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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씨이야기]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Only Lovers Left Alive)

미대를 나온 나에게 사람들이 가장 흔히 하는 질문 중의 하나는 어떤 작품이 좋은 작품인지 그 기준을 모르겠으니 알려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라고 알겠는가. 대학교 2학년 때 이미 절필을 선언한 나에게 좋은 작품에 대한 학문적인 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다소 무리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이미 좋은 작품에 학습되어 있다. 단지 누구의 작품인지 모를 뿐, TV나 잡지, 교과서 등 여기저기서 보아 온 대부분의 미술작품들은 절대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는 것들로 수백억 원 대를 호가한다. 심지어 금액을 얘기하기도 미안할 정도로 미학적이고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작품들이다. 여기서 시작되어 줄기가 뻗어나간 많은 것들은 콕 집어 말하기도 미안하리만큼 광대한 영역에 영향을 주었다.

▲ 툴루즈 로트텍 ‘침대에서’ (Toulouse-Lautrec: The Bed)

by HumanSeeHumanDo

명화를 카피한 습작들을 보며 ‘뭔가 이상한데’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 있다. 다른 부분을 골라낼 순 없지만 자꾸 피식하는 헛웃음이 나오는 것은 이미 나름의 절대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의자에 모여 앉은 어색한 모습의 가족사진도 사실은 서양화의 인물화를 그려내는 가장 기본 구도이며, 세련된 색상의 옷들은 동양화의 담담한 색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멋진 풍경을 보게 되면 한 폭의 그림 같다고 말하지 않는가!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라파엘, 도나텔로가 설사 닌자거북이의 주인공 아니냐고 반문할 지라도 잘 그리고 잘 뭉쳐낸 작품들을 남긴 미술가의 작품을 보면 ‘아’ 하고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현대 작품들이다. 조각조각 나있는 상어나 동침을 했던 남자의 이름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침대, 썩어가는 생선들이 전시된 냉장고를 좋아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얻어맞은 여자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 사진이나 발가락으로 그린 듯한 드로잉들을 보면 누구나 ‘나도 할 수 있는데. 저게 그렇게 대단한 가치가 있는 작품들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당신의 의심이 맞다. 현대 작품들 중에는 작가의 스타성, 갤러리, 경매 등의 여러 가지 요소가 모여 하나의 거대한 미술산업에 의해 과대평가되고 그 가치가 유지되는 경우가 있다. 미술작품에 대한 객관적 평가보다 스타 작가의 작품 가격 변동과 투자가치에 관심이 모아져 자본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예술작품이 넘쳐나기도 한다.

쉽게 말해 그럴싸한 미술대학 혹은 그룹에서 좋은 콜렉터를 만나 작품을 팔고 유명한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는 여자나 남자가 있다고 해보자. 저항의 의미로 옷 입기를 거부해 경찰에 몇 번 체포된다. 이 모습이 찍힌 사진들이 SNS와 유튜브에 옮겨져 이슈가 되어 이를 두고 ‘사회적으로 결정된 성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기인한 폭력’이라는 그럴싸한 기사를 써주는 기자 친구가 있다면 돈을 버는 작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몇몇 작품들은 금융위기와 함께 가격이 30~40% 폭락했다.

자, 그럼 이쯤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보자. 이러한 혼돈의 시대에 좋은 작품이란 무엇인가? 현대 미술작품은 애인을 고르는 과정과 같다. 멋진 외모, 좋은 학력, 지성, 예술적 취향, 축적 된 부, 따뜻한 성품, 유머감각 등 개인의 선택의 범주에 드는 다양한 기준은 넘쳐난다. 그 중에 나의 눈을 흔들고 마음을 뒤엎고 영혼을 잠식할만한 사람을 만나서 빙고를 외치면 되듯,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선택하면 되고 연애를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몇 년 전 남자친구에게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50위 안에 들 걸.”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부끄러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고백이었다. 왜 50위냐는 그의 물음에 “죽음의 고비를 넘긴 군인이나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을 빼고 사랑에 빠진 사람 중에는 내가 제일 행복한 것 같아.” 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손을 잡고 전시회의 작품을 구경하며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던 순간. 물에 발을 담근 채 좋아하는 밴드에 환호하고 맥주를 마시며 잔디 위에서 낮잠을 청하던 순간. 평생토록 어느 하나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인 것이다.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작품의 색감, 소재, 크기, 작가와 관련된 삶의 이야기 등 그 어떠한 것이라도 상관없다. 기억에 남는 그것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내 그림을 찾는 과정이다. 굳이 유명하거나 잘 그린 그림일 필요는 없다. 지난 달력의 그림이 좋아서 다음 달로 넘기기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자신만의 작품을 찾는 좋은 안목을 갖춘 것이다. 이미 전설이 된 가우디나 클림트일 필요는 없다. 내가 만나 본 그 남자 또는 여자, 그 그림부터 선택을 넓혀 나가자. 그러나 누구나 아는 중요한 한 가지. 연애도 그림도 많이 본 사람이 잘 찾는다. 잊지 말자.

*글= 유현정 간사 (기획사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