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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지만 실한 열매를 맺는 매화나무처럼

[양은혜/ 숙명여대 정보방송학과]

 

 

 

 

 

제가 푸르메재단과 인연을 맺게 된 건 효자동 길이 은행나무 잎으로 노랗게 물들기 시작할 때부터였습니다. 학교에서 소개받아 알게 된 푸르메재단의 첫인상은 웃음이 끊이지 않는 따뜻한 가족과 같았습니다. 항상 존댓말로 감사하다고 인사해주시는 백경학 이사님, 아이들에게 삼촌처럼 친근하게 대해 주시는 허영진 원장님, 누구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잘 파악하고 있는 이명희 간사님 등등… 많은 분 덕분에 시작하는 첫날부터 마음에 따뜻함을 머금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5개월, 누가 소리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봄의 향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지금도 봉사활동을 하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짧다면 짧은 이 시간 동안 작지만 소중한 기억들 몇 가지를 나눠 보고자 합니다.

아이들과의 만남은 저에겐 하나의 커다란 도전이었습니다. 동생이 없었던 저는 평소 아이들과 놀아본 경험이 별로 없었고 게다가 장애어린이들은 만나본 적이 없던 터라 어떻게 인사를 건네고 노는 것이 좋을지 걱정의 연속이었습니다. 첫날 김수현 간사님께서 치과에서 봉사해달라고 하셨는데 그 부탁을 거절하고 괜히 어린이재활센터로 한다고 고집을 부렸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긴장하고 있던 그때 제일 처음 병원 안으로 들어온 건 태정이었습니다. 할머니가 끄는 유모차에 발이 묶여 있는 태정이를 보니 겁부터 나기 시작했습니다. “안녕? 이름이 뭐야?” 용기 내 한 말에 태정이는 말 대신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었고 덕분에 저는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태정이는 할머니 없이는 혼자서 앉지도 먹지도 말하지도 못했지만 감정 표현을 굉장히 잘하는 아이였습니다. 부릉부릉 소리를 내면서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아주는 것, 소리 나는 동화책을 수도 없이 보고 듣는 것, 공을 살짝 던져주면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힘껏 내리치는 것 모두 태정이가 좋아하는 것이었지만 가장 으뜸은 바로 스스로 걷기 운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2층에서 3층까지의 짧은 거리였고 거의 눕다시피하며 봉사자의 팔에 의지해서 올라가는 것이었지만 한걸음 한걸음 힘주며 걷는 발걸음과 생글생글 웃는 눈에서 자신도 뭔가를 해내고 싶어 하는 의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 11월에는 푸르메재단 5주년을 맞아 커다란 행사를 함께하기도 했습니다. 행사 일주일 전 엉겁결에 작은 공연을 하겠다고 하고 호영이 지영이와 함께 동요에 맞춰 율동을 연습했습니다. 개구쟁이 두 명이 모이니 동요 한 곡을 끝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사탕으로 어르고 달래가며 3곡을 마무리하고 그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당일 저녁에 만난 지영이의 얼굴은 감기에 걸려 발그레 달아올랐고 컨디션도 나빠 보였습니다. 호영이 역시 모두 맞춘 스카프를 하지 않겠다며 떼를 써 공연 전 애를 먹였습니다. 그런데 무대에 올라가고 음악이 흘러나오자 아이들은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신나게 춤을 추며 관객에게 웃음을 주었습니다.

▲ 작년 11월 푸르메재단 후원의 밤, 재활센터어린이들과 봉사자들의 합동공연

호영이는 힘이 세고 활동적이어서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는 골목대장이었습니다. 병원이 떠나갈 듯 쩌렁쩌렁하게 인사 한 번 하고 나서는 미끄럼틀로 달려가서 누가 끼어들기라도 할까 재빠른 속도로 미끄럼을 즐기곤 했습니다. 이런 호영이도 겁을 먹을때가 있었는데 바로 여느 아이나 두려워하는 주사를 맞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씩씩한 호영이는 봉사자 누나나 형이 앞에 있으면 절대 울지 않는 용감함과 곧 있으면 끝난다는 대범한 모습까지 보여주었습니다.

지영이는 칠판에다 그림 그리고 글씨 쓰기를 좋아해서 같이 받아쓰기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실수로 지영이 머리에 꽂혀 있던 침을 만지자 지영이는 “만지지 마세요. 저리가요.” 라며 저를 밀쳐냈습니다. 순간 저는 걱정과 당황스러움에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쳤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영이 옆에서 “그래도 선생님은 지영이 너무 좋은데, 같이 옆에 붙어 있을 거야.”라고 하며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지영이도 몇 번 밀어내다 포기하고 다시 단어쓰기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식은땀 나는 시간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아이들과 어느새 친해져서 다시 말해주지 않아도 또박또박 제 이름을 칠판에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 밖에도 어린이 재활센터를 빛내주는 많은 개성이 넘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조용하게 앉아 책을 읽다가도 컴퓨터만 있다 하면 마우스를 빛과 같은 속도로 클릭하는 규민이, “아이 부끄러워”하면 말랑한 손으로 두 눈을 가리는 애교쟁이 윤서가, 봄에 만발하는 꽃만큼이나 다양한 개성을 가진 아이들입니다. 봉사는 나눔이라고들 하지만 저는 푸르메재단 봉사활동을 하면서 봉사는 더함이라고 느꼈습니다. 봉사하러 가는 아침마다 아이들과 더 재미있게 놀아주고 말 한마디도 더 해보리라 다짐하고 노력하지만 결국 저만 제 마음 한가득 아이들의 웃음과 생기로 채워져 돌아가니, 제가 나눔을 한 게 아니라 그들이 저에게 더해줌이라는 표현이 맞기 때문입니다.

햇볕이 조금 더 따사로워지면 매화나무에 예쁜 꽃이 맺힐 것입니다. 같은 매화나무라도 먼저 핀 꽃은 열매를 잘 맺지 못하고 나중에 핀 꽃이 실한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푸르메재단 어린이들 역시 조금 늦을지라도 열매를 맺을 조건이 충분히 성숙하여 매화나무의 미래를 기약할 튼실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푸르메재단의 많은 분은 아이들이 잘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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