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널리널리 퍼져라, 총장님의 상금

널리널리 퍼져라, 총장님의 상금

[한겨레21  2006.11.24(금) 제636호]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재활전문 병원 설립을 위해 만들어진 푸르메재단(www.purme.org)과 김성수(76·대한성공회 대주교) 성공회대 총장의 만남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2004년이었다. 누구나 장애인 혹은 장애인 가족이 될 수 있음에도 그 짐은 온전히 가족들 몫으로 남는 현실, 지속적인 재활치료와 교육이 필요한 장애인 가운데 2%만이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는 현실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도 그중 한 명이었다. 재단 설립을 추진하면서 이사장에 추대할 이를 찾았다. 고령에, 이미 여러 사람이 할 일을 혼자서 하고 있었지만, 김성수 총장만 한 적임자가 없었다.

김 총장은 여태껏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특히 장애인을 위해 살았다. 대한성공회 사제가 된 뒤 1973년에 현재의 성공회대 자리에 정신지체아 특수학교인 ‘성 베드로학교’를 세웠다. 당시만 해도 ‘정신지체아한테 교육은 무슨 교육?’ 하던 시절이었다. 이후 성 베드로학교는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모델이 됐다. 10여 년 가까이 이 학교의 교장을 지낸 김 총장은, 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갈 곳이 마땅치 않자 직업공동체인 ‘우리마을’을 강화도에 만들었다. 김 총장이 선친에게서 상속받은 땅 2천 평을 내놓고, 경기도가 30억원을 지원했다. 18살 이상의 성인 정신지체인들이 이곳에서 친환경 농산물을 키우며 자립 기반을 다지고 있다. 김 총장 자신도 임기를 마친 뒤에는 우리마을에 가서 여생을 보낼 계획이다.

그러니 푸르메재단 이사장으로 민간 재활전문 병원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는 활동은, 그가 걸어온 40여 년 삶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가족과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간병인이 환자에게 24시간 매달려야 하는 후진국형 의료보호 형태를 벗어나 의료진과 자원봉사자가 환자를 가족처럼 돌볼 새로운 병원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시민·종교기관·사회단체·기업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평생을 장애인을 위해 살아온 김 총장의 목소리는 울림이 크다.

우리 사회를 위해 공헌한 숨은 인사와 단체를 찾아 시상하는 파라다이스그룹은 올해 사회복지 분야 수상자로 김성수 총장을 선정했다. 그는 상금 4천만원 가운데 절반을 푸르메재단에, 나머지도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기부했다. 상을 주는 쪽에서 그의 이름 앞에 붙인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아버지’라는 표현은, 김 총장의 발자취에 비춰볼 때 과하지 않은 것 같다.

[한겨레21 2006-11-28 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