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캐릭터 사진 찍어도, 걷기만 해도 돈 쌓여 … 즐기며 기부한다

캐릭터 사진 찍어도, 걷기만 해도 돈 쌓여 … 즐기며 기부한다

2014-12-27

SNS 세대, 확 달라진 기부문화
사회공헌 게임 앱도 인기
'사이버 염소' 키우기 미션 달성하면
아프리카 가정에 진짜 염소 보내줘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들뜬 지난 24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 10여 명의 젊은 커플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체험 부스를 들여다본다. 유니세프(UNICEF·유엔아동기금)가 마련한 ‘유니히어로’라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배트맨·수퍼맨을 닮은 히어로 캐릭터를 골라 사진을 찍으면 자신의 얼굴을 합성해 사진을 뽑아준다. 물부족·기아로 신음하는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는 만화 캐릭터를 활용해 기부를 홍보하고 장려하는 행사다. 재미난 발상에 활기찬 분위기여서 후원 신청서를 쓰지 않아도 거리낌 없이 행사에 동참할 수 있다.

서울 강남역 엠스테이지에서는 최근 ‘핑크 위시

트리’를 설치해 아프리카 소녀들의 교육을 지원

하는 사회공헌 캠페인이 진행됐다.

[사진 에뛰드하우스]

최근 확 달라지는 기부문화의 풍경이다. 아예 돈 한 푼 내지 않고도 기부에 적극 동참하는 길이 활짝 열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모바일세대가 만나 만들어낸 문화다.

‘빅워크’는 걷는 거리만큼 기부를 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이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 걷다 보면 어느새 기부금이 쌓인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은 어디에서 얼마나 걸었는지 체크해 10m마다 정확히 1원씩 기부금을 쌓아올린다. 기부금을 내는 사람은 따로 있다. 후원 기업이다. 실제로 2011년부터 올해 7월 말까지 전 세계 25만여 명이 지구 80바퀴에 해당하는 거리(320만㎞)를 걸었고 적립금 약 3억2000만원을 절단장애 아동들에게 후원했다. 대학생 조경모(25)씨는 “ 앱을 활용하면 소액 기부도 가능하고 참여하기도 쉬워 친구들한테 적극 권유하고 있다”며 “봉사활동의 의미가 스펙을 쌓기 위한 도구로 변질된 요즘 젊은이들을 기부 현장으로 끌어모을 수 있는 참신한 시도”라고 말했다. 거액을 내게 되는 기업도 이 같은 활동을 통해 사회공헌과 기업 이미지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서울 코엑스몰에서 열린 유니세프 유니히어로 행사에 참가한 정성필(23·대학생)·임미정(15)·임선정(19)·손기정(23)·박정민(22·왼쪽부터)씨. 사진을 찍으면 자신의 얼굴이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는 만화 캐릭터에 합성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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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단체의 모금 방식도 하루하루 달라진다. 이제는 페이스북·트위터 등을 통해 대중이 클릭하고, 댓글을 달고, 공유를 하도록 유도한다. 이 같은 소셜 참여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기업들의 기부액도 커지기 때문이다. 대학생 박윤진(26)씨는 “연말연시에 등장하는 오프라인 모금의 경우 실제로 기부금이 잘 전달될지 불신이 커서 머뭇거리게 되는데 SNS 기부는 내가 돕고 싶은 사람을 직접 지정할 수 있고 피드백도 즉각적이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고 밝혔다.

게임도 한몫한다. ‘트리플래닛’이라는 게임은 사용자들이 특정한 미션에 성공하면 세계 곳곳에 나무를 심어준다. 3~7일 동안 게임에 몰입하면 나무 한 그루를 기부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달 학교별 대항전에서 조선대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청계천에 나무를 기부했다. 최종 우승자인 대학생 유지현(20)씨는 “시험기간에도 게임에 참여할 만큼 재밌다. SNS를 통해 친구들에게 인증 사진을 보내고, 게임 노하우를 공유하는 일도 즐겁다”며 “게임을 하면서 사회공헌도 하고 직접 지은 나무 이름을 새길 수 있다는 점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2010년 사업을 시작한 트리플래닛은 현재까지 세계 72곳의 숲에 총 48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지난 6월 세이브더칠드런이 개발한 ‘아프리카 빨간 염소 키우기’ 게임은 애완동물 키우는 걸 즐기는 여대생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게임을 시작하면 곡식을 재배해 먹이를 주고 예방접종하면서 ‘사이버 염소’를 키워야 한다. 미션을 달성한 뒤 해당 홈페이지와 SNS에 자신이 키운 염소를 등록하면 아프리카 가정에 진짜 염소가 걸어 들어간다. 오락과 기부, 현실과 가상세계의 절묘한 크로스오버다.

기상천외한 앱도 빠지지 않는다. 기부톡이라는 앱을 깔면 통화를 끝낼 때마다 기부와 관련된 화면이 뜬다. 이때 화면만 터치하면 후원 기업에서 대신 기부를 해준다. 캐시슬라이드는 휴대전화를 시작할 때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해주는 앱이다. 잠금 해제할 때마다 사용자들에게 2~4원을 지급한다. 이 적립금을 모아 커피를 마실 수도 있지만 기부를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캐시슬라이드 허원석(31) 차장은 “물건을 사던 고객들이 ‘나눔을 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고 이에 발맞춰 지난 5월부터 사회공헌에 의미를 둔 기부 코너를 개발해 꾸준한 참여를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캐시슬라이드는 올해 가입자 1000만 명을 돌파했다.

1~2원의 푼돈이라고 얕봐선 안 된다. 말 그대로 껌값도 안 되지만 티끌 모아 태산이다. SNS는 수만 명이 동시에 참여할 수 있어 기부단체에 커다란 활력소가 되고 있다.

‘굿네이버스 희망 트리 캠페인’은 클릭과 화면

터치로 ‘사이버 트리’에 불을 켤 수 있다. 5000

명이 참여하면 기부가 이뤄진다. [사진 굿네이버스]

굿네이버스는 지난달까지 누적 기부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 늘었다. 월드비전은 지난 한 해 약 51만 명이던 후원자가 올해 54만 명으로 증가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측은 “SNS가 젊은 층의 참여를 이끌고 개인 기부자 증가에 일조하고 있다”며 “단체 차원에서도 지속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디지털전담팀을 두고 대응 전략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학생 임미정(15)양은 “기쁜 마음에 기부를 시작했다가도 한 달에 2만~3만원씩 낸다는 게 몹시 부담스러웠다”며 “하지만 돈을 들이지 않고도 기부를 할 수 있어 어려운 사람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기업들 사이에서도 SNS 연계가 대세다. 삼성의 ‘따뜻해유(油)’ 프로그램은 삼성그룹 SNS에서 소셜미디어 팬들의 참여 횟수(건당 500원)만큼 기금을 적립해 난방비가 필요한 곳에 지원한다. 페이스북에서 ‘좋아요’ 횟수만큼 기금이 쌓인다. 소셜커머스업체 티켓몬스터(티몬)는 지난 5월 자체 행사인 ‘소셜기부(So special Give)’로 모금된 4822만원을 안구 없이 태어난 아기의 인공안구 삽입 수술비로 전달했다. 티몬 김소정(37) 홍보팀장은 “2010년부터 매월 사회적기업과 비정부기구(NGO) 의 모금 지원 행사를 열었는데 이번 건은 특히 SNS 홍보를 통해 큰 호응을 얻어 최고 금액을 달성했다”며 “향후에도 지속적인 SNS 활용 기부 아이디어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게임업체 넥슨컴퍼니는 상암동에 건립 예정인 어린이 재활병원에 200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페이스북 게시물에 ‘좋아요’ 추천 1000개를 달성할 때마다 일정 금액을 기부하는 조건이다. 넥슨 이슬기(30) 대리는 “젊은 층의 기부를 독려하기 위해 김성주와 걸스데이·클라라 등 연예인들과 함께 페이스북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재미와 흥미에 치중하다 보면 기부의 의미가 축소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SNS를 기반으로 한 ‘보여주기식’ 기부문화가 기부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기부문화연구소 비케이 안 소장은 “모금 행위의 재미에 집중하기보다는 기부의 본질적인 의미, 즉 메시지가 함께 전달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박효원(35) 간사는 “올해 유행한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대해 일부 비판적인 시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 역시 SNS 기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새로운 기부문화가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개인과 사회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이진우·김은정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