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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동생의 새해 소망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안녕하세요. 제 별명이 박완서 동생입니다. 조금 큰 앞니와 처진 눈매 때문에 선한 인상과 따뜻한 미소를 지니신 선생님을 제가 많이 닮았다고 합니다….” 5년 전 소설가 박완서 선생님께 보낸 편지의 앞머리다.

5년 전 푸르메재단을 세우면서 첫 번째 사업으로 상처받은 사람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따뜻한 책을 출간하기로 계획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을 겪게 된다. 삶의 뿌리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거대한 바람일 수도 있고, 인생의 잔가지 몇 개를 부러뜨리는 소슬바람일 수도 있다.

따뜻한 봄날 산책을 하다가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로 심한 몸살을 앓는다면 작은 불행이겠지만 행복한 퇴근길, 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려온 차량에 치여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는다면 ‘나에게만 왜 이런 불행이…’ 하고 하늘을 수없이 원망하며 고통 속에 삶을 이어갈 것이다. 한 조각 희망조차 보이지 않고 나락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고 누군가가 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 박완서 선생님이 생각났다. 불혹(不惑)에 등단하셔서 팔십 연세에도 글을 쓰시는 노(老)소설가. 6·25전쟁의 참화 속에서 아버지와 오빠를 차례로 여의었고 남편마저 돌아가신 뒤 불과 석 달 만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아들을 떠나보내는 참척(慘慽)의 고통을 당했으니 불행에 대해 누구보다 확실한 대답을 주실 것 같았다.
불행을 사랑으로 보듬는 ‘누님’

 

▲ 지난 7월, 홍보대사 이지선 씨와 백경학 상임이사, 재단직원들과 함께한 박완서 선생님

박완서 선생님이라면 땅바닥에 주저앉은 이에게 다가가 따뜻하게 안아주시며 “우리에게 왜 이런 불행이 일어났을까요”가 아니라 “우리에게도 이런 불행이 일어날 수 있어요” 하고 위로해주실 것 같았다. 어떻게 원고를 부탁드릴까 고민하다 결국 선생님을 닮아 가끔 박완서 동생이란 말을 듣는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피가 물보다 진해서일까. 박완서 누님께서는 생면부지의 아들뻘 동생에게 “기꺼이 글을 써주겠다”는 답장을 주셨다. 그리고 한 달 뒤 아흔 살의 당신 어머니가 임종을 맞은 순간 고향집에서 일하던 머슴 ‘호뱅이’를 찾으셨다는 재미있고 감동적인 글을 보내셨다. 박완서 선생님과 내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 후 뵐 때마다 선생님은 큰누님처럼 당신의 고향집 풍경, 어린 시절, 그리고 삶의 지혜가 되는 말씀을 들려주셨다. 두 해 전 여름인가 보다. 30도가 넘는 폭염을 뚫고 사무실을 찾아오신 선생님을 모시고 식당을 찾았다. 선생님은 애주가답게 자리에 앉자마자 “더운데 목부터 축이자”고 제안했다. 선생님은 연거푸 맥주 두 잔을 시원스럽게 들이켜신 뒤 ‘토지’를 화제로 말문을 열었다. “박경리 선생님이 사시던 원주집에서는 비닐 한 조각 나오지 않았어요. 우리 민족과 국토에 대한 사랑을 글뿐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신 거지요. 박 선생님이 쓰신 ‘토지’가 바로 우리 민족이고 ‘토지’를 통해 자연의 소중함을 노래하신 겁니다.”

박완서 선생님에게 평생의 화두(話頭)는 무엇이었을까. “어머니와 나는 피란 나갈 기회를 놓쳤어요. 서울에 남아 있으면서 낮에는 민주주의가 되고 밤에는 사회주의가 되는 세상을 경험했지요.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변해가는지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그때를 잊을 수가 없어요.”

음식 한 조각 앞에 인간이 얼마나 처절하게 몰락해 가는지 목격하셨다고 한다. 아마 그런 아픈 기억과 경험을 통해 박완서 선생님은 이념의 덧없음을, 그리고 불행으로 인한 상처는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끌어안고 사랑함으로써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을까. 당신의 유년시절, 장맛비로 마을 앞 냇물다리조차 떠내려가고 학교에 가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를 때 머슴 호뱅이가 갑자기 나타나 당신을 지게에 떡하니 태우고 탁류를 헤쳐 나갔던 아름다운 기억 같은 것 말이다.
시원한 맥주 대접할 날 기다려

얼마 전 한 복지단체에서 발행한 책을 읽다가 박완서 선생님이 이곳 어린이를 위해 오래전부터 기부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일하는 푸르메재단 통장에도 4년째 매달 25일이 되면 ‘박완서’라는 이름이 꼬박꼬박 찍힌다. 책을 새로 출간하시거나 연말이 되면 누구에게 알리지 않고 적지 않은 금액을 보내주신다. 선생님께 “왜 기부를 하시느냐”고 물었다. “아무 잘못 없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너무 불쌍하잖아요. 어린이들이 활짝 웃을 수 있게 아름다운 재활병원이 빨리 생겼으면 좋겠어요.”

팔순의 연세에도 책을 쓰시고 뜻 맞는 사람을 만나면 소주 한 병은 너끈히 드실 수 있는 열정과 체력을 가진 선생님께서 새해에도 건강하셨으면 한다. 올여름에도 박완서 누님께 시원한 맥주를 대접해 드릴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 2011년 1월 6일(목)자 동아일보 컬럼 <동아광장>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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