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섹션

사춘기 장애인 학생으로 살아온 시간

2015년, 대학교 4학년 졸업반이 되었다. 이번 해가 나의 마지막 졸업학년이다. 졸업을 앞두고 주변에서는 삼・사수 끝에서야 이제 대학을 입학한다는 또래 친구들의 기쁜 소식이 들려오기도 한다. 또 군에서 제대하여 복학을 준비하는 동기 친구의 소식도 들린다. 대학 졸업을 앞둔 요즘, 대학 입시를 공부하던 5년전 시간이 참 많이 떠오른다.

지난 5년의 시간은 순탄치 않았다. 나는 장애로 인한 사춘기를 지독하게 지내는 바람에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고등학교를 자퇴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개월간 공부한 끝에 검정고시를 합격했고 대학입학까지 도서관에서 독학을 했다. 장애인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님들께 도움이 되고자 내 수험시절 얘기를 간략하게 공유하고자 한다. 오늘의 주제는 ‘사춘기 장애인 학생으로 살아온 시간’에 대하여이다.

긍정하고 싶지만은 않지만 한국사회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밤을 새가며 공부하는 이유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하여’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좋은 대학교를 다니고 싶어 공부를 열심히 해왔다. 어릴적 나는 공부를 꽤 잘하는 편이였다. 초등학생 때는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 때는 내신 10% 안팎의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 문제는 중학교 2학년때부터이다. 내 성적은 추락해 전교 500명 중 약 300등 정도의 성적이 부진한 학생이 되었다. 정말 단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드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사춘기는 나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장애학생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시기이다. 사춘기에 접어든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자신의 장애를 전에 없이 비관적으로 바라볼 뿐만 아니라, 또래들과의 성장이 현저하게 차이나기 시작할 때이다. 이는 단순히 신장과 몸무게의 차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체력에서의 차이까지 심화된다. 대다수의 장애자녀를 둔 부모는 이러한 시기를 겪는 자녀들에게 마음을 굳게 먹고 극복해나가기를 바라겠지만, 장애학생 당사자에게는 말처럼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장애를 처음으로 낯설게 마주하는 시간이며, 또래와 비교하며 자신의 육체적 외모와 한계를 더욱 실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전까지 부모님 말을 잘 듣는 자녀였음에도 15살 전후의 사춘기를 경험하며 처음으로 내 장애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키 큰 어른들처럼 쭉 빠진 수트를 입고 길가를 거닐고 싶고 또 멋진 남자로 보이고 싶기도 했다. 당장 중학교 운동장에는 땀을 적셔가며 축구와 농구를 하는 친구들이 너무도 부러웠다. 그들과 함께 뛰어놀고 같은 주제의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다리가 불편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나에게 운동이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저 학교가 끝나면 학교 옆 PC방에 들려 게임을 밤새 하다가 집에 가곤 했다.

머지 않아 게임에 중독되었다. 게임은 환상 그 자체였다. 게임에서의 내 캐릭터는 다른 유저들과 다를 바 없었다. 캐릭터는 내가 시키는대로 뭐든 해냈다. 걸으라면 걷고, 뛰라면 뛰고, 때리라면 때리는 식이었다. 제대로 걷지도 뛰지도 못하는 내게 가상 캐릭터는 나보다 더욱 애착이 가는 존재였다. 게임 내 사람들과 마음껏 얘기를 나눠도 그들은 내가 장애인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장애인이기에 어려워하는 듯한 부담도, 힐끗힐끗 쳐다보는 현실의 폭력적인 시선도 없었다. 불만과 욕망을 채워주는 데 있어 컴퓨터게임이면 충분했다.

날이 갈수록 몸은 점점 더 약해져만 갔다. 밥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피시방에서 컵라면을 먹거나 컴퓨터 책상 앞에서 밥을 먹곤 했다. 그렇게 또래들과 학업수준, 체력수준 무엇하나 할 것  없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학생이 되었다. 게임에 완전히 몰입한 그때부터 나는 등교조차 소홀하게 되었다. 집에서는 매일 나무라며 정신력이 약하다고 구박했지만, 부모님의 잔소리는 아무래도 괜찮았다. 게임 속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항상 인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중학교 시절 내내 게임을 했고 300등이 넘는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초기까지만 해도 신입생의 설렘을 가득 안고 이제부터는 게임을 끊고 공부를 새로 시작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너무도 늦었다. 힘들었다. 수업이 하나도 재밌지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또 이동식 수업이라 매 시간 계단을 오르내리며 과목을 수강해야해서 너무 힘들었다. 학교에는 엘리베이터조차 없었다. 겨우 수업을 마치면 바로 저녁까지 보충수업이 이어졌다. 석식을 먹고 나면 밤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이 이어졌다. 그것도 매일 말이다. 나는 남고를 다녔었다. 또래 남자친구들 역시 계속되는 타이트한 학습 일정에 힘들어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 견딜만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체력이 부쳐 견딜 수 없었다. 또래와 비교하며 낙오자가 되어만 가는 자신을 보며, 또 작은 키의 어설픈 몸매를 갖게 만든 내 장애를 보며 정신적으로 견딜 수 없었다. 결국 끊어야겠다는 게임을 끊지 못하고, 몇 달 새 다시 컴퓨터를 켰다. 몇 달 만에 접속했음에도 많은 친구들이 여전히 나를 기억해줬고 환영했다. 게임에서 나는 아직까지도 강력한 존재였다. 다음날부터 나는 학교에 무단결석해 부모님 몰래 PC방에서 하루종일 게임을 했다. 교문에 들어가는 걸 부모님이 기어코 감시할 때면 잠시 학교에 들어가는 척 했다가 또 다시 나와 무단 조퇴를 하고는 PC방에 갔다.

여름이 채 다 지나지 않아 결국 입학 몇 개월 만에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부모님은 매일 밤낮 우셨다. 밤마다 나에게 소리지르고 화를 내고 다그치기도 하셨다. 그럴수록 더욱 반항하고 무시하고 싶었다. 마냥 게임이 하고 싶었다. 자퇴하고 1년 가까이 온종일 컴퓨터 게임을 했다. 친구들이 고등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자습할 시간까지도 말이다. 게임을 얼마나 많이 했냐면, 일주일은 164시간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컴퓨터에 입력된 최고 게임 접속시간은 일주일에 140시간 정도였다. 그러니까 하루에 4시간 정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온종일 게임에 접속해 있던 셈이다.

사춘기 동안 2년의 시간을 게임으로 모두 소비하고, 19살이 될 때쯤 연락마저 끊고 지내던 또래 친구들의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곧 있으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를 고3이 되었기 때문이다. 친구 몇명은 종종 희망하는 대학에 입학하는 꿈 얘기를 들려주곤 했다. 대학 입시와 관련한 얘기를 듣다보니 갑자기 스스로 조급해지고 답답해졌다. 나는 미래에 계획해둔 일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게임 캐릭터는 최고 권위에 오른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루고 싶은 것이 마땅히 없었다. 허무함과 무기력함이 더해져갔고, 며칠간 방에 누워 잠만 잤다. 그 와중에도 친구들의 얘기가 귓가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도 대학을 가고 싶다, 아니 대학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졸업증과 대학수학능력 시험 성적이 필요했다. 중학생 때부터 공부를 하지 않았던 터라 당장의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 시험 문제가 너무도 어렵게 느껴졌다. 각오를 하게 된 그날부터 동네에 있는 검정고시학원을 다녔다. 아주머니 수강생 분들과 함께 공부했다. 몇 달 뒤 치른 4월 검정고시 시험에 합격해 고등학교 졸업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자신감을 얻게 되어 부모님께 수능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부모님의 지지를 받아 서울의 한 재수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현역 학생인 내게 재수생들이 공부하는 수능과정은 너무 어려웠다. 한 달이 안돼 포기하고 집에서 EBS를 들으며 나름 독학했다.

그러던 중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의 입시전형을 보게 되었다. 때마침 한예종에서 올해부터 특수교육대상자-장애인-전형을 새로이 실시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예종 입학에 있어서 수능성적이 필요하지 않은 대신 자체 시험을 따로 본다고 들었다. 그때부터 진로를 완전히 돌려 한예종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떤 유형의 문제가 자체시험에 나오는지 몰라 무작정 도서관에서 내가 입학하고자 하는 예술경영학과와 관련한 서적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보았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입시에 도움이 될 만한 글들은 따로 필기해두었다. 또 스스로 면접을 준비하며 예상 질문과 답변, 가상의 기획서 등을 수십장 만들어보기도 했다. 남들이 수능공부 할 틈에 혼자 수능과는 무관한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있으니, 부모님은 내심 불안해하셨다. 그럼에도 처음으로 게임이 아닌 무언가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응원해주셨다. 9월 입시까지 약 3개월간 한예종 입학시험을 준비한 끝에 시험을 보러 갔다. 입학하기 위해 작성한 자기소개서와 연구계획서를 수없이 읽어보며 되뇌었다.

시험장에 도착했다. 예술과 관련한 논문을 하나 받게 됐고 논문주제를 토대로 면접관으로 참석한 교수님들과 함께 약 30분간 토론해야했다. 뿐만 아니라 왜 고등학교를 그만두었는지, 어떻게 이 시기를 살아왔었는지, 내 장애가 어느정도로 학습에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얘기도 주고 받았다. 지나온 시간, 특히 사춘기 이후로 게임에 빠져지낸 이 순간, 박탈감을 느끼는 순간, 나의 장애를 혐오했었던 부끄러웠던 순간을 모두 솔직하게 교수님께 말씀드렸다. 추가로 논문에 대한 토론을 마치고 나서 약 보름 뒤, 합격 통지서를 받게 되었다. 그날 아파트가 떠나가라 소리질렀었고, 이듬해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올해 졸업을 앞둔 지금까지 약 3~4년의 시간 동안 전액 장학금을 받기도 했을만큼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또 내가 쓰는 글이 학교 내외에서 인정받기 시작했고 푸르메재단에도 칼럼을 기고하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게임에 접속하지 않는다. 외롭지 않기 때문이다. 전처럼 마냥 슬프지도, 무언가가 원망스럽지도 않다. 학교생활을 하며 다시 새로운 꿈이 생겼고 이를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다.

끝으로, 사실 나는 한국사회에서 대다수의 입시생과는 다른 방식으로 운좋게 대학에 입학한 케이스이다. 그럼에도 내 얘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푸르메재단의 글을 읽고 계신 많은 독자 분들이 장애인 자녀를 두고 있고 또 실제로 장애인 자녀를 어떻게 양육하고 가르쳐야 할지 크게 고민하고 있으심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당시의 나처럼 게임에 몰입한 자녀를 두고 울며 밤을 지새우는 부모님도 분명 계실 것이다. 그러한 부모님들께서 꼭 이 글을 읽어보았으면 한다.

어머니 아버지, 귀하의 자녀는 천성적으로 근성이 없거나 나약해서 게임을 하거나 탈선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게임 바깥의 자신을 인정해주는 이들이 없을 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게임 내로 전이되어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고 또 동등한 위치에 서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의 자녀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그들의 박탈감은 더욱 클 것입니다. 또래 친구들의 급격한 성장을 보며 스스로 위축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위축된 자녀를 무작정 다그치지 마세요. 또 절대 또래 친구들과 학업수준을 비교하지 마세요. 나는 왜 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인정하는 시간은 부모님께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린답니다. 장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는 관계없습니다. 자신의 장애가 급격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2차 성징, 즉 사춘기의 시기에 비로소 장애를 스스로 인식하기 시작하니까요.

세상은 나의 장애를 어서 빨리 인정하라고 강요했습니다. 하루빨리 사회에 편입되어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어른들은 희망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우리를 다른 시선으로 쳐다봅니다. 불쌍하다며 혀를 끌끌 차기도 합니다. 성인이 된 지금 그 시선을 개의치 않지만, 사춘기 시절에는 지나다니는 행인 모두가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끔찍히도 싫었습니다.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인식되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도망친 탈출구는 게임 속 세상이었습니다.

오늘 밤, 자녀 분과 천천히 얘기를 나눠보세요. 그리고 자녀분의 생각을 존중해주세요. 마음을 이해해주세요. 행복한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남과 비교하지 않는 그런 삶 말예요. 비장애인과 비교당하는 삶은 너무도 힘들어요. 슬프지만 자녀 분의 신체적 한계를 인정해주세요. 그리고는 새로운 개선방법을 함께 찾아나가세요. 인정하는 것부터 새로 천천히 시작하면 됩니다. 믿어주세요. 사랑해주세요. 조금 더 인내하고 지켜봐주세요.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 부모님의 욕심은 잠시 접어두고 자녀의 편에 서서 함께 탐구해주세요. 분명 닫힌 마음이 열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글= 변재원 작가

변재원 작가는 1993년 10월 30일생으로 생후 10개월에 불의의 의료사고로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하고 있으며, 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주제의 칼럼들을 기고하고 있다. 마주하기 힘든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고, 사회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책임있는 삶을 사는 것이 그의 꿈.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존레논과 아웅산 수지 여사이다.

기부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