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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만드는 인간 정수기 아름다운재단 월간지 <콩반쪽>

글/ 아름다운재단 이수영 간사

 

 

 

 

 

 

 

작년 5월 아름다운재단의 나눔의 복덕방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접수되었다.

“저는 장봉혜림원 만수공동생활가정의 사회재활교사입니다. 12평의 임대아파트에서 성인정신지체장애인 4명과 제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겨울에는 몰랐는데 날이 더워지면서 물을 많이 마시게 되고 그에 따라 들통에 물을 끓이는 횟수가 좀 더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좁은 거주환경이라 물을 한번 끓일 때마다 그 열기가 오래가고 보관장소의 협소함도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저희 만수공동생활가정에 나눔의 복덕방을 통해 도움을 청합니다.”

라며 정수기가 필요하다는 사연이 접수되고 일주일이 지났을까.

종로구 청진동에 있는 독일식 하우스맥주 전문점 ‘옥토버훼스트’의 백경학 전대표께서 거짓말처럼 정수기를 기부하신다고 연락을 주셨다. 그리고 그 정수기는 필요했던 장애인 그룹홈에 배달되었다.

정수기 사건(?) 후 1년이 지난 4월의 어느 날, <콩반쪽>이 오랜만에 백경학 전대표를 만났다.

<콩반쪽>이 만난 그는 그저 ‘인상이 좋다’는 말이 궁색하리만큼 ‘정말’ 좋은 인상이 얼굴에흘러 넘치는 분이었다. 겉으로만 봐서는 서울의 내노라는 상권에 맥주집을 두 개나 운영할 상인(!)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수한 백경학 대표.

그는 기독교방송(CBS)과 한겨레신문을 거쳐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일했었고 기독교방송에서 일하던 96년, 언론재단의 지원으로 가족과 함께 독일 뮌헨대로 연수를 떠났다. 2년간의 독일 연수를 후 귀국을 한달 앞둔 시점에서 가족과 함께 떠난 스코틀랜드 여행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고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여행길에 잠시 차를 세워놓고 트렁크에서 물건을 꺼내고 있던 아내가 뒤에서 달려오는 차에치이는 갑작스런 사고를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아내는 독일과 영국에서 재활치료를 받으며 세 번에 걸친 다리 절단수술을 받았고 그는 아내의 치료를 위해 회사에도 사직서를 내야만했다.

“불행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에 올 수도 있습니다.”

1년여의 치료 후 귀국했지만 문제는 한국에 돌아온 후였다.우리나라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병원의 치료 환경은 유럽과 너무나도 달랐다. 내 집처럼 환자를 편안하게 해주고 24시간 정성껏 돌봐주었던 독일의 병원과 달리 우리나라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간병인 제도와 간호시스템 때문에 환자는 물론 가족들까지 힘들어지는 우리나라에선 말 그대로 긴 병에 효자를 없게 만드는 환경이었다.
환자가 중심이 되지 않는 삭막한 병원을 보며, 더구나 장애인들에게는 너무나 턱이 높은 한국의 병원에서 고통 당하는 아내와 다른 환자들을 보며 이것이 내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싶었단다. 선진국에서는 1등 국민이 장애인, 그 다음이 어린이, 여자, 개, 남자라는 다소 과장된 말이 있을 정도였지만 우리나라에선 장애인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 역시 아내의 사고가 있기 전까지는 우리나라가 장애인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열악한 환경인지는 미처 몰랐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우리나라는 매년 30만 명의 후천적 장애인이 발생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재활지원은 너무 열악한 실정이다. 재활치료를 받으면 좋아질 수 있는 장애인들 중에는 병원 문턱에도 못 가본 사람들이 아직 많다. 전국을 통틀어 겨우 2%의 장애인들만이 병원에 입원에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사람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것 두 가지가 있다면 하나는 가난, 그리고 나머지는 질병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이 두 가지, 가난과 질병을 모두 가진 장애인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환자에게 웃음으로 대답하는 병원 만들고파

아내를 치료하며 재활병원의 종자돈을 마련하기위해 시작하게 된 맥주전문점 옥토버훼스트. 그는 옥토버훼스트의 대표에서 최근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독일처럼 환자들이 내 집처럼 편안하게 느끼고 훈련된 전문 간병인이 시스템이 갖추어진 재활전문병원, 자연과 함께 숨 쉴 수 있는 아담한 목조건물에 가족 같은 따뜻한 병원을 꿈만 꾸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들기 위해 개미들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아내의 치료를 위해 작게 소망하던 것이 이제 그의 구체적 목표가 되었고 또 그의 목표는 모든 장애인의 꿈이 되었다. 그는 그 꿈의 실현을 위해 푸르메 재단을 만들었다. 지난 3월에 재단법인 조건부 허가가 나자 그는 3월말 열린 주주총회에서 대표직을 후배에게 넘겨주고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로 새롭게 출발했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병원건립을 위해 100억을 목표로 기금모금을 하고 있으며 올해만도 장애인 사진전, 단행본 출간, 사랑의 콘서트 등 다양한 행사를 계획 중에 있다. 또한 그의 이런 뜻을 아는 독지가들과 기업, 일반 시민들이 하나 둘 늘어 십시일반 기금이 모아지고 있다고 한다.

“빈털터리처럼 시작했지만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콩반쪽>이 만난 첫 번째 사람, 백경학 대표.

맹물을 맥주로 만들고
눈물은 희망으로 만드는
인간 정수기 백경학.

정수기가 꼭 필요하던 곳에 무심코 정수기를 보냈던 백경학 대표에게 ‘정수기 같은 남자’란 별명을 붙여본다.

아름다운재단 월간지 <콩반쪽> 2005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