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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씨이야기] 그들이 사는 세상 : 휠체어 동반 탑승이 불가능합니다

 

그들이 사는 세상 : 휠체어 동반 탑승이 불가능합니다

얼마 전 5월 첫 웹진 기획회의. “어떤 걸 주제로 하면 좋을까요?”하며 내민 후배의 기획서에는 ‘힐링’이라는 주제가 들어있었다. 이제 날도 좋으니까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여행을 권하는 게 어떻겠냐는 거다. 내심 ‘지친건 너겠지.’라고 생각하며 후배 얼굴을 보자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사회복지를 전공하지 않은 팀원이 절대다수인 우리 팀에서 ‘사회복지사’라는 타이틀은 매번 약발이 세다. 그냥 다른 팀원들 보다 조금 더 고민한 적이 있다는 이유로 전문성 떨어지는 장롱사회복지사의 말이지만 먹힐 때가 많다. 이번에도 그래서 자신 있게 말했다. “니가 휠체어 타고 가봐, 여행.”

휠체어 탄 배낭여행객? 본 적 없다.

그런데 확신이 없었다. 휠체어를 타고 여행이 가능할까? 또한 후배가 예상했던 것처럼 ‘힐링’이 되는 여행이라는게 가능할까? 장애인도 뭐든 할 수 있다며 “되는데요.”라는 말로 때때로 팀원들의 편견을 뒤엎었던 나지만 이번에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게다가 어디서도 휠체어 탄 배낭여행객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후배의 등을 떠밀기에 앞서 몰래 가보기로 했다. 연휴가 시작되자마자 동생과 함께 배낭을 메고 출발했다. 후배가 휠체어타고 갔다가 울며 돌아오게 될지, 여행하고 오게 될지 미리 체험해 보겠다는 듯 아주 날카로운 눈을 가지고 말이다. 물론 출발도 전에 곳곳에서 불길한 복선을 만나게 됐지만.

 

▲ 배낭하나 등에 메고 그저 발걸음 닿는 대로 마음 가는대로 가는 것이 진짜 ‘여행’의 맛 아닐까?

몰래한 사전답사,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가다

 

엘리베이터 없는 3층 우리 집에서 골목으로 나가는 것, 몇 개의 턱을 지나 저상버스를 기다려 타는 것. 상당한 고비를 지나는 동안 어디로 떠날까 고민을 해봤다. 역시 여행은 정처 없이 떠나는 것이 진짜 여행! 우선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그나마 저상버스와 엘리베이터가 있는 지하철은 무사 통과. 복병은 의외의 곳에 숨어있었다.

▲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매표소 앞. 연휴를 맞아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터미널에 들어서며 어디로 가야 그나마 휠체어 여행도 편하고 힐링이 될까 행복한 고민을 했다. ‘아, 휠체어에 앉아 표를 사기에는 창구가 좀 높네?’하면서 개찰구에 다가서던 그 때. 이상한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누나 저게 뭐야?”하는 동생의 말이 귓가에 앵앵 울린 것도 잠시. 허망함에 말을 잃었다.

장애인들은 언제를 살고 있나

 

 

▲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매표소 창구마다 큼직하게 붙어있는 안내문.
“휠체어 동반 탑승이 불가 하오니 이점 양해바랍니다.”

이게 뭔가. “누나, 그럼 장애인은 서울 밖으로 못나가?”하고 동생이 철없이 묻는다. “사카모토 료마랑 똑같네.”라면서. 그러고보니 비슷하다. 자신이 속한 번(藩)을 탈출하면 토벌대가 따라와 죽임을 당하던 일본 에도시대의 사무라이 사카모토 료마, 조선시대 주인집에서 도망 나오려고 해도 추노꾼들이 따라붙던 언년이. 우리나라의 장애인 인권은 도대체 언제에 머물러 있는 걸까.

▲ 2003년 9월 24일. 중증장애인이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선로를 점거하고
장애인 이동보장법률 제정을 촉구하는 모습. (사진 출처 : 에이블뉴스 http://abnews.kr/Lz8)

 

▲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와
자유를 알리기 위한 사진집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사실 굳이 18세기쯤으로 돌아갈 필요도 없다. 불과 10여 년 전. 지하철 선로에 몸을 묶고 울부짖는 장애인을 본 적이 있다. 지하철의 휠체어리프트에서 목숨을 잃은 장애인들에게 사과하라는 처절한 목소리. “리프트를 타다 떨어져 죽을 바에는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장애인도 집에만 있을 수는 없다는, 죽지 않고 이동하고 싶다는 당연한 목소리가 어디에도 닿지 않았던 시절. 목숨을 걸고서라도 “더 이상 죽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던 것이 불과 10여 년 전. 이후에 장애인차별금지법도 생기고 투쟁하는 장애인들의 피값으로 지하철역에는 엘리베이터가 버스에는 리프트가 설치됐다. 하지만 황당하기까지 한 비상식의 시간은 끝나지 않고 있었다. 

 

 

휠체어 이동 불편? 대합실에 휠체어 있는데?

 

지난 2011년 12월. 장애인단체들은 시외버스에 저상버스를 도입하지 않은 것에 대해 소송을 진행했다. 하지만 2013년 7월, 법원은 시외버스가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도록 하는 설비를 갖추지 않은 것은 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결을 내렸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단지 편의를 제공하고 차별하지 말 것을 규정할 뿐, 설비를 갖출 의무를 부과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1월에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버스를 탈 수 없는 것에 해결을 촉구하자 전국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이 동문서답을 했다. “고속버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안타깝고 노력하겠다. 일부 터미널에서는 이미 휠체어를 대합실에 비치하여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표 사기에 실패하고 한켠에서 발견한 휠체어.
불편하신 분은 언제나 이용할 수 있다지만 휠체어장애인은 여기까지 걸어온다는 생각인걸까?

옆에 있던 동생은 “저거 놀리는 거야?”라며 진지하게 물었다. “만약에 꼭 타야하면 어떻게 해?”하는 물음에 부끄러워진다. 휠체어는 짐칸에 넣고 누군가 안아 들어서 자리에 앉혀주겠지. 모르는 사람이 내 몸을 만져야할 테니 불편할 테고 사람들은 다 쳐다보겠지. 버스가 한 순간에 사파리버스처럼 되지 않을까?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민망하고 미안해서 휴게소에서 화장실도 못가고 앉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 말이 두렵다

 

고속버스터미널 답사에서 터덜터덜 돌아오며 얼마 전 장애인의 날 쯤 본 사진 한 장이 떠오른다. 시외버스에 타고 싶다며 단체로 표를 구매한 장애인들에게 최루액을 뿌리는 장면. 세월호 참사 때문에 이슈가 되지도 못했지만 그 사진 한 장은 깨달음을 줬다. “가만히 있으라.”는 목소리가 들리더라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는 것.

▲ 시대에 뒤쳐진 잘못된 제도와 정책으로 목숨을 잃은 장애인들의 영정사진을 걸어둔 채, 지금도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더 이상 죽을 수 없다.”는 외침은 장애인들이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던 10여 년 전에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러면 이쯤에서 슬슬 겁이 난다. 유독 반짝거리는 눈으로 내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인 내 후배가 “그러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하고 물을까봐.

▲ 5호선 광화문역 지하도로 한켠에 써있는 장애인들의 목소리. “어디든 가고싶은 곳에 간다.”는
당연한 일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듯 누리고 있는 특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두렵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그냥 ‘휠체어 장애인의 힐링 여행’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왜 이렇게 이야기가 멀리 왔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호기로웠던 장애인을 위한 힐링여행 답사는 실패로 돌아갔다. 우리나라의 현실에 장애인들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이 힐링이 되는 날은 아직도 멀어 보인다.

 

 

*글, 사진= 이예경 선임간사 (홍보사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