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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의 푸르메를 꿈꾸며 [한겨레21]

[한겨레]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교통사고와 뇌졸중 등 후천적인 이유로 매년 3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장애인이 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를 개인과 가족의 불행으로만 여기고 있어요. 서울시가 장애환자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지난 5월11일 이명박 서울시장이 푸르메재단(이사장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www.purme.org) 이사진과 만났다. 푸르메재단 홍보대사인 가수 강원래씨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푸르메재단 공동대표인 강지원 변호사는 가난과 질병의 이중고를 겪고 있는 환자를 위한 재활전문병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고, 이 시장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푸르메재단은 환자가 중심이 되는 선진국 형태의 민간 재활전문병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단체다.

이 재단 백경학(42) 상임이사는 “우리나라에서 재활병원과 재활의학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터라 수많은 환자들이 입원을 못하고 전국을 떠돌고 있다”며 “설립될 푸르메병원은 가족과 간병인 대신 의료진과 자원봉사자가 환자를 24시간 보호하는 새로운 형태의 의료기관”이라고 말했다.

중앙언론사 기자로 일하던 백씨의 인생행로는 지난 1997년 아내가 스코틀랜드에서 교통사고를 당하는 불행을 겪은 뒤 크게 바뀌었다. 그는 기자생활을 그만두고 재활전문병원 건립에 뛰어들었다. “혼수상태에 있던 아내가 살 수 있느냐고 절박하게 묻는데, 영국 의사는 1시간 내내 아내의 몸상태만 설명하더군요. ‘이 사람 바보 아니야’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주사 한대를 놓으면서도 환자를 인격체로 대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습니다.” 영국 주치의는 “당신 부인을 절대 이곳에서 죽도록 할 수 없다”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러나 귀국한 한국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의료환경은 유럽과 판이하게 달랐다. 24시간 환자를 내 가족처럼 돌봐주었던 유럽과 달리 환자를 보호하고 간병하는 모든 것이 오직 가족의 몫이었다. 기나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실감났다. 대답없는 의료진, 하루 종일 창문에 매달려 있는 환자들을 보면서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깨달았다. 자신이 경험한 전원마을 같은, 환자가 중심이 되는 작은 재활전문병원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6개월 동안 서류를 들고 뛰어다닌 끝에 지난 3월 보건복지부로부터 비영리재단 설립허가서를 받았다. “장애는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순간에 다가옵니다. 그래서 문턱을 낮춘 제대로 된 재활병원이 필요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장애인은 470만명. 120만명은 지속적인 재활교육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지만 현재 단 2%만이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기업과 대형병원은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재활병원 건립을 외면하고 있다.

“벽돌을 한장한장 쌓아가듯 뜻을 같이하는 일반 시민과 기업 회원들이 개미군단처럼 모인다면 3∼4년 안에 재활병원을 세울 수 있습니다.” 백씨는 숲과 잔디가 어울어진 푸르메(푸른산)에서 환자와 의료진, 자원봉사자가 평화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병원을 그리고 있다.
[한겨레21 2005-05-27 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