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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386세대의 자식농사

 


백 경 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우리 속담에 ‘땅농사는 남의 농사가 잘 돼 보이고 자식농사는 내 농사가 나아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못난 자식이라도 내 자식이 잘생기고 똑똑해 보인다는 말입니다. 피가 당기고 정에 끌리는 것이니 어쩔 수 없겠지요.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것이야 인지상정이겠지만 도를 넘으면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도 요즘 자식을 떠받들다시피 한다는 데서 나온 ‘소황제’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며칠 전 대학 동창들이 모인다는 연락을 받고 반가운 마음으로 나갔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많았습니다. 그동안 대머리가 된 친구, 흰머리가 된 친구, 아직 대학 때의 얼굴을 간직하고 있는 친구. 험악했던 신군부 시절 대학 때의 추억과 무용담이 화제가 됐습니다. 다른 친구 근황과 올해 말 대선 문제, 경제전망, 직장생

활, 급기야 건강문제와 노후대책까지 화제가 이어지더니 결국 자식 교육 문제로 귀결됐습니다. 자식 공부, 즉 대학 가는 문제지요. 자식들이 중·고등학생이니 교육에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요. 한 친구가 자식 공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어떻게 하면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을까’ 하는 화두를 꺼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고교 교사와 학원 원장인 친구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때려서라도 자식을 특목고에 보내야 한다는 친구, 한밤중까지 과외와 영재학원에 아이를 뺑뺑이 돌리고 있다는 친구, 조기 유학파까지. 치맛바람도 무섭지만 바지바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결국 사교육의 폐해와 정상적인 공교육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은 “세상 물정 모른다”는 핀잔을 들으며 침묵을 지켜야 했습니다.

 

자식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서울 강남 대치동과 도곡동으로 입성했다는 얘기를 들으며 갑자기 서글퍼졌습니다. 미워하면서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80년대 초반, 무력으로 집권한 신군부와 광풍처럼 불어닥친 부동산투기, 고액 비밀과외 같은 사회적 부조리에 항거했던 386세대였습니다. 40대에 들어서면서 자신이 비판했던 모습을 쫓아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권력과 경제적 부를 축적한 사람들을 비판하던 우리들 속에 어느덧 우리가 비판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는 분 중 홀어머니의 사랑으로 성공한 분이 있습니다. 불우한 환경을 비관해 사고를 치다 어느 날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고 거듭났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매일 새벽 정화수 한 사발 떠놓고 삐뚤어진 외아들이 사람 되기를 빌었습니다. 우연히 이런 모습을 목격한 아들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각고의 노력 끝에 인생의 승리자가 됐다는 겁니다. “무엇이 성공이냐?”고 물으면 복잡해지지만, 감동적인 신화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청소원의 아들이 수석 입학했던 신화 말입니다.

‘소황제’와 자식에게 목숨을 거는 부모들이 늘어난다고 하지만 두메산골에서 홀로 공부한 학생들이 수백만원짜리 과외를 받은 강남 학생들을 제치고 당당히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싶습니다. 그래야 그동안 꽉 막혔던 체증이 내려가면서 그래도 우리 사회가 아직 살 만한 곳이라고 느낄 테니까 말입니다. ‘부와 학력이 맞물려 유전된다’는 통념을 깨면서 말입니다.

2007-2-24

[기고문 – 독자기자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