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장애아 30만인데 어린이재활병원 1곳…2년 기다려야 입원, 부자는 외국 가죠

[김진국이 만난 사람] 장애아 30만인데 어린이재활병원 1곳…

2년 기다려야 입원, 부자는 외국 가죠

2017-01-07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사진 신인섭 기자]

사람이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기는 어렵다. 잘하는 일만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어쩌면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은지 모른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일을 만날 수도 있다. 신의 소명(召命)과도 같은 경험이다. 백경학(54) 푸르메재단 상임이사가 그랬다.

19년 전 교통사고로 아내 재활치료
병실 부족하고 그나마도 수용소 같아
인간적인 재활병원 건립하려 결심

노산 등 때문에 장애아 출산율 늘어
경제적인 부담·스트레스·갈등 심각
어린이 장애는 조기 발견·치료해야

어린이재활병원 일본 202개, 독일 140개
한국은 지난해 ‘푸르메’서 처음 세워
연간 30억 정도 적자 나 운영 꺼려

필자는 1990년대 초 CBS 기자이던 그를 처음 만났다. 2002년 오랜만에 만났더니 하우스맥줏집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2005년 푸르메재단을 세우고 어린이재활병원 만드는 일에 매달렸다.

나는 한동안 그가 얼마나 힘든 일을 겪었는지 몰랐다. 그러나 3일 서울 신교동 푸르메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그의 얼굴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마주 앉은 사람이 평화를 느낄 정도다. 그에게 그런 전환점이 닥친 것은 19년 전인 98년 6월이다.

어린이 기부자를 위한 기념사진 틀을 잡고 있는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그는 독일에서 언론인 연수를 마치고 귀국에 앞서 가족 여행을 떠났다. 스코틀랜드를 지나던 중 잠시 길가에 차를 세웠다. 그때 약물을 먹은 운전자가 정신을 잃고 구토하며 돌진했다. 차 뒤에 서 있던 아내 황혜경씨가 범퍼 사이에 끼어 쓰러졌다.
“아내가 100일 동안 혼수상태였습니다.”

그는 이제 차분하게 이야기했지만 그때는 눈물과 기도로 지새웠다. 65㎏이던 그의 몸무게가 48㎏이 됐다. 아내는 첫 번째 수술로 고비를 넘기는가 했더니 수술 부위가 감염됐다. 양쪽 신장이 모두 정지되고, 체온이 42도, 혈압이 270까지 치솟았다. 두 번째 수술 후 더 악화돼 패혈증이 왔다. 대퇴부까지 감염돼 절망적이라고 했다. 한쪽 다리를 잘랐다. 풍선처럼 부풀었던 몸이 가라앉고, 100일 만에 기적같이 의식을 회복했다. 독일에서 1년 반 동안 재활 치료를 받았다.

“독일 의사가 이제 한국에서 한국인에게 맞는 재활 치료를 하라고 했습니다. 교통사고 같은 중도(重度) 장애인들은 재활 치료를 멈추면 뼈와 근육이 굳어 평생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저는 한국에 재활병원이 없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

입원을 하려니 병실이 없었다. 겨우 들어간 입원실은 난민수용소 같았다. 문병객들이 소란스러워 쉴 수 없었다. 영국·독일 병원에 비해 너무나 열악했다. 그는 직접 환자를 가족처럼 돌보는 재활병원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제가 재활병원을 만들 방법은 비영리재단뿐이더라고요. 그래서 종잣돈을 마련하려고 하우스맥줏집을 연 겁니다.”

서울 신교동 어린이병원에 걸려 있는 그림. 청각을 잃은 손영선 화백(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의 장남)의 작품. [사진 신인섭 기자]

그는 지인 59명으로부터 5000만원씩 투자를 받아 2002년 옥토버훼스트를 만들었다. 4년 뒤 자신의 지분 10%를 재단의 기본 재산으로 넣었다. 또 부인이 소송으로 받은 배상금 중 10억6000만원도 재단에 넣었다.

질의 : 지금 부인의 상태는 어떤가요.
응답 : “그때 충격으로 소뇌가 30% 축소됐대요. 말을 참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조금 어눌하고, 문장이 삐뚤빼뚤해요. ‘당신 밥 먹고 왔어요?’를 ‘당신 눈 먹고 왔어요?’ 머 이런 식이에요. ‘왜 눈이라고 발음해?’ 이랬더니 ‘눈이라고 했어?’ 하고 되묻습니다. 의족을 끼고 걷는 연습을 하고, 책 읽고….”

이철재씨(전 쿼드디맨션스 대표)가 기증한 피터 오페임의 ‘개와 어린이 날다’. [사진 신인섭 기자]

푸르메재단은 촛불집회 행진의 마지막 한계선인 효자동 로터리 바로 옆에 있다. 그의 사무실은 지나치게 소박하다. 파일 박스가 절반을 차지하고, 자그마한 책상과 초등학생용 같이 작은 의자 네 개가 놓인 좁은 탁자. 다른 여유라곤 없다. 청소도구 창고가 생각났다. 사치라면 창문으로 청와대 검문소가 보이는 것.

질의 : 어떻게 이 자리에 재단을 세우게 됐죠.
응답 : “종로구가 이 땅에 공영주차장을 짓는데 지상에는 무얼 할지 결정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모금으로 병원을 지을 테니 빌려달라고 제안한 거죠. 저희는 85억원을 모금해 지은 이 건물을 기부채납하고, 대신 30년 빌려 쓰기로 했습니다.”

질의 : 재활병원이 목표였는데 치과를 먼저 열었죠.
응답 : “2006년 어떤 장애인단체 행사에 갔어요. 전동 휠체어를 탄 한 중증 장애인이 푸르메재단에서 왔느냐고 묻더니 딱 두 말씀 하셨어요. ‘이가 아파요. 먹고 싶어요.’ ‘치과 가시지 그러셨어요’ 했더니 ‘받아주지 않아요’라는 겁니다.”

그는 다음 날 광화문 새문안교회부터 종로3가까지 치과란 치과는 다 가봤다. 32개가 있었다. ‘아내가 중증 장애인인데 여기서 치료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한 곳도 치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첫째는 의료사고가 날까 봐, 또 중증 장애인은 돈이 없어 비싼 치료를 감당할 수 없어서, 셋째는 일반 손님은 10분이면 되는 치료도 장애인은 1시간씩 걸리고, 다른 손님이 꺼린다고 했습니다.”

그는 친구인 장경수 전 서울대 치대 교수와 후배·제자 12명의 자원봉사로 진료를 시작했다. 1년 반 뒤 의사를 정식 고용했다.

“치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달에 한 번씩 중증 장애인 시설과 쪽방촌 등으로 봉사를 나갔습니다. 외곽에 계신 중증 장애인들은 시내로 치료받으러 올 수가 없거든요.”

질의 : 어린이재활병원으로 생각을 바꿨는데.
응답 : “노무현 대통령이 권역별로 성인재활병원을 5개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어린이재활병원은 없었습니다. 아이들 장애는 조기에 발견해 잘 치료해야 하는 절박한 일인데.”

더구나 장애 아동 출산율은 급격히 늘고 있다. 2005년에서 2011년까지 7년 새 136%가 늘었다(국민건강보험공단). 맞벌이, 임신부 노동, 스트레스, 노산 때문이다.

질의 : 장애 아동이 있으면 부모의 생활도 엉망이 돼버리더군요.
응답 : “이혼을 많이 합니다. 가정이 파탄 나요. 경제적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고, 스트레스와 갈등이 심각합니다.”그렇게 염원하던 어린이재활병원이 지난해 3월 상암동에서 문을 열었다. 그는 맨손으로 430억원을 모았다. 시민 1만 명, 기업 500여 개가 참여했다. 땅은 마포구가 제공했다. 이 일을 시작하며 그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면 산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치료받기 위해 전국을 맴돌던 분들이 치료를 받게 되니 그분들의 만족감, 안도감, 위안, 이런 게 대단하고요. 480명이 입원을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 꼬마들이 치료를 받으려면 2년 정도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그게 힘든 일이더라고요.”

질의 : 어린이 재활은 오래 기다리면 안 되지 않나요.
응답 : “안 되죠. 빨리 하면 훨씬 더 좋아질 수 있는데…. 저희가 하루에 치료하는 꼬마들이 350~400명 됩니다. 전국에 장애를 가진 꼬마들이 30만 명 정도이고, 그중에 입원이 필요한 꼬마들이 3분의 1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부유한 사람은 외국에서 치료받고, 이민 가고….”

어린이재활병원이 일본에는 202개, 독일에는 140개, 미국엔 40개다. 그런데 한국에는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이 처음이다.

질의 : 시설 부족이 문제네요.
응답 : “그렇습니다. 왜 시설이 없느냐. 적자가 나니까 하지 않으려는 겁니다. 저희도 연간 30억원 정도 적자가 납니다.”

질의 : 적자를 없앨 방법이 없나요.
응답 : “불가능하고요. 그러려면 나쁜 병원들처럼 ‘이 꼬마가 좋아지려면 의료보험 적용 치료 한 번에 비보험 고가 치료 두 번 받아야 합니다’ 하고 해야겠지요. 그러면 부자들은 하겠지만 나머진 다 포기할 겁니다.”

그는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 우선 서울시가 안전망병원으로 지정해 매년 10억원 정도 지원하기로 했다. 중증 장애인에 대한 의료보험 수가 조정도 청원하고 있다.

그는 주말에는 꼭 병원에 간다. 대부분 집으로 가고, 지방에서 온 환자 가족만 남아 있다.

“보통 어머니가 올라오고, 아버지는 다른 형제와 지방에 있는 겁니다. 이산가족이 된 거죠. 이래서는 안 되죠. 권역별로 그런 병원을 만드는 게 우리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S BOX] 가수 션이 35억 모아주고, 축구선수 장현수도 1억 기부

백경학 상임이사는 약속 시간에 꼭 맞춰 들어섰다. 축구선수 장현수씨를 만나고 온다고 했다.

“배구선수 한송이씨 소개로 찾아와 1억원을 내놓았어요. 제가 듣기로 아버님이 택시 운전을 한다는데 참 대단하죠.”

그는 오전 5시에 일어나 e메일 확인, 전화와 편지 쓰기를 오전 중에 끝낸다.

“제가 최순실 같은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통화하기도, 만나기도 힘들어요. 10번 전화하면 한 번은 통화가 돼요. 10번 통화하면 한 번쯤 만날 수 있죠. 만나면 성사되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감동적인 기부자, 홍보대사가 많다. 가수 션은 혼자 35억원을 모았다. 매년 철인 3종 경기와 마라톤을 20차례 정도 참가하면서 페이스북에 2만원 기부를 요청한다. 부인 정혜영씨는 대회 전날 1000명 정도의 기부자 이름을 일일이 티셔츠에 새겨준다. 그러면서 “당신 더 열심히 뛰어야 해. 당신 뒤에는 30만 명의 장애 어린이가 있어”라고 격려한다고 한다. 션이 2012년 시작한 ‘1만원의 기적’에 1200명, ‘1000원의 기적’에 2000명이 참여했다.

미국에서 고교 시절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이철재 전 쿼드디맨션스 대표(10억원), 그의 벤처기업을 인수합병한 넥슨의 김정주 대표(210억원)는 거액을 내놨다. 푸르메재단 후원 문의 02-720-7002.

글=김진국 대기자 kim.jinkook@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출처 : http://news.joins.com/article/21090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