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한 발로 우뚝선 재활의지 ‘감동’ [문화일보] 2006-06-03

재활병원 기금 10억 쾌척 황혜경씨

“오랜 잠에서 깨어났을 때 한쪽 다리가 사라진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가’하는 좌절감에 그대로 눈을 감고 싶었습니다. 용기와 재활의지를 찾기까지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습니다.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는 불의의 사고였을 뿐입니다. 지금은 남들처럼 밝게 살아갈, 나보다 더 심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도와줄 힘도 생겼습니다. ‘장애를 안고 사느냐’, ‘극복해내느냐’는 스스로에게 달린 겁니다.”

황혜경(여·40)씨는 지난 1998년 6월 외국에서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언론사에 다니다 연수를 간 남편 백경학(42·푸르메재단 이사)씨를 따라 독일에 갔었습니다. 2년간 연수를 끝내고 귀국에 앞서 영국 스코틀랜드로 자동차 여행을 떠났다가 글래스고 인근에서 당한 사고였습니다. 자동차 트렁크에서 물건을 꺼내던 황씨를 두통약 과다복용으로 정신을 잃은 운전자가 덮친 것입니다.

그 사고로 황씨는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2개월 넘게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사이 수술은 세 차례나 이뤄졌고 왼쪽 다리는 절단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다리 상처부위가 갈수록 부패하는 상황이어서 절단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의료진의 마지막 경고를 받았던 겁니다.

다리 절단수술 뒤 10여일 만에 깨어난 황씨는 절망했습니다. 주치의는 “영원히 일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남편 백씨와 여섯살난 딸도 같이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황씨는 수 개월뒤 정신을 수습했고 처절한 재활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에서 1년 4개월간 치료를 받고 귀국한 뒤에도 국내 재활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처음엔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었던 신체에 조금씩 기운이 돌아왔습니다. 마침내 의족을 하고 양 어깨에 목발을 짚으면 일어설 수 있고, 부축을 받으면 걸을 수 있게 됐습니다. 황씨는 “이게 다 옆에서 밝게 웃으며 지켜주고 용기를 북돋워준 남편 덕이었다”고 말합니다.

남편 백씨는 다니던 직장을 지난해 그만뒀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장애인이 된 환자들의 재활을 돕는 비영리단체인 푸르메재단이 설립된다는 소식을 듣고 참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동안 “장애인과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살자”고 부부가 나눈 대화를 실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 황씨 부부는 교통사고 가해자로부터 받은 ‘우선피해보상금’ 1억원을 재단 창립 기부금으로 선뜻 내놓았습니다.

황씨는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청진동 푸르메재단에서 또 한번의 기부금 전달식을 가졌습니다. 8년간의 소송 끝에 받은 피해보상금의 절반인 50만파운드(약 9억원)를 민간 재활전문병원 설립에 써달라고 내놓은 것입니다. 황씨는 “재활치료는 힘겨운 싸움”이라며 “병원이 빨리 지어져 치료가 필요한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도 빨리 더 건강해져서, 새로 생길 병원에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상담하며 희망을 나눠주는 게 꿈이라고 했습니다.

황씨의 강인한 재활의지에 경의를 표합니다. 아울러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많은 이들에게도 황씨의 재활 스토리가 전해져 신선한 생명의 기운이 새삼 북돋워지길 기대합니다. 문화일보가 황씨를 ‘금주의 인물’로 선정한 것도 이런 맥락에 있습니다.

박수균기자 freewill@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6/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