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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는 느려도 목표를 향해 달린다.

[네버엔딩 인터뷰] 15. 종로아이존 한일웅 센터장 

 

겉만 봐서는 구분이 안 되는 알곡과 쭉정이. 하지만 그 쓰임은 천지 차다. 알곡은 우리 배를 채우는 곡식이 되고 쭉정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껍데기로 버려진다. 알곡만 얻고 싶지만 한데 섞여있어 골라내기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키질이라는 노동을 통해 알곡만을 골라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효과적인 키질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바람이다. 바람 앞에 쭉정이는 저 멀리 날아가고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알곡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련을 이겨내고 자기 일을 해낸 사람을 ‘알곡 같이 꽉 찬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알곡 앞에 바람은 시련이 아니다. 내가 알곡임을 증명하는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뿐이다. 

한일웅 센터장의 살아온 인생을 엿들으니 알곡 같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인생과 마주한 고난을 담담히 맞선 그는 이미 알찬 사람이었다.

Q1. 종로아이존의 멋쟁이, 한일웅 센터장님 안녕하세요? 언제나 환한 미소와 인사가 변함없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1. 안녕하세요. 저는 종로아이존에서 발달장애아동의 치료와 재활을 돕고 있는 한일웅 센터장이라고 합니다. 제가 연애에 대한 감이 느려서 노총각으로 있다가 전 직장 직원의 소개로 아내를 만나 2012년에 결혼했습니다. 작년 6월에 태어난 7개월 된 아들이 있는데 요즘은 아내가 가끔 보내주는 아들 사진에 저도 모르게 힘이 솟고 미소가 지어지곤 합니다.

저는 10년 넘게 정신과 병원에서 정신보건사회복지사로 근무했습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정신보건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게 된 것은 어머니 때문이었습니다. 두 명의 누나들이 결혼하고 저 역시 군대에 있던 시절인데 어느 날 휴가를 나와 보니 어머니의 표정이 다른 분 같았고 반가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누나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폐경기에 우울증까지 겹치면서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상태가 나빴다고 합니다. 군에 있는 제가 걱정할까봐 가족들이 알리지 않았지만 그날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저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정신과 공부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Q2. 종로아이존이 발달장애 어린이를 위한 시설로 알고 있는데요. 아이존 소개와 센터장님이 근무하시게 된 사연이 궁금합니다.  

A2. 10년 넘게 병원에서 일하면서 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병원은 사회복지영역에서는 2차 세팅이기 때문에 사회복지사업에 대한 한계가 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지역사회에 나가 복지사업을 하고 싶었는데 우연하게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대학원 친구에게서 푸르메재단에서 사람을 뽑으니 응모해 보라고 해서 지원하게 됐는데 덜컥 합격이 돼서 이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치료실 공사와 직원 채용, 운영에 대한 세팅 등 몸이 10개라도 모자라는 일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다행히 종로장애인복지관 최종길 관장님께서 조언과 도움을 주셔서 4~5주의 짧은 시간에 잘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개소식을 끝내고 다음날 탈진하여 수액을 맞고 와서 직원들과 회의를 할 정도로 바쁘게 보냈던 2012년 여름은 영원히 추억될 것 같습니다.

종로아이존은 공공부문에서 국내 최초의 지역사회 발달장애아동 치료 전문기관입니다. 치료를 위해 많은 대기 시간이 필요하다는 부모님들의 요구에 의해 서울시에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아이존 탄생의 첫 번째 이유가 시립병원 대기자 해소였지만 종로아이존의 경우 현재 대기자가 100여 명이 넘을 만큼 여전히 치료기관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종로아이존은 발달장애아동의 통합적인 치료서비스 및 전문화된 프로그램으로 장애아동과 부모님들의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중점을 두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Q3. 종로아이존 이야기가 나오자 센터장님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말 나온 김에 종로아이존에 대한 자랑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A3. 저를 포함해 직원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것은 종로아이존이 국내 최초로 발달장애아동의 치료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사실 지난 2년여 시간 동안 많은 시행착오와 마음고생을 했습니다. 그 만큼 우리나라의 발달장애아동에 대한 치료 환경이 척박했습니다. 모르시는 분들은 그냥 아이들 치료만 열심히 하면 되지 않냐 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적은 치료 인력으로 제대로 된 치료서비스를 구축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늘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조금 늦더라도 확실히 가자고 맘을 먹고 국내 전문가 선생님들을 찾아뵙고 조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푸르메재단의 재정지원으로 숙명여대와 손잡고 발달장애아동 가족에 대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가을부터는 이화여대, 나사렛대학교의 협업으로 ‘발달장애아동 학교 준비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치료서비스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이용자들의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이런 다양한 아이들의 변화와 효과들을 잘 정리해서 3주년을 맞는 올 가을에 심포지엄을 열어 발표할 생각입니다.

Q4. 종로아이존을 이용하시는 부모님들께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A4.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한없는 기쁨이라는 것을 저도 부모가 되고 알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모님들이 아이를 위해 희생도 따르기 마련입니다. 오죽했으면 ‘육아스트레스’ 평가도구가 생겼을까 싶기도 합니다. 특히 발달장애는 거의 평생토록 자녀의 치료와 일상생활을 부모가 함께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부모님들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 하실 때 저 또한 안타깝습니다. 장애아동에 대한 책임을 아직도 한 가정에게만 돌리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사회가 나눠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종로아이존에서는 장애아동 양육과 치료에 대한 코칭을 강화하고 부모힐링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하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아이가 건강하려면 부모님이 건강하셔야 합니다. 언제나 힘내시고 기운을 잃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Q5. 개인적인 질문을 더 드리겠습니다. 센터장님께서 사회복지사가 된 이유가 있으신지요? 또 일하시면서 느끼는 보람은 어떤 것이 있는지요. 

A5. 저의 집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건설현장에서 일하시고 어머니도 병원 식당에서 일하면서 삼 남매를 키우셨습니다. 자식만 잘되길 바라며 성실하게 일하셨던 부모님 영향으로 저 또한 어린 나이에 조금 일찍 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어릴 적부터 성당에 다녔는데 신부님 옆에서 미사를 돕는 ‘복사’라는 것을 초등학교 3학년부터 9년 정도 했습니다. 몸이 아픈 날도 빠질 줄도 모르고 미사에 참례 하며 기쁜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성당에서 이런저런 봉사활동을 자주하게 되었고 사회복지사에 대한 꿈을 키웠습니다. 이런 저의 성장배경과 적성 등으로 망설일 이유 없이 사회복지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치료를 하면서 느끼는 보람은 누구나 같을 것 같습니다. 내가 치료한 사람이 나아지거나 회복 될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또한 이용자께서 작은 말이지만 “감사하다.”고 말씀해 주실 때 힘이 납니다. 반대로 아동 치료를 양적으로만 평가하려는 분들이 계실 때 힘이 빠지곤 합니다. 발달장애아동은 개별 치료 중심으로 서비스가 되는 것이 많아 효율성은 낮아 보일 수 있지만 필요성은 분명 크다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6. 훈훈한 외모와 다르게 상당히 치열하게 사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센터장님에게 일은 어떤 의미 인가요?    

A6.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거의 일중독으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 병원에 근무 할 때는 3개월가량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일과 공부를 병행했습니다. 전임자 3명이 갑자기 그만두면서 일은 넘쳐났고 장교출신의 부서장님은 근엄하셔서 일을 해결해 달라고 말조차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전문성을 더 높이겠다고 무작정 도서관을 찾아가 정신과에 관련한 논문이나 연구서적을 읽으면서 밤을 보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결과중심’으로 일하다 보니 최고의 성과를 위해 과욕을 부리기도 했고 과정을 소홀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제가 지도하였던 정신보건전문요원 수련생들이 전국에서 1등을 했는데 막상 함께 동거동락 했던 수련생들은 크게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한 수련생은 저에게 과민성대장증후군 위장약을 꺼내며 “이제 이 약은 더 이상 안 먹어도 됩니다.”라며 약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이왕 할 일이라 1등을 하면 모두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저만의 착각이었습니다. 충격과 서운함을 동시에 받고 저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저를 바꾼 인생의 한 마디는 ‘달팽이는 ing’입니다. 지도 교수님 블로그에서 본 문구인데 문득 스쳐보면 정지돼 있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달팽이는 조금씩 정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달팽이의 우직함처럼 저도 천천히 주위도 둘러보며 책임감 있게 묵묵히 발달장애아동을 위한 치료사업을 성실히 수행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Q7. 조금 허황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만일 로또에 당첨되어 20억을 받는다면 어디에 쓰실 건가요?  

A7. 저는 운도 없고 요행을 바라는 성격이 아니라서 응모나 복권을 잘 구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10년 전쯤 병원에서 당직을 서다가 재미삼아 로또를 산 적이 있습니다. 당시 함께 근무했던 경비원, 운전사 분에게 “만약 이 로또가 당첨되면 3등분 할게요!”라고 아무 생각 없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로또 3등에 당첨되어 300여 만 원을 받았습니다. 농담으로 내 뱉은 말이지만 정확히 나누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고 이후 말 한마디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질문에 대한 답은 제가 경험이 있어서 로또 20억이 된다면 정말 신중해야 할 것 같은데요. 약속 할 수 있는 것은 우선 성당에 십일조로 10%를 기부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또 푸르메재단에 1억을 내서 당당하게 더미라클스 회원이 되고 싶습니다. 남은 돈으로는 마당이 있는 집을 사고 부모님과 형제에게도 드리고 싶습니다.

Q8. 2015년에 개인적으로 바라는 꿈이나 해보고 싶은 일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가족과 함께 이룰 희망도 있을 것 같습니다. 

A8. 형편이 못 되서 신혼여행으로 첫 해외여행을 다녀왔지만 처음 보는 외국 풍경과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작년부터 아내와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여행을 갈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입니다. 저희 부부를 키우면서 고생하신 부모님들에게 꼭 다른 세상을 보여드리고 행복한 추억도 남겨드리고 싶습니다.

제 꿈은 발달장애아동에 대한 지역사회 치료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 지역사회는 병원과 달리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자원을 폭넓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통합적인 관점에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신보건전문요원이 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뤄뒀던 공부도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Q9. 센터장님의 인터뷰를 추천했던 안영수 조리사에 따르면 항상 먼저 웃고 인사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제가 봐도 늘 밝은 표정이셔서 비결이 궁금했습니다. 

A9. 어릴 적부터 어른들께는 인사를 잘 해야 한다고 부모님께 철저한 교육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병원에 근무하면서 받은 친절 교육이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직장에 출근해서 제가 먼저 인사를 드리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잘 모르는 다른 기관의 분들에게도 먼저 인사를 하면 호감도 높아지고 기관의 가치를 높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인사가 돈 안들이고 자신과 기관을 알리는 훌륭한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Q10. 잘 몰랐던 종로아이존에 대한 소개와 센터장님에 대한 이야기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 인터뷰 주자를 추천해 주셔야 하는데 혹시 생각해 보셨죠? 

A10. 이 분은 사회복지사라고 알고 있는데 다른 재능도 많은 분 같습니다. 종로아이존에서 푸르메재단 홈페이지에 가끔 사업 활동을 올리는데 정말 마법처럼 글과 사진을 다시 태어나게 해주시는 분입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잘 알리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더 많은 분들이 함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법의 주인공은 푸르메재단 커뮤니케이션팀에서 근무하고 계신 이예경 선임간사님입니다. 글과 사진을 잘 만들어내는 노하우를 알려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잠시 퇴사하셨다가 재입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집 나간 사연과 푸르메재단에서 근무하시면서 경험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이예경 선임간사님, 부탁해요~

*글, 사진= 한광수 팀장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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