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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기부자 1만명이 만든 기적… 국내 최초 어린이 재활병원 문열다

 [더 나은 미래] 기부자 1만명이 만든 기적…

국내 최초 어린이 재활병원 문열다

2016-04-26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설립 예산만 440억원 가수 션, ‘1만원의 기적’ 등
캠페인 통해 시민 참여 물꼬 터… 게임회사 넥슨은 200억원 기부

어린이 재활, 인력 많이 들고 건강보험 수가는 낮아
연간 40억원 적자 예상… 이젠 정부가 나서야

‘기적(奇跡)’.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병원이 이달 28일 마포구 상암동에 문을 연다. 국내 최초의 통합형 어린이 재활병원인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이하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 이야기다. 2010년 본격적으로 개원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 무려 7년 만에 거두는 성과다. 고난 뒤에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을 시도했던 백경학(53·사진) 푸르메재단 상임이사가 있었다. ‘장애 어린이를 위한 재활병원을 만들겠다’는 한 사람의 일념이 어떻게 지하 3층~지상 7층, 91병상 규모의 병원으로 열매 맺게 됐을까. 지난 14일 시범 운영 중인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을 방문해 그간의 우여곡절을 들었다.

◇1만 개인 기부자, 500개 기업·단체 후원으로 만든 ‘기적의 병원’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은 국내 최초의 어린이재활병원(30병상 이상 규모)으로 이달 28일부터 정식 진료를 시작한다. 병원 건립에 필요한 총 예산 440억 중 아직 15.5억원이 부족분으로 남아있다.
(두번째, 세번째)사진은 병원 1층 로비와 병실의 모습. / 푸르메재단 제공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야기는 1998년 여름 백경학 이사의 가족이 영국 여행 중 겪었던 교통사고에서 시작된다. 사고로 다리를 잃은 아내의 옆을 지키면서 재활병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백 이사는 재직 중이던 신문사를 뛰쳐나와 2004년 아내의 사고 보상금으로 푸르메재단을 설립했다.

“당시 어린이 재활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은 보바스어린이병원(이후 29병상 이하 의원으로 축소)과 대학병원 재활센터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인력은 많이 들고, 건강보험 수가는 낮아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영역이니까요. 실제로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은 연간 200억원의 적자가 나고 있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2010년,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의 시작입니다.”

병원을 짓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땅이었다. 백방으로 뛴 끝에 SH공사로부터 상암동에 1000평(약 3300m²)짜리 땅이 나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가격은 93억원. 그나마도 계약금과 중도금까지 모든 비용을 2~3개월 안에 결제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천문학적인 액수를 재단이 직접 감당할 수는 없었다. 백 이사는 그 길로 땅에 대한 우선권을 갖고 있는 마포구청을 찾았다.

“박홍섭 구청장님과 만난 자리에서 세 가지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첫째, 이 나라에도 어린이재활병원 하나는 있어야 한다. 둘째, 건물 안에 직업재활센터·사회적기업 공간을 만들어 일자리까지 창출하는 통합형 병원을 만들겠다. 셋째, 문화교실·수영장·어린이도서관 등 병원 시설은 주민이 이용할 수 있게 열어두고, 병원 건물은 마포구에 기부하겠다. 그 결과 2011년 9월 마포구청과 MOU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같은 해, 병원 건립을 위한 본격적인 모금이 시작됐다. 시민 기부 물꼬를 터준 것은 홍보대사인 가수 션이었다.

“병원 설립 예산이 440억원이었습니다. 서울시(85억원)와 보건복지부(15억원)의 보조를 받더라도 340억원 이상 든다고 했더니 션씨가 ‘매일 1만원씩 후원하는 기부자 1만명만 모으면 병원을 지을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내가 모아오겠다’고 하더군요. 매일 기부하는 시민 기부 프로그램 ‘1만원의 기적’과 ‘1000원의 기적’이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굿액션 by 션’도 그의 아이디어입니다. 기부금이 10원 모일 때마다 션이 직접 1m를 달리는 이 캠페인으로 어린이재활병원의 필요성이 대중화될 수 있었죠.”

고액을 선뜻 내놓은 후원자들도 큰 힘이 됐다. 본격적인 어린이재활병원을 건립하기에 앞서 신교동에 지어진 ‘세종마을 푸르메재활센터’는 이철재(47) 기부자의 도움이 컸다.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이씨는 불굴의 의지로 버클리대학교에 입학, 한국에 돌아와 소프트웨어 개발사 ‘쿼드디맨션스’를 창업했다. 미국에서 선진 재활의료를 경험하고, 장애인 기업가로 성공을 거둔 그는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에도 자신과 같은 기회가 있길 바라면서 2012년 푸르메재단에 10억원을 기부했다. 자신이 창업한 회사가 국내 대기업에 인수되면서 받은 주식으로 기부금을 대출받은 것이다.

이씨의 선행은 더 큰 기적을 낳았다. 그의 회사를 인수한 기업에서 ‘이처럼 훌륭한 일에 우리도 동참하고 싶다’며 200억원을 내놓은 것. 바로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의 건립에 마중물을 부어준 게임회사 넥슨이다.

백 이사도 발 벗고 나섰다. 기업 중 장애와 어린이 부문에서 진정성 있게 사회공헌을 펼치고 있는 곳을 조사하고, 핵심 인물을 찾아냈다. 열 번 전화를 걸면 한 번 받았고, 열 번 통화하면 한 번 만날 수 있었다. 어렵게 만나 기부 이야기를 꺼내게 되면, 이 기부를 통해 기업이 얻을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설득력 있게 준비해 내밀었다. 이렇게 직접 만난 곳만 150군데가 넘는다.

“선천성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의 보험금을 기부한 젊은 부부, 어머니의 조의금을 기부한 아들까지 병원 건립 뒤에는 수많은 기부자의 사연이 있습니다. 특히 게임회사 넥슨은 200억원을 보태 병원 건립에 주춧돌을 놓았죠. 개원까지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던 후원자들을 위해 SNS와 이메일, 개별 홈페이지를 통해 공사 과정과 모금 진행 상황을 수시로 공유했습니다. 이제 기적처럼 병원이 세워졌으니 후원해주신 분들을 위해 1층에 ‘기부자벽’을 만들 생각입니다.”

◇연 40억 적자 예상…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할 때

“그걸 왜 백(Paik)이 걱정하나요?”

어린이재활병원을 만들기 전 백경학 이사는 선진 재활치료 시스템을 보기 위해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 등 유럽 국가 재활병원 10여 곳을 직접 방문했다. 장애 어린이 당사자는 물론, 동행한 가족들까지 편히 머물다 갈 수 있는 병원 시스템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환자 중심의 재활병원을 꼭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운영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백 이사가 뮌헨의 한 재활병원 원장에게 운영 적자를 어떻게 해소하고 있는지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환자 치료비가 얼마가 나오든, 병원 적자가 얼마가 나든 그건 정부의 의료복지 담당자가 걱정할 일”이라는 것이었다.

“‘당신은 좋은 병원을 짓고, 좋은 의료진을 모을 생각만 하면 된다’는 말에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독일 ‘호크리트어린이재활병원’은 1년 운영비로 2000만유로(약 260억원)를 씁니다. 병원이 해결하지 못한 비용은 건강보험과 정부·지자체 지원금으로 충당하죠. 뮌헨의 재활센터 ‘킨더젠트룸’의 하루 입원비는 400유로(약 52만원)에 달하지만 모든 비용을 주 정부와 건강보험 주관 부서가 냅니다. 낮은 건강보험 수가에 의지하고 있는 국내 병원과는 반대되는 모습이죠.”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은 1년에 40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어린이 재활 치료는 성인에 비해 훨씬 섬세하고 인력이 많이 드는 작업임에도 건강보험 수가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업 치료 1회당 지급되는 수가는 약 8700원 정도, 환자 부담금은 2400~3500원 선이다. 이 안에서 의사, 치료사, 사회복지사, 행정 직원의 인건비는 물론 병원 운영비와 관리비까지 해결해야 한다. 서울시가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을 ‘공공 안전망병원’으로 지정해 매년 최대 9억원(올해 7억3000만원)까지 지원하기로 했지만 역부족이다.

“장애 어린이를 건강하게 키워내는 것은 투입되는 비용 이상의 사회적 가치를 지닙니다. ‘민간 병원을 지원한 전례가 없다’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하지만, 병원이 투명하게 운영되는지 지켜보고 확인하면 될 일입니다. 민간에서 집을 지어 뛰고 있습니다. 이제는 정부의 차례입니다.”

권보람 더나은미래 기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4/25/201604250179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