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군단의 개미사랑이 필요합니다 [장애인과 일터]

푸르매재단 상임이사 백경학

지난 8월 17일 재활 전문병원 설립을 위한 푸르메재단이 발족되었다. 푸르메재단의 주축은 옥토버훼스트라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재단 설립을 준비해 온 백경학 씨(41). 일간지 기자였던 그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아내가 장애인이 되고 치료를 받는 과정 속에서 재활병원 설립을 결심하고 사업을 시작하여 재단까지 설립하게 된 사연을 들어본다.

8월 19일 옥토버훼스트 강남점에서 백경학 씨를 만났다. 그가 운영하는 옥토버훼스트는 강남 본점과 종로 지점이 있는데 독일식 맥주 전문점이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맥주를 직접 양조해서 판매하는 것으로 이미 유명해진 곳이다. 언뜻 보기엔 번화한 시내에 있는 분위기 좋은 맥주집이지만 거기엔 450만 장애인들의 재활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인생의 행로까지 바꾸며 땀흘리고 있는 사장 백경학 씨와 그를 도운 많은 사람들의 뜻이 모아져 있다.

아내가 세 번 다리절단 수술을 받으면서 겪은 재활병원들

그는, 96년 동아일보 기자로서 서울언론재단의 기자연수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독일에서 2년 간의 공부를 마치고 귀국 직전 스코틀랜드를 잠시 방문했다. 2년 간의 외국생활을 마무리하려던 가슴 설레는 여행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아내, 딸과 함께 드라이브를 하던 중 잠시 차를 세우고 아내가 물건을 꺼내려 트렁크 앞에 선 순간, 두통 약을 과다복용하고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은 운전자가 모는 차가 들이받는 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뒤에서 시속 100km의 속도로 달려오던 차를 온몸으로 받았던 아내는 세 차례의 다리 절단 수술을 받고 2개월 동안 혼수상태에 빠진 채 생사의 갈림길을 헤매야 했다. 사고 후 스코틀랜드 병원에서 2개월, 독일 뮌헨 병원에서 4개월 동안 치료를 받고 귀국해 국내 대학병원 재활병동에 다시 입원, 재활치료를 받았다.
“우린 영국, 독일 그리고 국내의 재활병원 생활을 해보았죠. 그런데 사고 직후 영국과 독일 병원에서 지낼 때보다, 어느 정도 체력이 회복되었는데도 국내 병원에서 생활할 때가 훨씬 힘들었다”라고 백 대표는 털어놓는다.
영국의 병원은 국내 대학병원들처럼 고층건물이 아니라 저층이어서 병실을 나가면 바로 정원으로 연결되어 편안한 마음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독일 병원에서는 간호사 2명이 한 조가 되어 조별로 교대를 하면서 24시간 내내 환자를 돌보기 때문에 가족은 환자의 치료와 함께 생업을 충분히 병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국내 병원은 간병인 제도나 간호 시스템이 미비한 탓에 방문객들이 수시로 들락거리고, 환자 가족들이 병원에다 살림을 차리다시피 해서 매달려야만 했다. 또한 2개월 이상 입원하면 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장기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은 2개월에 한 번씩 병원을 옮겨 다녀야 했다. 그런 현실을 보면서 백 대표는 전문 재활병원을 꼭 우리나라에 세워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백경학씨가 운영하는 옥토버 훼스트

장애인, 장애인가족들의 관심이 필요

아내의 치료와 생업을 병행하고 병원 건립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그는 동아일보사 기자직을 그만두고 지인들과 함께 투자를 해서 옥토버훼스트 본점을 열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의 뜻에 동조한 많은 지인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그를 돕고 나섰다. 다행히 사업은 번창했고 재활병원 건립의 꿈은 영글었다. 그는 영국에서 보내온 보상금 1억 원과 자신의 옥토버훼스트 지분 10%를 합해 3억 원을 재단 건립을 위해 내놓았다.
“원래는 좀더 나중에 재단을 설립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을 추진해 갈수록 실체가 있는 조직과 구체적인 사업계획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초 생각보다는 앞당겨 재단을 설립하게 된 것이죠.”
재단발족 기사가 나가자 여기저기서 소식이 끊겼던 지인들이 연락을 해왔다. 그리고 장애인이나 장애인 가족들이 전화를 해서 고맙다며 마음을 함께 나누기도 하고, 후원의사를 밝히는 사람들도 많았다.
백 대표는 “어려움을 겪어 본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아픔을 가진 장애인, 장애인 가족들이 재활병원 건립에 함께 참여해 주셔야 합니다. 우리의 재활병원을 건립하기 위해서는 개미군단의 개미사랑이 필요합니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푸르메 재단에는 강지원 어린이 청소년포럼대표,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 박원순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 이정식 CBS 사장, 안국정 SBS 부사장, 김성구 샘터사 사장, 김용해 서강대 학생처장, 이상기 한국기자협회 회장 등이 뜻을 함께 해 동참하고 있으며, 일반시민 및 기업 회원을 대상으로 ‘100억 원 기금조성 운동’을 벌여 우선 서울 근교에 2007년 말까지 150병상 규모의 전문 병원(혈관 및 척수전문)을 세울 계획으로 있다. 향후 제2, 제3의 전문재활병원도 구상 중이다. 병원은 철저히 자원봉사자 위주로, 24시간 간병체제로 운영될 예정이다. (옥토버훼스트 (본점강남) : 02-3481-8882, (종로지점) 02-738-8881 www.oktoberfest.co.kr)
* 푸르메재단

서울시 종로구 청진동 136번지 삼공빌딩 지하1층
Tel : 02-720-7002
www.purme.org, (한글도메인 : 푸르메재단)

푸르메재단 발대식
취재 박은몽 기자

장애인과 일터(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2004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