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반드시 봄이 된다

[네버엔딩 인터뷰] 아홉 번째 인터뷰... <종로아이존> 권희연 사회복지사


 



세종마을 푸르메센터 2층. 복도를 지나다 보면 유독 웃음소리가 문 밖까지 새어나오는 곳이 있다. ‘네버엔딩 인터뷰’ 아홉 번째 주인공을 찾아 헤매다 이끌리듯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적어도 행복하게 일하고 있는 유쾌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은 바로 종로아이존. 발달장애어린이와 가족을 위해 일하는 곳답게 사람들이 유난히 밝다. “어떤 분과 인터뷰하면 좋을까요?”하고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두의 손끝이 한 사람을 가리킨다. 종로아이존 직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이 사람이 궁금해졌다.


Q. 안녕하세요? 권희연 선생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꿈꾸는 아이들의 공간’ 종로아이존에서 정신보건사회복지사로 일하는 권희연이라고 합니다. 올해 초 입사해 한참 배우며 일하고 있는 6년차 사회복지사입니다. 이전에는 부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일도 시작했어요. 거기서 350병상 규모의 만성 정신장애인을 위한 병원에서 5년간 일했습니다. 종로아이존에 입사하면서 익숙한 공간을 처음 떠나온 셈이지요.


Q. 정든 동네와 가족을 떠나 종로아이존으로 오시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은데요.


A. 어릴 때부터 지냈던 부산을 떠나는 것도 5년이나 함께한 병원을 떠나는 것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힘들 때 기댈 수 있고 힘을 얻을 수 있던 것들을 모두 뒤로 해야 하니까요. 가족도 가족이거니와 병원에서 만나 정이 든 환자들을 떠나오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관심과 사랑이 부족한 소아청소년을 위해 일해보고 싶다는 오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30대가 되면 더 변화가 겁날 것 같았어요.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굳은 마음을 먹고 종로아이존으로 오게 됐습니다.









Q. 실제로 일을 해보니 어떠신가요? 기대했던 것과 같으신가요?


A. 저희는 전화를 받을 때 “꿈꾸는 아이들의 공간, 종로아이존입니다.”하고 인사를 건넵니다. 그 말 그대로라고 생각해요. 장애가 있는 아이나 비장애형제 모두 ‘장애’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린 아이들이에요. 하지만 장애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비장애 형제는 소외감을 느끼지요. “엄마 아빠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하고 말이에요. 저는 그 감정을 채우는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현실을 바꿔줄 수는 없지요. 하지만 치료에 참여하는 아이와 그 부모, 형제들을 아주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Q. 대상자가 성인에서 어린이로 바뀐 만큼 업무도 달라지셨을 것 같은데.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A. 발달장애 어린이들이 이용할 자원도 많지 않고 체계적인 정리도 되어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우리가 만들어나가야 하는 일이다 보니 어려운 점도 많습니다. 저소득 어린이를 위한 치료지원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관내에 특수학급이 있는 일반학교와 특수학교 실무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습니다. 어려운 점도 있지만 ‘도움을 주는 일’이라는 공감이 있기에 힘들지만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종로 아이존을 이용하는데에 필요한 서류 중에 '종합심리평가' 보고서가 있는데, 이 평가를 받는데에 드는 비용이 부담이 되어서 치료를 망설이게 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 아이들을 지원하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조금씩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적당한 긴장감과 성취감을 동시에 안겨줍니다. 힘들다기보다는 행복한 작업이지요.


Q.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상황에 대해서도 참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네요. 본인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저는 변덕스러운 사람이에요. 내성적인 면도 있지만 너무 정적인건 지겨워하죠. 업무적으로 행정적인 부분도 많은데 또 현장으로 나가야 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정적인 일과 동적인 일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변덕스러운 성격 덕에 에너지를 얻는 경로가 다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이들과 부모님을 만나고 현장의 실무자들과 만나 의견을 나눌 때, 아이들이 웃을 때, 부모님의 어려움을 공감할 때, 아이들을 직접 접하는 선생님들과 생각을 나눌 때에도 모두 힘을 얻습니다. 여러가지 상황에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으니 당연히 행복하지 않을 수 없지요. 개인적인 일상도 마찬가지로 일을 위한 시간과 스스로를 위한 시간,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과 밖으로 나가 어울리는 시간들이 반씩 균형을 이룬 기분입니다.


Q. 정말 꼭 맞는 직업을 선택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복지라는 직업은 어떻게 선택하게 되셨나요?


A. 그냥 평범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유망직종 베스트3’이 소개된 것을 봤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사회복지’였어요. 좋은 일을 한다는 막연함에 전공을 하기는 했지만 ‘나한테 맞는 일인가?’라는 물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정신병원에서 실습과 자원봉사를 통해 확인해 보기로 했지요. 막상 경험한 병원은 참 어려워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환자들과의 관계를 맺어가면서 ‘나에게 동기와 자극을 주는 영역’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Q.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힘들거나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으실 텐데, 어떤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잡으시나요?


A. 병원에서 실습과 자원봉사를 하던 어느 날, 친구의 비보를 듣게 됐습니다. 장례식장에 망연자실 앉아서 우울증으로 고생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친구의 영정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봤습니다.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바쁘다는 이유로 잊고 살았다는 미안함에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면서 심리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곁에 있어야겠다는 강한 다짐을 했습니다. 100% 치료 되어 삶이 변화 되게 할 수는 없더라도 단 1%라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더 많이 공부해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로 남을 돕는 일을 하자.’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장애가 있는 아이와 가족과 나누고 싶은 ‘언제나 마음에 품고 있는 한 마디’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A.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된다.”라는 말이에요. 당장 어려움이 닥쳐 희망이 없는 듯 보이더라도 결국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뜻이지요. 제가 가장 힘들 때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이기도 합니다. 물론 노력 없이는 봄을 맞이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듯이 보여도 결국은 될 거라는 확신을 주는 말인 것 같아요. 지금이 견딜 수 없이 힘들다면 겨울을 차라리 쉬는 시간으로 여겨보라는 말도 덧붙이고 싶네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가만히 있다 보면 회복이 되기도 하니까요.


Q. 다음 네버엔딩 인터뷰에서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신가요?


A. 구내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이나 공익근무 하시는 분들처럼 묵묵히 자기자리에서 남을 위해 일해주시는 분들을 만나보고 싶어요. 종로아이존에 오셨던 것처럼 ‘습격’해서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주세요.


 


*글, 사진= 이예경 선임간사 (홍보사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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