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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인생은 아니다

지난 9월에 도착해, 3월 말까지 지냈었던 프랑스에서의 공부도 이제는 거의 끝났다. 남은 수업은 작문 수업을 비롯해 몇 개 되지 않았다.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다소 실망스러운 일이 있어서, 얘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목요일 아침 1교시, 페르피냥 대학 부속 어학연수원 CUEF(Centre Universitaire D’Etude Francaises)의 소형 강의실에서는 열댓 명의 학생과 선생님이 함께 작문을 공부한다. 참고로 이번 수업의 주제는 ‘차별’에 관한 것이었다. 타인으로부터 차별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를 하면 좋을지, 그 예시로 프랑스의 차별금지위원회와 같은 정부기관에 구제 편지를 쓰는 연습을 했다. 프랑스에는 차별금지위원회에 해당하는 HALDE(Haute Autorité de Lutte contre les Discriminations et pour l’Égalité)라는 최고기관이 있다. 여기서는 나이, 성, 인종, 장애 등의 이유로 타인으로부터 차별당했을 경우 이와 관련해 상담 및 신고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상담을 요청할 수 있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우리가 112에 전화하듯 전화 통화로 신고할 수 있고, 두 번째는 이메일을 보내 구체적인 내용을 상담받는 것이다. 이번 작문 수업은 이메일을 보내 본인이 겪은 차별행위에 대해 이메일로 상담받는 두 번째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프랑스 차별금지위원회 HALDE

처음 수업을 통해 이 기관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상당히 본받을만한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사회 전역에서 차별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피해자들은 본인이 당한 차별에 대해 신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며, 구체적으로 어느 기관에 접촉해 부당함에 대해 호소해야 할지 잘 몰라 넘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성 차별, 노동자 차별, 장애인 차별, 이주민 차별 등은 모두 각각 개별적인 기관에 신고 및 상담을 진행한다. 프랑스와 같이 차별이라는 사회적 범죄행위 전체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정부기관이 있다면 보다 효율적으로 구제 신청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참고로 프랑스 혁명의 이념이자 오늘날까지 프랑스라는 국가를 대표하는 자유, 평등, 박애(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의 정신이 이러한 사회 체계를 구축하는데 일조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프랑스 국적의 선생님 역시 이러한 정신과 사회체제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며 학생들에게 설명해주었다. 늘 그렇듯 결론은 이 세상에서의 차별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의 설명을 다 듣고 나서 작문 연습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학생 개개인 모두 본인이 당한 차별행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 후 차별금지위원회(HALDE)에 신고 및 상담 접수를 하는 이메일을 써보는 것이었다. 사실 학생 다수가 차별을 직접적으로 당했다고 생각이 드는 경험이 떠오르지 않아 상상해 작문했다. 본인의 경험을 쓰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무엇을 신고한다는 글에서 마땅히 쓸 만한 본인의 얘기가 없다는 것은 차라리 더 좋은 것 아닌가.

프랑스

나는 무엇을 써볼지 곰곰이 고민해보다가 한 가지 사건이 기억났다. 사실 프랑스에 사는 동안 장애인이여서 불편한 점을 많이 느끼지는 않았다. 저상버스가 다니고 장애인용 화장실이 어디에나 설치되어 있어 그간 누렸던 혜택이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굳이 찾자면 수백 년 된 건물들이 즐비하다 보니 계단이 주를 이루고 중요한 장소가 아닌 이상 엘리베이터 설치를 기대하기기 힘들다는 점. 그러나 비단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래된 건물들을 보존하는 데 큰 의미를 갖고 있는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수십 년 된 건물도 노후화되었다는 이유로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이 흔한 일이다. 이들이 아직도 보존하고 사용하는 수백 년, 천여 년 된 건축물들이 마을 곳곳에 즐비한 것을 보면 경외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여전히 라 데팡스(La Défense)라고 불리는 신도시보다 퀴퀴한 파리 원도심을 더 좋아하는 것을 보면, 고 건축물에 대한 이들의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 고 건축물 중에서 유명하지 않은 건물들은 한국보다도 엘리베이터 설치가 잘 되어 있지 않아 장애인들이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시설이 많다.

포괄적인 시설의 접근성을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불편한 것은 딱 하나. 학교생활과 관련한 것이다. 학교 강의실 의자가 너무 딱딱해서 매번 수업에 끝까지 집중하기 힘들었다. 특히, 나는 허리가 약간 구부러져 왼쪽 하체에 보다 많은 압력을 요구해 앉는데, 푹신한 좌석에 앉지 않으면 엉덩이가 금세 까지기 일쑤이다. 편한 자세로 수업에 집중하기 위해 학교의 장애학생지원센터에 푹신한 의자를 하나 요구했던 적이 있다. 지난해 9월 가을의 얘기이다. 그러나 해가 바뀌어 3개월이 다 지나 봄이 올 때까지 아직 아무런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다. 그 사이 나는 돗자리와 같은 간이용 깔개를 들고 다니며 그것에 의존해 수업을 듣곤 했다.

영어로 '차별금지'라고 쓰여진 의자들

한국에 있다가 프랑스에 가면 참 많은 분야에서 답답함을 느끼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와 같은 느린 일처리 속도와 불성실함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이러한 업무 문화를 싸데뻥(ça dépend)이라고 부른다. 해석하자면 ‘그때그때 다르다’는 것이다. 만약 한국의 어느 직장에서 일을 제때 해주지 않거나 잊고 있을 때 혹은 사람마다 다른 조치를 취해줄 때, 상대의 불만을 듣고 ‘나는 그 때 그 때 달라’라고 변명한다는 것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프랑스에 있다 보면, 종종 한국의 업무 처리 속도가 얼마나 빠르고 정확한지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설령 이러한 업무 문화가 있을지언정, 장애학생의 학습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은 장애학생지원센터 관계자 본인이 책임을 지는 것이 분명함에도 아직 그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를 추측해보다가, 혹시 내가 이 대학의 정규학생이 아니라 방문학생 정도인 어학연수생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내게 소홀한 것은 아닌지 싶었다. 나는 이것이 차별에 해당하는지를 묻는 편지를 작문하게 되었다.

편지의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관계자께,
저는 페르피냥 부속 어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장애 학생입니다. 지난 9월, 학교 관계자 분께 제가 수업 받는 교실에 장애학생을 위한 의자를 설치해달라고 요청을 드렸었으나 아직까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중간에 다시 요구했던 적도 있으나 여전히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러한 학교 측의 불성실한 태도가 아마 제가 장애학생이기는 하나, 대학교의 정규학생이 아닌 어학연수 부속 학생이여서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관계자의 불성실한 태도도 차별의 행위에 포함되는지, 혹시 그렇다면 처벌할 수 있는 관련 법안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다 쓴 편지를 선생님에게 전달했다. 맞춤법과 문법검사를 받기 위해 의례히 제출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선생님이 편지를 읽어보고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선생님 또한 마찬가지로 이 대학의 관계자로서 학생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문법 검사 또는 맞춤법 검사보다도 모의로나마 신고서를 제출한다는 것이 나를 떨리게 만들었다. 선생님은 편지를 천천히 읽었다. 다른 학생들의 것보다 더 긴 시간을 들여 읽어 보는 듯했다. 끝까지 읽고 나서 내게 물었다. “이 내용이 사실이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사실입니다. 저는 아직까지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채점을 마친 선생님은 왼손으로 안경을 벗으며 고민하듯 조금 머뭇거렸다. 그러면서 머지않아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C’est la vie”라고 말이다. 직역하자면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사는 게 그렇지 뭐.’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듯하다.

만년필

대답을 들은 그 순간 가슴이 답답해지는 듯했다. 너무도 큰 실망감이 나를 덮쳐왔다. 사는 게 그렇다니. 수업시간 내내 차별에 대해 배웠고, 그것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편지를 쓰는 것이 이번 수업의 목표였는데, 정작 용기를 내어 설명한 나의 사정을 듣고서도 그렇게 위로할 수 있다니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이것은 프랑스 사람들의 싸데뻥(ça dépend)과도 같은 태도였다. 세상에 장애인을 위한 의자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요구한 의자 역시 그렇다. 크고 거창한 특수재질로 만들어진 의자를 요구한 것이 아니다. 그저 방석이 있는 푹신푹신한 의자를 요구한 것이 전부였다.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그런 의자 말이다. 그러나 나의 요구는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들이 나를 차별하기 위해 악의적으로 행동했다기보다는 그저 프랑스의 업무 문화인 싸데뻥(ça dépend)때문일 것이다. 아마 그때 그때기분에 따라 다르게, 나의 요구를 까먹고 또 까먹었을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녀가 해준 대답은 ‘그것이 인생이란다.’ 사는 게 그렇다는 위로 정도밖에 없다니.

항상 폭력적이고 눈에 띄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만을 차별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것은 때로 은밀하고 교묘하게 이루어지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오직 피해자 본인만이 느낄 수 있는 차별도 존재하는 법이다. 단지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괴롭히거나 방해하고, 서로 다른 인종에 대해 손가락질을 하고, 종교를 폄훼하는 적극적인 행동만이 차별이라고 불리는 것은 아니다. 부당함을 목도하면서도,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들었음에도, 못 본 척 못 들은 척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차별이다. 선생님이 나의 얘기를 듣고서도 ‘그런 게 인생이지 뭐’하고 넘어가자는 그 태도도 앞서 언급한 차별에 충분히 해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생이 아니다. 차별당하는 삶은 인생이 아니다. 참고 살아야 하는 것은 인생이 아니다. 존엄성이 존재하지 않는 나 자신은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하는 권리에 대해 존중받고, 인류 보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타인과 공감하며 함께 도우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한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프랑스의 옛 사람들은 알고 있었기에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국가공동체의 중심으로서 오랜 시간 동안 주장해온 것이다. 사실 프랑스를 떠나기까지 한 달을 남겨두고, 이렇게 실망적인 얘기를 듣게 되어 그 누구보다도 가장 속상하다. 이번 문제의 본질을 프랑스인의 성격과 연관시켜 고정관념을 만들 필요는 없다. 세상에는 타인에 대해 잘 공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기에, 그것은 국가를 초월한 개개인의 성향에 가깝다.

푸른 잎이 활짝 핀 나무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선진적인 인권의식과 복지체계에 대해 기대했던 프랑스에서도 이러한 사례를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이심전심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의미인데, 이러한 태도가 한국의 정(情)이라는 정신을 만들었다. 각박한 한국 사회에서 아주 빠르게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어 아쉬울 따름이다. 차별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이심전심 그리고 역지사지밖에 없다. 시스템보다 더 앞서야 하는 것은 배려와 공감이다. 프랑스의 훌륭한 시스템을 보며, 또 한편으로 섭섭한 차별을 겪으며 스스로 내리게 된 결론이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뿌리가 되어 체계라는 가지와 연대라는 가지가 자라나 울성하고 튼튼한 인류의 나무가 되고 차별과 같은 병충해가 사라지는 것이다.

*글= 변재원 작가

변재원 변재원 작가는 1993년 10월 30일생으로 생후 10개월에 불의의 의료사고로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했고 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주제의 칼럼들을 기고하고 있다. 마주하기 힘든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고, 사회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책임있는 삶을 사는 것이 그의 꿈.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존레논과 아웅산 수지 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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