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세상의 편견을 뛰어넘다

[푸르메인연] 고정욱 동화작가를 만나다


 


“저요! 저요!” 초등학교 강당에 모인 어린이들이 두 눈을 반짝이며 목청껏 외칩니다. 휠체어에 탄 채로 동화책을 들어 보이는 이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장애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스타 강사’. <가방 들어주는 아이>,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실이> 등 250여 권의 동화를 집필해 400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한 ‘베스트셀러 소설가’. 30여 권의 인세를 꾸준히 나눠 온 ‘열혈 기부자’. 이 모든 수식어를 아우르는 사람은 바로 고정욱 작가입니다.


▲ 고정욱 작가가 신간 <굴러라 슈퍼 바퀴>를 들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 고정욱 작가가 신간 <굴러라 슈퍼 바퀴>를 들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장애인의 삶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고정욱 작가를 지난 11월 18일 서울 양원초등학교 강연장에서 잠시 짬을 내어 만났습니다. 화통한 목소리만으로도 열정적인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다방면으로 왕성한 활동을 소화하면서도 다작을 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했습니다. “제가 조금 천재거든요.(웃음)”라며 싱긋 웃더니 말을 잇습니다. “그게 아니라 글과 말과 생각과 행위로 장애인의 고통과 아픔을 온 세상에 알리려는 제 소명을 충실히 완수하기 위해서죠.” 그래서 하루 24시간을 아껴 쓰기 위해 분투합니다. 밥 먹을 때, 이동할 때,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릴 때면 자동반사적으로 가방에 넣어둔 자료를 꺼내 봅니다. “신은 모든 인간에게 매일 24만 원을 줍니다. 하루에 다 써버리는 사람과 최대한 아껴 쓰는 사람의 삶의 질은 다르죠.”


그의 책은 재미있고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감동이 있습니다. 한번 읽기 시작한 책은 쉽사리 놓을 수 없습니다. 장애를 소재로 한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펼쳐집니다. 소아마비로 1급 지체장애인이 된 고정욱 작가는 친구들과 뛰어 놀 수 없었던 어린 시절, 집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에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책만 펼치면 달타냥과 모험을 떠났고 로빈슨 크루소와 대양을 표류했습니다. 뼛속 깊이 밴 독서 경험은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짓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 서울 양원초등학교에서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치는 고정욱 작가. 질문을 던지자 어린이들이 손을 번쩍 들고 있다. 뜨거운 환호와 열기로 가득하다.
▲ 서울 양원초등학교에서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치는 고정욱 작가. 질문을 던지자 어린이들이 손을 번쩍 들고 있다. 뜨거운 환호와 열기로 가득하다.

얼마 전, 248권 째 동화책 <굴러라 슈퍼 바퀴>를 출간했습니다. 작가와 화가, 출판사가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푸르메재단에 기부하는 동화책 시리즈 ‘푸르메놀이터’의 5번째 책. 뇌병변 장애를 가진 어린이 ‘주인이’가 다재다능한 휠체어 ‘힐링이’를 만나며 세상 밖으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작가로서 장애인으로서 강사로서의 정체성에 가장 충실한 작품”이라고 소감을 밝힌 고정욱 작가. “장애인들이 겪는 고



통과 아픔은 이동권에서 나옵니다.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을 한 번도 못 가봤어요.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는 세


상이 되면 교육을 받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는 일이 훨씬 쉬워질 것입니다.”


실제로 고정욱 작가는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가족들을 태우고 여행을 떠나며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차가 막힐 때도 짜증이 나는 대신 비장애인과 어깨를 겨루며 삶의 현장에 있다는 생각에 즐


겁기만 합니다. “장애인에게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재활수단”이라는 고정욱 작가의 말에 이동의 불편함을 겪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법합니다.


 


▲ 유쾌하고 재밌는 입담으로 어린이들과 장애를 주제로 소통하는 ‘어린이의 대통령’ 고정욱 작가.


나눌 수 있어 행복한 인생


고정욱 작가는 장애어린이의 재활을 위해서 푸르메재단에 정기기부를 시작으로 기회가 닿을 때마다 동화책의 인세를 기부했습니다. 인세 전액을 기부하기 위해 쓴 <희망을 주는 암 탐지견 삐삐>,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나 때문이야>, 희귀난치병을 가진 은총이를 돕기 위해 쓴 <달려라 은총아>는 이런 인연을 통해 탄생한 작품입니다. 장애어린이와의 동행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장애청소년 글쓰기 강의와 장애어린이들과의 거제도 여행을 함께하기도 했습니다. 아프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단체들에 기부하는 것도 일상이 된지 오래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능력으로 남에게 기부하는 게 가장 행복합니다.” 그에게 나눔은 행복해지는 습관인 셈입니다.


▲ 2011년 푸르메재단이 짓는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해 1천만 원 기부를 약정한 고정욱 작가. (푸르메재단 DB)
▲ 2011년 푸르메재단이 짓는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해 1천만 원 기부를 약정한 고정욱 작가. (푸르메재단 DB)

그의 꿈은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500권의 책을 내는 것입니다. 이미 절반을 달성한 상태인 현재, 글 쓰고 강연하며 기부하는 것 외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당당히 자신의 일을 갖게 하는 것. 외부활동이 어려운 재가장애인이 일을 할 수 있게 되고, 중증장애인이 전국의 학교에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장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르칠 수 있기를 고정욱 작가는 바랍니다. 장애인식개선을 위해 전국을 누비는 자신의 역할을 후배와 제자에게 나눠줄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행복한 공존을 위해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발산합니다.


매번 강연 때마다 어린이들에게 힘주어 말합니다. “장애인을 차별하면 미래의 나를 차별하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서 사람은 아침엔 어렸을 때(아침) 네 발로 기고, 자라서(낮)는 두 발로 걷고, 늙어서(저녁)는 지팡이를 짚어 세 발로 걷는다고 해요. 장애가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인 이유죠.” 이해하기 쉬운 설명에 아이들은 낯설게 느껴졌던 장애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 강연을 마치고 자신이 쓴 동화책에 사인을 해주고 있는 고정욱 작가.
▲ 강연을 마치고 자신이 쓴 동화책에 사인을 해주고 있는 고정욱 작가.

어린이 독자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장애인의 친구가 되어달라”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목발을 짚는 자신을 대신해 가방을 들어줬던 친구를 떠올리며 썼던 <가방 들어주는 아이>의 ‘석우’처럼 말입니다. 자신을 업어주고 대신해 싸워주고 도와준 친구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존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장애인에게 친구는 복지와 재활의 다른 이름입니다. 친구로 인해 삶이 즐겁고 풍요로워져요. 함께 놀고 얘기하고 밥을 먹는 것은 치료를 받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동화로 허무는 고정욱 작가. 동화로 그려내는 따뜻한 이야기를 꼭 빼닮은 세상을 꿈꿔봅니다.


고정욱 작가 이메일 kingkkojang@hanmail.net

*글, 사진= 정담빈 간사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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