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우리'의 회복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우리'의 회복

2017-11-15

[사회통합 부문·김성수 주교]

발달장애인 시설 '우리마을' 운영
"연매출 20억 콩나물공장 친구들이 부품 조립 동료 장애인 임금 보태"

민세(民世) 안재홍 선생
제8회 민세상 수상자 선정

민세(民世) 안재홍(安在鴻·1891~1965·사진) 선생의 민족 통합 정신과 나라 사랑을 기리는 '민세상(民世賞)' 운영위원회(위원장 강지원 민세안재홍기념사업회장)는 지난달 20일까지 시민사회·학술단체·지방자치단체·대학 등을 대상으로 민세상 후보자를 추천받았다. 민세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이세중 환경재단 이사장)는 강지원 위원장과 이세중 이사장, 손봉호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이상 사회통합 부문),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 정윤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김태익 조선일보 논설위원(이상 학술연구 부문)으로 구성됐다. 심사위원회는 사회통합 부문에 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를, 학술연구 부문에 진덕규 이화여대 명예교수를 수상자로 결정했다. 민세는 일제강점기 최대 민족운동 단체인 신간회 총무간사를 지내며 좌우 합작을 주도한 민족운동가로 조선일보 주필·발행인·사장을 지냈다.

"지금 세상에 민세 선생님이 계셨다면 아마 코너에 몰려 아무것도 못 하셨을 것 같아요.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의 극심한 대립 속에 중도(中道)를 걷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형편없고 보잘것없는 제가 민세를 기리는 상을 받아도 되는지…."

제8회 민세상(사회통합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김성수(87) 대한성공회 은퇴 주교는 "수상 통보를 받고 이런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겸손해했지만 김 주교는 평생 '끼리끼리'가 아닌 '우리 함께'를 위해 살아왔다. 방식은 솔선수범과 봉사 그리고 희생이었다.

김성수 주교는‘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지만 그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는“‘5000만이 우리 식구’라는 생각을 가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김성수 주교는‘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지만 그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는“‘5000만이 우리 식구’라는 생각을 가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김 주교의 이력은 화려하다. 1980년대 이후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 초대 관구장, 성공회대 총장·이사장을 지냈다. 교회 밖에서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사장, 반부패국민연대 회장, 푸르메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김 주교는 이런 활동을 하면서도 좌우, 가난한 이와 부자 사이에서 항상 치우치지 않고 중도를 지켜왔다. 지금은 장애와 비장애의 벽을 넘어서는 세상을 꿈꾼다. 그가 사는 곳은 강화도 '우리 마을'이다. '우리 마을'은 지난 2000년 김 주교가 유산으로 물려받은 고향 땅을 기부해 만든 발달장애인 재활시설이다. 발달장애인 50명이 콩나물 키우고 전자부품 조립하며 직접 돈을 번다.

김 주교는 "요즘 세상 사람들은 여기 친구들에게 배워야 한다"고 했다. "콩나물은 연 매출이 20억원이 될 정도로 수입이 많지만 전자부품 조립은 단순한 작업이라 1개에 6원씩 받아요. 하루 종일 해봐야 500개, 하루 3000원이죠. 근데 여기서 기적이 일어나요. 콩나물 공장 친구들이 기꺼이 부품조립 친구들을 도와서 최저임금을 만들어 줘요. 정작 건강한 사람들은 정규직·비정규직 문제로 싸우잖아요?"

그는 이 일화를 전하면서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우리'의 회복"이라고 했다. "우리는 너무 갈라져 있어요. 자기편끼리 뭉쳐서 상대편 이야기는 아예 귀 닫고 쳐다보지도 않아요. 상대의 어려움이 뭔지 들어보고, 들어줄 만한 것은 수용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김 주교는 '주기도문'을 이야기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우리'를 6번이나 이야기합니다. 그 짧은 기도문에서요.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라고 하시죠. 이제 '5000만이 우리다'라고 생각하고 가르고 쪼개고 원수 삼는 일은 끝내야 합니다. 그런 세상이 안재홍 선생이 꿈꾸던 모습 아닐까요?"

김 주교는 상금(2000만원)을 '발달장애인 양로원' 건립에 쓸 생각이라고 했다. "'우리 마을'을 만든 이유가 학교 졸업하면 갈 곳 없는 장애인들에게 일거리를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을'에도 벌써 50대 후반인 친구들이 수두룩해요. 흔히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자녀보다 하루만 더 사는 게 꿈'이라고 하지요? 사회가 맡아줘야 해요. 이 친구들이 퇴직 후 안전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는 곳을 마련하려고요."

[선정 취지] 장애인 등 사회약자 지원 앞장

김성수 주교는 청렴과 헌신, 소통의 실천을 통해 한국사회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서 존경받는 원로 종교인이다. 1987년 성공회 서울교구장 시절 6·10 국민대회의 서막이 된 '호헌 철폐를 위한 미사'를 집전해 한국사회 민주화에 기여했고, 성 베드로학교장 등을 지내며 장애인과 철거민, 외국인노동자 등 사회 약자를 지원했다. 종교인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의식을 실천해 사회지도층의 모범을 보였다. ㅡ심사위원 강지원·이세중·손봉호·양상훈

강화=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1/15/20171115000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