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나만을 위한 삶 벗어나니, 앓던 이 빠진 듯

나만을 위한 삶 벗어나니, 앓던 이 빠진 듯

 

장애인 전용 치과 여는 장경수·정희경씨

» 장애인 전용 치과 여는 장경수 전 서울대 치대 교수(왼쪽)와 정희경(오른쪽)씨.

 

살면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볼 때가 있다. 힘들고 지칠 때는 더욱 그렇다. 지금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는지. 대부분 다시 걷던 길을 간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장경수 전 서울대 치대 교수와 정희경씨. 우리나라 민간에서 처음 만드는 장애인전용 치과병원인 푸르메나눔치과를 이끌 두 주역이다.

두 사람 모두 바쁜 삶을 살았다. 그러다 문득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세상의 굴레를 발견했다. 명예나 돈이나 모두 행복의 조건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마음 한쪽에 여유롭게, 마음 편하게, 그리고 다른 이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 삶을 원하는 간절함이 있었다. 그러다 푸르메나눔치과와 인연을 맺었다. 7월 개원을 앞두고 분주한 두 사람을 주말인 23일 만났다.

새달 문열 푸르메나눔치과 원장·간호팀장으로 참여
장애인 불편없는 시설 만드느라 바쁘지만 큰 보람
“설비 지원·자원봉사 하실 분 많은 도움 기다립니다”

“힘들더라도 보람있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치과 의사인 장경수 박사와 치위생사인 정희경씨가 장애인 전용 치과병원 푸르메나눔치과에서 일하게 된 이유다. 장 원장은 이 치과의 대표의사이자 원장으로, 정씨는 간호팀장으로 일하기로 했다.

‘여유’를 말하지만 두 사람은 요즈음 무척 바쁘다. 7월10일, 늦어도 15일로 예정된 치과병원의 개원 때문이다. 민간에서 처음 만드는 장애인전문병원. 두 사람은 챙길 일이 많다. 치과용 기기와 물리치료기 등 기본적인 설비는 물론 인테리어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가장 신경이 많이 쓰이는 문제는 장애인의 눈으로 치과를 꾸미는 일이다. 장 원장은 병원 자리를 잡을 때 고민을 많이 했다. 접근성 때문이다. 서울 여러 지역의 장애인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도심에 있고,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위해 1층이 비어 있는 건물을 찾았다. 오랜 시간 수소문한 끝에 찾은 자리가 서울 종로구 신교동 신교빌딩의 1층이었다.

정 팀장도 장애인의 눈으로 꼼꼼하게 개원을 준비하고 있다. 나눔치과에는 장애인을 위해 특수하게 제작된 치료의자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마취에 쓰이는 웃음가스도 필수라고 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얼굴은 밝고 편안하다. 다른 사람을 돕는, 자신들이 꿈꿔온 느림의 미학이 담긴 일을 시작한다는 기쁨에서다.

두 사람 모두 지금까지 바쁜 삶을 살았다.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치과보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장씨는 강릉대를 거쳐 서울대 교수로 일하며 “정신없이” 지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삶의 가치관이 달라졌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천천히 느리게 살기’라는 글이 떠 있다. 지난해 1월 “자유롭고 정신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위해” 서울대 교수직을 그만두고 개원의가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시간을 벌고자 혼자 할 수 있는 작은 병원이지만 의사를 채용했다.

“저를 포함해 두 명의 의사가 하루에 10명에서 많게는 30명 가랑 환자를 봅니다. 내원 환자가 적지만 대신 천천히 오래 진료를 할 수가 있지요.”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기자 “나만을 위한 삶”에서 벗어나 다른 이들을 위한 일에도 눈길이 갔다. 고교 동창생인 백경학 푸르메재단 이사로부터 장애인 전용 푸르메나눔치과 원장 제안을 받았을 때 흔쾌히 수락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 푸르메나눔치과는 장애인들에게 값싸고 질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정희경 간호팀장, 백경학 푸르메재단 이사, 장경수 원장(왼쪽부터)

당장은 지난해 개원한 병원을 어쩔 수가 없어 일주일에 하루 나눔치과에서 진료를 하지만 앞으로 활동의 축은 조금씩 옮겨가게 될 것이다. 그에 앞서 장 원장은 자원봉사로 진료에 참여할 학교 후배나 제자인 치과의사 7명을 모았다.

“찾아오는 환자의 얘기를 다 들어주고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도록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가지려고 합니다. 내원 횟수를 줄이는 데도 신경을 쓸 생각이고요.”

정희경 간호팀장도 장씨와 비슷한 생각에 참여했다. 그는 올해 2월까지만 해도 서울 강남 네트워크 병원의 상담실장으로 일하던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이었다.

“강남 쪽은 전쟁터입니다. 상담실장은 최전방에서 뛰는 사람이지요. 환자를 위해서라기보다 인센티브처럼 돈에 끌려다니는 것 같았어요. 회의가 들었습니다.”

병원을 그만둔 뒤 쉬다가 인터넷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푸르메나눔병원에서 치위생사를 뽑는다고 해 바로 지원을 했다. 면접 때 원하는 연봉에 대해 질문을 받자 “재단이 주는 만큼 받고 일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의욕과 달리 푸르메나눔병원은 장애인을 맞을 준비가 아직 부족하다. 장애인용으로 특수 제작된 치료의자는 영화배우 안성기씨와 기기회사인 스카이덴탈에서 각각 한 대씩 기부했다.

장 원장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장애인을 편안하게 눕혀놓고 진단하는 디지털 파노라마 방사선 촬영기다. 고가의 장비라 2~3개 기업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소식이 없다고 한다. 그는 “치료의자도 2대 정도 더 필요하고 병원 공간도 더 넓혀야 할 것 같다”며 “장애인 치료와 보철 기구 지원을 위한 모금도 필요하다”고 한다.

자원봉사를 할 치과 의사와 특히 마취과 의사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정 팀장도 “치위생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자격을 가진 분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자원봉사할 수 있는 분야가 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의 도움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푸르메나눔치과를 모델로 서울은 물론 전국 각지에 장애인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마음 편하게 진료받을 수 있는 병원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후원문의 (02)720-7002, www.purme.org

글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