 눈물과 염원이 한마리 새가 되고 노래가 되어 교수님의 그 맑은 영혼에 닿길 바라며…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또다시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치는, 그 절절한 문학 이야기를
교수님의 ‘문학의 숲’ 코너를 통해 다시 듣고 싶다.

이자연 조선일보 기자
2004/09/27 1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