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생애 첫 가족 여행

[SPC 행복한 가족 제주여행] 

“여행이요? 꿈만 꾸는 일이죠.”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께 여행에 대해 물으면 이런 대답을 듣는 일이 많습니다. 아이를 보살피느라 24시간이 부족한 어머니에게는 여행을 꿈꿀 마음조차 허락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장애가 있는 형제를 둔 아이들도 바쁜 엄마에게 가족여행을 조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푸르메재단과 SPC는 장애어린이의 재활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재활 치료의 기회를 갖게 된 장애어린이와 가족들에게 쉼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온가족이 함께 떠나는 <행복한 가족 제주여행>입니다. 9가족 29명이 지난 9월 22일부터 2박 3일간 함께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광현이 엄마입니다. 올해 열네 살인 우리 아이는 지체장애와 지적장애를 가진 장애인입니다. 아기일 때부터 희귀난치성질환을 앓아 많이 아팠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휠체어를 타고 다녔고 대소변도 전혀 가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가족끼리 가는 여행은 정말 꿈도 못 꿨습니다.


 


광현이도 광현이 동생도 비행기를 타보고 싶다고 얘기한 적은 있지만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아이의 장애도 장애지만 여행비용이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집이나 그렇겠지만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고 치료도 받게 하려면 늘 빠듯한 살림입니다.

하지만 꾸준히 재활치료를 받으면서 광현이의 건강은 조금씩 좋아졌고 보조기를 하면 걸을 수 있게 됐습니다. 푸르메재단을 통해 지원 받은 정형신발을 신게 된 후로는 걷는 일이 조금 더 편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주도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하철을 타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로 기뻐서 소리를 지르고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그때부터 여행 이틀 전까지 아이들에게는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믿기지 않는 일이라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행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을 때 비로소 실감이 났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알려줬습니다. 우리 가족은 저마다 다른 설렘과 행복에 젖었습니다. 떨림에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결혼 전에는 저도 전국 일주를 할 정도로 여행을 좋아했기 때문에 여행이 주는 여유와 추억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여행 후에 돌이켜 생각하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도 말입니다. 한 번도 여행을 해본 적 없는 우리 아이들은 제주도 여행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도 모르고 “엄마, 학교도 안가도 돼? 비행기도 탈 수 있어?”하면서 좋아했습니다.



▶ 구름 위를 날아 모든 것이 작아지자 아이들은 무섭기도 신기하기도 한 표정으로 연신 “우와”하고 감탄했다.



드디어 9월 22일. 여행 가는 아침이 되었습니다. 설렘에 밤을 꼬박 새운 우리 가족은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는 가족이 탄 장애인 콜택시가 몇몇 눈에 띄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여행할 가족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인사를 건네기도 했습니다. 참 신기한 인연이었습니다. 그리고 공항 로비에 도착했을 때는 그런 신기한 가족을 여덟 가족이나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서먹함도 잠시, 다정한 인사가 오갔습니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한시도 활주로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엄마 이거 비행기 맞아? 엄청 크다!” 아이들의 커진 눈과 목소리만큼 가족들의 기대감도 높아졌습니다. 광현이 동생은 더 신이 났습니다.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 높이 날아갈 때, 구름이 아래에 보일 때. 매 순간 신기해했습니다.


아픈 광현이에게 모든 관심과 노력을 빼앗겨 힘들었을 딸의 웃는 모습을 보니 저도 덩달아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집과 차, 나무들을 내려다보며 광현이 치료를 위해 쳇바퀴 굴리듯 정신없이 살아왔던 지난 날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습니다.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해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드디어 제주도에 도착했습니다. “엄마, 여기가 티비에서 본 그 제주도야?” 아이들이 살짝 내 귀에 속삭였습니다. 도착하고 나니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이 실감이 나나봅니다. 결혼 전에 혼자 왔던 제주도를 아이들 손을 잡고 오게 되다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자 더 놀라웠습니다. 아홉 가족이 같이 가는 여행이라기에 잠도 다른 가족과 함께 잘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내라며 우리 가족만을 위한 방을 준비해 줬습니다. 게다가 맛있는 간식까지 준비돼 있어서 VIP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 절물휴양림에서 모처럼 딸아이 손을 잡고 걸었다. 낯선 조형물과 풀, 나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휠체어가 움직이기도 편해 마음껏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첫 날에는 용연다리, 용두암, 절물휴양림을 둘러봤습니다. 어딜 가도 보이는 파란 바다와 바다냄새, 돌하루방이 자꾸만 ‘여기가 제주도’라고 일깨워줍니다. 게다가 해산물이 가득한 제주도식 밥상은 매번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처음 맞은 ‘제주도 푸른 밤’에는 다른 가족들과 모두 모여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만 아픈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누구도 공감할 수 없는 우리 가족만의 아픔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다른 가족의 사연을 들으며 함께 웃고 울고 하다 보니 마치 내 가족인양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누구의 위로에서도 느낄 수 없던 ‘공감’이라는 것이 등을 토닥여 주는 듯 했습니다.


둘째 날에는 태풍으로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막진 못했습니다. 성산일출봉도 구경하고 아쿠아플라넷도 관람했습니다. 아이들이 참 좋아했습니다. 두 번째 밤에는 제주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곳에서 저녁을 먹고 다른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금세 늦은 밤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밤이 오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말할 수 없는 아쉬움이 밀려왔습니다.


이날 밤, 같이 갔던 유리네 가족은 티셔츠를 갖고 방에 찾아왔습니다. 기억과 사진 속에서만 여행을 꺼내보기 아쉽다고 옷에 덕담과 함께 이름을 써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온 가족들과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음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여행은 끝났지만 제주도에서의 2박 3일은 마음 깊은 곳에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며 치료실과 집을 오가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쉼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힘이 될 것입니다. 장애가 있는 광현이에게 밀려 엄마 손잡고 어딜 가본 적 없는 딸에게도 위로가 될 것입니다.


이번 가족여행은 우리 가족에게 아주 큰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잘 했다고 앞으로 잘 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주신 선물인 것 같습니다. 가슴 깊이 잘 간직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한 가족 제주여행>은 SPC와 함께 합니다.


 

* 행복한 가족여행, 사진으로 보기!





*글/사진= 신혜정 간사 (나눔사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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