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경향]사진으로 재능을 나누다! 아나운서 강재형의 아름다운 이기심

사진으로 재능을 나누다! 아나운서 강재형의 아름다운 이기심

“뷰파인더로 본
사람과 세상, 나누는 만큼 아름다워지네요”

 

아나운서 강재형과의 인터뷰는 액자식 구성이었다. 하나의 사건 안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고 그 이야기 속에는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했다. 다행히 그는 영리한 길잡이여서 답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은 없었다. 그와 닿아 있는 인연들, 함께하고 나누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편안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재능 기부로 시작한 인터뷰는 사람 사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인터뷰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는 내내 호기심 많은 소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겨울에 뿌려 봄에 싹 틔운 재능 나눔
지난 4월, 신사동의 어느 갤러리에서는 ‘사랑 나눔 기부 전시-Happy Sky’라는 이름의 특별한 전시회가 열렸다. 푸르메재단의 장애인재활병원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해 열린 이 전시에는 4명의 MBC 아나운서와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 서양화가 석철주, 한젬마 등 프로와 아마추어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됐다. 지난 겨울, 인사동 찻집에서 머리를 맞댄 세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일이다. 세 사람의 의기투합은 이듬해 봄 꽃을 피웠고 그 중심에는 MBC 강재형 아나운서(49)가 있다.

“영화감독 송일곤이 친한 고등학교 후배예요. 그 친구가 작년 가을에 혜화동 ‘아뜰리에 아키’에서 사진전을
열었는데 그곳에서 김은경 관장을 알게 됐어요. 제가 MBC 홈페이지 내에서 ‘강재형의 누리사랑방’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어요. 한번은 오프라인 모임에서 막걸리를 마시다가 누리사랑방 회원들과 전시회를 하면 어떨까 하는 얘기가 나왔는데 마침 그 자리에 있던 김 관장이 ‘그럼 우리 갤러리에서 하시죠’ 하더라고요. 제가 허언하는 걸 참 싫어해요. 그런데 그 친구도 그런 사람이었던 거죠.”

지나가는 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연락이 왔다. 일단 만나자고 했다. 미뤄 짐작하건데 아마 김 관장도 자신이 냉큼 하겠다고 할 줄은 몰랐을 거란다. 그때가 작년 12월 중순이었다.

“저, 김 관장, 누리사랑방 회원 한 명, 이렇게 셋이 인사동 뒷골목 찻집에서 만났어요. 난로 옆에 수첩을 꺼내놓고 그때부터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전시 목적은 ‘나눔과 베풂’으로, 주제는 우리 누리사랑방 이름인 ‘Happy Sky’에서 따와서
‘하늘’로 정했어요. 단순히 하늘 사진만 거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연상되는 모든 것들 희망, 푸름, 미래, 바라봄 등 다양한 의미를 담기로 하고 그 자리에서 3월 중순쯤으로 날짜까지 박아놓았죠.”

주제와 목적, 날짜가 정해지니 계획은 급물살을 탔다. 누리사랑방 회원들에게 전시 계획을 공지하고 오상진, 서인, 문지애 아나운서 등 주변에 사진 좀 찍는다는 후배들한테 작품도 받았다. 내로라하는 컨템퍼러리 작가들도 기꺼이 뜻을 모았다. 좋은 인연들 덕분에 수월하게 준비가 이루어졌지만 아마추어 참가자들의 작품 선정에 있어서는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댔다.

“학예회가 아니니까요. 갤러리 이름도 있고…. 관장한테도 그랬어요. 괜히 우리 편의 봐준다고 갤러리 명성에 누가 되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고요. 아마추어 참가자들이 많은 만큼 더더욱 작품 수준을 담보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소정의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까다롭게 고른 작품들이 하나하나 자리를 잡아가는 것을 보니 실감이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렇게 선정된 작품 중에는 그가 찍은 사진 20여 장도 포함되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주로 해외여행에서 찍은 그의 사진들은 연작과 단작으로 구성돼 총 6점이 갤러리에 걸렸다. 좋은 일에는 운도 따랐다. 마침 아뜰리에 아키가 신사동에 새롭게 문을 열며 ‘Happy Sky전’은 ‘아뜰리에 아키 인 베르사체 홈’의 개관전이 되었다. 3월 22일부터 4월 9일까지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그는 사진작가 강재형이었다.

 

나누며 느끼는 아름다운 이기심(利己心)



전시 수익금을 푸르메재단에 기부하기로 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는 푸르메재단의 백경학 상임이사 이야기를 꺼냈다.

“백경학씨가 제 고등학교 1년 후배예요. 10년 전쯤인가 ‘형, 저 경학이에요’라면서 전화가 왔어요. 그때 백경학씨가 동아일보 기자였는데 신문사를 그만두고 맥줏집을 한다는 거예요. 나이 마흔이 다 돼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맥줏집을 차렸다니 얼마나 생각을 많이 했겠어요. 이유도 묻지 않고 ‘그래, 잘했다’ 했죠. 얘기를 더 들어보니 맥줏집에서 나오는 돈으로 재활병원을 세우겠다고 하더군요.”

독일 연수 시절에서 영국 여행 떠난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아내를 위해 재활병원을 세우겠다는 이야기였다. 제대로 된 재활병원이 없는 우리나라의 열악한 현실에 스스로 총대를 멘 후배는 그렇게 제2의 삶을 시작했고 각고의 노력 끝에 푸르메재단을 설립했다. 그런 후배를 옆에서 지켜보며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마음을 썼다. 아무리 작은 도움이라도 받는 사람에겐 큰 힘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수익금의 액수를 떠나 전시를 통해 재단 홍보도 되고 길게 보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일본의 지진 소식도 모른 체 할 수 없었죠. 결국 전시 작품 판매로 발생한 수익금은 푸르메재단으로, 현장에서 모금된 성금은 일본 지진 피해 성금으로 보내기로 했어요.”

축하 화환 대신 받은 쌀 화환은 아내가 배식 봉사를 하고 있는 복지재단으로 보냈다. 남김없이 줬지만 그에겐 더 많은 것이 남았다.

“사람은 이기적이에요. 좋은 일을 하고 난 뒤 느끼는 뿌듯함도 일종의 이기심이에요. 성인군자가 아닌 다음에야 베푸는 사람도 자신이 뿌듯하니까 베풀어요. 다만 그 ‘이기(利己)’라는 것이 어디서 오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내 것만 배불리며 뿌듯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것을 주면서 더 큰 만족을 느끼는 사람도 있죠. 남는 게 왜 없겠어요. 태어나서 온갖 걸 다 ‘집적’거려봤지만 한 번도 제 이름을 걸고 전시를 한다는 생각은 못해봤어요. 제가 모르는 누군가가 제 작품을 돈을 주고 산다는 생각은 더더욱 해본 적이 없고요. 지난겨울부터 6개월 동안 그게 이루어진 거예요. 제 작품을 소장한 누군가의 집에는 영원히 제가 남는 거잖아요. 저에겐 이미 제가 준 것보다 더 많은 것이 남았어요.”

강재형 아나운서의 연작
‘조슈아는 살아 있다 Joshua is Alive’(C Print 125 X 40cm, 2009)


아나운서 강재형이 카메라로 보는 세상


추억하기 어려운 지난 날 어느 순간에 카메라를 잡았다.
한때 들락거렸던 예지동 카메라 골목, 학보사 기자 시절 분신인 양 끼고 다녔던 카메라가 밑거름이 되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카메라는 내 벗이 되었다. 내 아이들의 첫 걸음마를 담아낸 카메라는 이제 전시의 연모가 되었다. 흔하디흔해진 DSLR를 마다하고 버텨온 까닭은 내 주머니 속의 ‘똑딱이’ 때문일 것이다. 그 ‘똑딱이’로, 수없이 찍고 뽑았던 이미지 중에 ‘마음’이 담긴 몇 점을 프레임에 담았다.
‘사랑 나눔 기부 전시-Happy Sky’, 작가 노트 중

분신 혹은 벗. 그가 자신의 카메라를 이르는 말이다.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카메라는 그의 가장 개인적인 친구였다. 물론 ‘취미’라는 말도 맞다. 고려대 학보사 시절부터 카메라를 끼고 다녔지만 제대로 사진 공부를 한 건 1996년, 그가 MBC-TV ‘우리말 나들이’를 만들 때였다. 그는 맨 처음 ‘우리말 나들이’를 만든 기획자다.

“카메라도, 작가도 없이 시작했어요. 대본은 제가 썼고 카메라는 MBC 아카데미에서 아르바이트생을 구해서 찍었죠. 방송을 하며 그동안 피사체이기만 했지 찍은 적은 없잖아요. 연출자가 되어 화면을 만들다 보니 그림을 알겠더라고요.”

영화, 드라마, CF 등 사각형에서 나오는 모든 영상들이 훌륭한 스승이었다. 방송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며 프레임과 빛, 구도에 대한 감도 익혔다. 어느 초여름 해 질 무렵, MBC 본관 쪽 벤치에서 해를 등지고 찍은 박나림 아나운서는 당시 초콜릿 광고에 나오던 채시라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영상에 대한 재미를 알아가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제 사진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생각을 못했어요. 그때그때 일상의 순간을 담고 싶은 만큼 찍을 수 있다면 그걸로 좋았어요.”

30여 년 동안 그의 곁을 지킨 건 미놀타, 캐논, 펜탁스 등 필름 카메라와 주머니 속에 쏙 들어가는 콤팩트 디지털 카메라, 일명 디지털 ‘똑딱이’카메라다.

오래전부터 그의 사진 실력을 알고 있던 절친한 사진작가 오형근이 좋은 카메라 하나 사라며 DSLR 카메라를 추천했지만 그는 손에 익은 디지털 똑딱이면 충분했다. 이번 전시 작품들도 모두 DSLR 카메라가 아닌 디지털 똑딱이로 찍은 것들이다.이 사실을 알고 놀라는 이들도 많았다.

“사실 하나 사볼까 고민했는데 사람들이 우르르 사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쏙 들어가더라고요. 제가 좀 못된 구석이 있어요(웃음). 비싸기도 하고, 전문가가 아니잖아요. 기술적으로 완성도 높은 사진보다 저만의 느낌이나 일상을 담는 거면 충분해요. 쉽게 꺼내서 그때그때 찍을 수도 있고요.”

메모는 하지만 일기 쓰는 사람은 아니다. 사진은 일기를 대신하기도 한다. 전시를 위해 그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쭉 훑어보다 감회에 젖기도 했다. 사진 속에 잠들어 있던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펼쳐진 순간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고. “전시를 시작하고 이제 카메라를 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깨에 힘이 들어가더라고요. 그렇게 되면 좋은 사진을 찍지 못할 것 같아요. 아나운서 강재형, 아빠 강재형, 자연인 강재형으로 찍는 사진이 좋아요. 그게 가장 저를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나운서라서, 아나운서로서, 아나운서이기에…

MBC 아나운서, 미디어언어연구소장, 작가, 교수(그는 ‘선생’이라는 이름을 선호했다)… 그를 수식하는 다양한 용어 중 그를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이름은 단연 ‘아나운서’다. 올해로 방송 24년 차, 인생의 반을 아나운서로 살아온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방송 일도 했고, 여기저기 글도 ‘끼적여봤고’, 훌륭한 학생들과 공부도 하고 있고 전시회도 했다. 그중 큰 부분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아나운서라서’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아나운서로 얻은 인기와 명성이 있다면 그건 시청자들로부터 오는 거잖아요. 제가 좋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건 제 주위 많은 분들이 저에게 자양을 주시기 때문이에요. 누리는 만큼 돌려드려야죠. 제가 가지고 있는 재주를 총동원해서요.”

아나운서가 ‘인기인’이 된 요즘, 후배들에게 해주는 말이다. 한창 방송 중인 MBC 아나운서 공개 채용 프로그램 ‘신입사원’도 선배로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방송은 내공으로 하는 거예요. 내공은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고요. 방송인이 인생의 단기 목표이지 삶의 목표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소양을 갖추는 일은 어딜 가도 남을 만한 인생 공부를 하는 거거든요.”

TV 밖에서 만난 아나운서 강재형은 유연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수많은 이야기와 사람 사이를 오가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방랑객 혹은 탐구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웃는 것’이라며 그는 기분 좋게 웃었다. “앞으로 또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는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이성원 장소 협찬 / ZOO COFFEE and DE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