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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사랑할 자유를

최초의 인류 루시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학계에서는 루시가 남성인지 여성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루시가 다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비교했을 때 그 신장과 몸무게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았기 때문에 루시를 여성으로 추측하기도 했다. 우리는 낯선 상대방의 성별을 파악하는 데 있어 과연 그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하는 우선적인 기준으로 상대방의 키와 전체적 체격, 그 균형 속에서 뿜어져나오는 분위기를 추측하곤 한다. 그렇다면 키 140cm에 40kg 내외의 몸무게인 나는 과연 남성일까, 여성일까. 나는 남성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남성들보다 훨씬 작은 남성이다. 왜냐하면 나는 남성이기 이전에,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생후 10개월, 불의의 의료사고로 나는 장애인이 되었다. 왼발을 쓰지 못해 목발을 짚으며 허리를 숙여 다녔고, 초등학생 때 수술을 하며 척추에 고정시켜놓은 철심으로 인해 성장이 멈추었다. 지금은 140cm 정도의 키와 40kg 내외의 왜소한 체격만이 나를 지탱할 뿐이다. 누군가는 휜 허리에 작은 키의 나를 보며 곱추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장애를 갖게 된 볼품없는 몸을 안고 평생 세상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거울을 보며 허리를 내심 꼿꼿이 세워보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약한 자였다.

장애를 지닌 육체에서 이미 상실한 나의 남성성을 애써 찾아보려 몇 번 노력해봤지만 매번 실패했다. 날이 갈수록 내 몸에 대한 스스로의 혐오는 깊어졌다. 내가 내 몸을 지켜보는 것도 싫었지만,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 내 몸을 바라보는 것은 끔찍히도 싫고 부끄러웠다. 나는 사랑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나조차 사랑하지 않는 나의 몸을 과연 누가 사랑해줄 수 있다는 것인가. 나는 두려움과 자기비관에 갇혀 꽤 오랫동안 사랑을 하지 않았다.

장애를 지닌 육체에서 이미 상실한 나의 남성성을 애써 찾아보려 몇 번 노력해봤지만 매번 실패했다. 날이 갈수록 내 몸에 대한 스스로의 혐오는 깊어졌다. 내가 내 몸을 지켜보는 것도 싫었지만,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 내 몸을 바라보는 것은 끔찍히도 싫고 부끄러웠다. 나는 사랑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나조차 사랑하지 않는 나의 몸을 과연 누가 사랑해줄 수 있다는 것인가. 나는 두려움과 자기비관에 갇혀 꽤 오랫동안 사랑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내게 사랑이 찾아왔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대학로를 함께 걸었다. 나보다 큰 그 사람과 함께 나란히 횡단보도 앞에 서서 다가올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호를 기다리는 내내 사람들은 우리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신호가 켜지고 횡단보도를 걷다가 당신이 결국 나에게 말을 건넸다.

“사람이 많은 곳을 함께 다닌건 오늘이 처음인데, 다들 우리를 쳐다보네. 그 시선이 꽤 따갑고 아프다.” 비관적이거나 격정적인 어조의 말투는 아니였다. 무척 담담한 말투였다. 나는 마땅히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거리를 걷고 있을때면 자연스럽게 나를 둘러싸게 되는 타자의 시선에 대해 나역시 어떻게 극복해야하는지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 사람의 말에 울먹이며 대답했다. “나는 그저 편견과 시선을 외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잘 안되지만” 말을 하고나니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나는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애써 울지 않고 입술을 꽉 물고 눈을 계속해서 꿈뻑였다. 그리고 일주일 뒤 우리는 헤어졌다.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다. 내가 그 사람에게 점점 짐이 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헤어지고 난 뒤, ‘아. 다시는 연애를 하지 말자. 사랑도 쫓지 말자. 나와 사랑하는 이들은 힘들어질 뿐이야.’라고 생각했다. 사랑은 장애인 남성에게 허락되지 않은 감정과도 같았다. 장애인과의 연애는 무수히 많은 주변의 시선과 격려로 포장된 우려를 견뎌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또래 건장한 남성들에 비해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것만 같은 상대적 박탈감으로서 찾아오는 자책이 전부였다.

나는 그 후로 오랫동안 사랑하지 않았다. 어느날 문득 외로워질 때면,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못읽었던 책을 마저 읽거나, 영화를 보았다. 그래도 외로움이 달래지지 않을때면, 한참 술을 마시다 잠들곤 했다. 1년이 넘는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홀로 외로움을 극복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워진 최근,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다시는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겠다고 되뇌이던 내가 다시 타인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던 계기가 있다.

10월 초의 얘기다.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이 열린 날, 우리는 신나게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을 즐기고 이어서 홍대에서의 뒷풀이를 하고 아침이 다되서야 홍대입구역에서 첫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즐겁게 놀고 승강장 앞에서 첫차를 기다리며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그녀가 승강장 앞에서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하루종일 기분좋게 놀고는 말이다. 당황스러운 나는 물었다.

“왜 울어 누나” 그녀가 답했다.

“아니 그냥… 나는 여기 지하철역들이 너무 싫어. 여기 설치된 계단들도 그냥 다 싫어. 지하철을 타고 함께 다니다 보면, 네가 자꾸 나한테 미안한 감정을 갖게 되잖아. 멀리 승강장을 빙 돌아서 엘리베이터를 타야하고. 또 한참 기다려야 하고. 출구까지는 또 계단을 한참 올라야 하고. 대체 왜 장애인이 눈치보면서 지하철역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녀는 말하는 내내 펑펑 울었다. 나는 누나를 잠깐 안아주었다가 신도림방향으로 가는 오전 6시 첫차를 태우고 먼저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 다음날, 나는 고민 끝에 숨겨왔던 내 마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서로 사랑하고 있다.

우리의 연애 방식이 아주 일상적인 비장애인 사이의 연애 방식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줘야하는 순간이 더 많이 찾아올 수도 있고,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는 시선의 폭력을 느낄 때면 예기치 않은 불쾌감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숨으려하지 않겠다. 내 장애의 탓으로 여기지만은 않겠다.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겠다. 나는 장애인이기 전에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엄연히 사랑할 자유가 있다.

생후 10개월 의료사고 이후, 장애를 지닌 채 살아온 지난 20년간, 나는 항상 움츠러들어 있었다. 항상 또래 친구들과 비교하며 왜소한 내 체격에 자신을 잃곤 했다. 그리고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지금의 사랑만큼은 무기력하게 끝내고 싶지 않다. 장애라는 장벽에 갇혀 나를 잃기 전에, 너를 사랑한다고 자신있게 표현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 장애를 지닌 우리 모두 더 이상 스스로의 벽에 갇히지 말자. 당장 부끄럽고 어색하고 쑥스럽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보며 분명하게 말해보자.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글= 변재원 작가

변재원 작가는 1993년 10월 30일생으로 생후 10개월에 불의의 의료사고로 지체장애인이 되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하고 있으며, 장애와 관련한 다양한 주제의 칼럼들을 기고하고 있다. 마주하기 힘든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고, 사회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책임있는 삶을 사는 것이 그의 꿈.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존레논과 아웅산 수지 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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