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있는 어빌리터 퍼스트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일하는 것이 재미있어요. 집에 놀지 않고 계속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미국 LA광역시 파사데나 지역(시)에 위치한 장애인작업장 <어빌러티 퍼스트․Ability First>. 우리 말로 번역하면 ‘능력 우선! 혹은 능력 최고!’쯤 될까. 이곳에서 만난 존스 루이스(17세)는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냐?”는 질문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이같이 흔쾌히 대답했다. 일하는 기쁨이 얼굴과 온 몸에 묻어난다.



▲ 서류 자르는 일을 하는 존스 모습


정신장애를 가진 존스가 이곳에서 처음 일을 시작한 것은 2년전. 그는 매일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3시까지 하루 7시간 일한다. 주업무는 정밀 세단기를 통해 파일 문서를 자로 잰 듯 절단하는 것. 무척 단조로운 작업이지만 존스는 한 눈 한번 팔지 않고 열심이다. 존스는 일한 작업량에 따라 월급을 받는다. 일한 만큼 차곡차곡 월급이 쌓인다니 행복한 일이다. 존스의 임금은 시간당 10~12달러. 미국 시간당 최저임금 8달러에 비하면 적지않은 금액이다. 이곳 작업장에서 일하는 작업감독관(supervisor)의 시간당 임금이 10달러이니 존스의 임금이 약간 더 높은 셈이다.


존스는 최근 취업에 필요한 근무 자세와 손님응대 요령, 면접 때의 표정까지 세세한 부분에 대해 예절교육을 받았다. 일주일 간 맹훈련을 받은 뒤 취업담당관(job coach)과 함께 LA지역 대규모 공연장 스테이플스센터의 안전요원으로 지난주말 면접을 통해 계약직 직원으로 채용됐다. 스테이플스센터는 김연아 선수의 아이스쇼와 마이클 잭스의 공연으로 유명한 실내 종합경기장. 존스는 작업장 업무가 끝나는 저녁 시간이나 주말을 이용해 이곳에서 대규모 공연이나 농구경기가 열리게 되면 안전요원으로 활동할 계획이다.



▲ 작업장 책임자 피터 유씨



▲ 본부 앞에 설치된 <어빌러티 퍼스트 간판>


종합복지시설 <어빌러티 퍼스트>는 1926년 LA지역에 사는 정신지체 장애어린이들의 자활을 목표로 국제로타리클럽에 의해 설립됐다. 이후 정신지체 뿐 아니라 지체장애어린이, 그리고 성인 정신장애인으로까지 영역을 넓혀 이들에 대한 직업재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결과 현재는 3개의 장애인작업장과 10개의 그룹홈, 7개의 쉼터(커뮤너티센터), 1개의 캐프장 등 모두 24개 기관을 운영하는 거대 자활기관으로 성장했다.


<어빌러티 퍼스트> 파사데나 본부를 찾은 9월말. 할로인 데이를 앞두고 있는 가을철이었지만 우리의 방문을 어떻게 알았는지 갑자기 뜨거운 인디언 서머가 몰아닥쳤다. 이날 낮최고 기온은 화씨 113도(섭씨 45도)를 넘었다. 1877년 미국 국립기상청이 관측을 시작한 이래 서부지역에서 가장 더운  기온이라고 한다.



▲ 장애인들의 활동을 담은 사진


100년만에 찾아온 살인적인 더위에 우리는 파김치가 됐다. 바늘로 콕콕 찌르듯 피부가 따갑고 머리에서는 쉴때없이 땀이 흘러내렸다. 상당히 망가진 몰골로 우리는 <어빌러티 퍼스트>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머리에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우리를 맞은 여직원은 일단 불쌍하다는 표정을 지은 뒤 우리가 찾으려는 작업장은 이곳에서 1.6킬로미터 떨어져 있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울고 싶었다.


단층 건물인 <어빌러티 퍼스트> 작업장에 들어서자 파란색 티셔츠를 입은 한 때의 청소년들이 몰려나간다. 이른 아침부터 자원봉사를 하러온 고등학교 학생들이 활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자원봉사가 중요한 활동으로 자리잡았듯이 미국에서는 30여년전부터 자원봉사활동을 교과과정의 일부로 강조해 평일날에도 고교생들이 인근 장애인시설을 찾아 장애인들과 함께 작업을 벌인다고 한다.


<어빌러티 퍼스트> 파사데나 작업장에는 존스 같은 지적장애인 65명과 작업감독관<슈퍼바이저> 8명이 모두 6개 반으로 나눠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지적 수준에 따라 작업수준과 공정도을 나누고 그 중 일부는 사회화 교육을 받는다.


가장 낮은 수준의 반에서는 파사데나지역 우체국에서 맡긴 우편 비닐 봉투의 분리수거작업이 한창이다. 갑자기 등장한 방문객이 낯설기도 할텐데 작업자들은 우리에게 미소를 짓더니 일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한다. 모두 비닐 봉투에 붙은 종이 주소스티커를 제거하는 작업에 열심이다. 스티커를 떼어낸 봉투들은 재활용된다고 한다.


다른 작업반. 기업에서 대량으로 발송하는 우편봉투에 수신자의 이름과 주소가 쓰여진 스티커를 붙이는데 손놀림이 빠르다.



▲ 작업장 모습


옆 작업조에서는 출판사에서 인근 초등학교로 보내는 책을 분류하고 하수도에 들어가는 부품을 조립한다. 일부는 기업에서 보내온 폐기문서를 세단하는 작업을 한다. 누가 강요하지 않는데도 각자 자기 일감을 앞에 두고 분주하다.


작업장의 운영을 맡고 있는 피터 유(32살)씨는 “새로운 사람이 오게 되면 무엇이 적성에 맞는지 조사한 뒤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일거리을 맡긴다”고 강조한다. 이런 이유때문일까 지겹고 힘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일하는 표정이 행복하다.



▲ 종이상자로 만든 폐핸드폰 수거함


한국인 선교사로 미국에 이민온 아버지를 둔 교민 2세 피터 유씨는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했지만 교회에서 일하는 것보다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을 위해 일하는 것이 훨씬 가치있다고 결심한 뒤 이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룹홈에서 중층 장애인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을 시켜주는 허드렛일에서 시작해 지난해부터 이 작업장의 매니저로 승진해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LA광역시 및 파세데나시는 지난해 이 작업장에 모두 40만달러(4억8천만원)를 보조금으로 지원했다. 이는 이 작업장의 일년 예산중 2/3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머지 20만달러(2억4천만원)는 장애인들이 수고해 벌어들인 수익이다. 작업장에서 벌어들인 20만달러중 20%인 4만달러(4천8백만원)는 재정이 더 어려운 단체에 기부했다고 한다. 피터 유씨는 “장애인들이 돈을 벌어 자기보다 더 어려운 다른 장애인을 돕는다는 것은 큰 감동이 아닐 수 없다”고 강조한다. 내가 살기도 빠뜻한데 소중한 내것을 나눌 수 있는 장애인이 있다니 참 대단하다.


▲ 구내 식당


이 작업장 구석에 마련된 교실에서는 인근 전문대학(커뮤너티 컬리지) 교수가 사회화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들을 상대로 숫자를 셈하는 방법과 단어맞추기 연습수업을 한다.


피터 유씨에게 ‘이 작업장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이곳은 장애인들의 삶의 터전이자 희망이다. 장애인문제는 가족과 장애인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지역주민이 함께 떠안고 갈 문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사회로 나가는 중간단계로 작업장이 존재한다”고 대답했다.



▲ 영어단어를 익히기 위한 퍼즐


장애인 작업장에 일거리를 맡기는 기업과 장애인을 고용하는 상점 및 기업에 대해 미국 정부와 자치단체가 여러가지 세금감면혜택을 주고 있는 것도 미국의 장애인작업장이 활성화되고 있는 요인이라고 한다.


<어빌리티 퍼스트>처럼 장애인단체가 다른 작은 단체가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 기꺼이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미국사회의 기부문화가 어느 나라 보다 활성화되어있기 때문. 한 예로 장애인 자활문제에 관심있는 LA지역시민이나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이 최근 어빌리티 퍼스트에 현금이나 주식, 채권 혹은 신탁의 형태로 이 단체에 기부한 금액만 해도 700만달러(84억원)을 넘는다고 한다. 이는 <어빌리티 퍼스트>의 지난해 전체 예산중 27%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다.


주정부와 시정부에서도 장애인 단체를 직접 지원할 뿐 아니라 이들 단체에 대한 개인과 기업의 기부금에 대해서는 세금감면 등 여러 가지 세제혜택을 통해 기부가 늘도록 독려하고 있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설자 빌 게이츠와 그의 부인 멜린다, 보험회사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워런 버핏이 미국 부자들에게 동참을 호소하며 <더 기빙 플러지(기부선언)>이란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 운동에 미국의 대표적인 부자 록펠러가의 데이비드 록펠러와 블룸버그 통신 창설자인 마이클 블룸버그, CNN창업자 테드 터너 등 내로라하는 미국 부자들이 동참하면서 이들이 기부하기로한 약정한 6천억달러(7200조원)라는 금액은 지난해 미국전국민이 기부한 금액의 두배에 해당한다고 한다.



▲ 이송을 기다리고 있는 완성품들


미국 사회에 체화된 기부문화가 미국 부자들의 기부행렬을 이끌어낸 것이다. 피땀흘려 모은 재산을 어려운 사회적 약자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쓰여지는 것이 무엇보다 바람직하고 의미있다는 미국 사회적 분위기가 <어빌러티 퍼스트>같은 장애인단체에 큰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 완성제품 이송트럭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듯, 장애인이 있는 곳에 일자리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장애인 자활과 복지의 또다른 저력을 실감하면서 100년만의 폭염속으로 다시 몸을 내맡겼다.


어빌러티 퍼스트 자산 (2009년 6월 30일 기준, 단위: 미국 달러)


자산


유동자산


현금 및 현금등가물 2,742,479


미수이자 41,568


유동성 투자자산(주식, 채권 등) 1,800,000


채권(대손충당금 차감후 순액) 1,224,330


채권(유산증여 및 신탁) 819,247


기부받기로 한 자산 437,032


선급비용 125,604


주택공사 기부 채권 28,988


총 유동자산 7,219,248


기타자산


장기성 투자자산(주식, 채권) 26,472,134


잔여기부 조건부 신탁 지분 1,942,054


영구신탁으로부터 받을 지분 3,651,612


증권보험 예치금 72,013


주택공사 장기 기부 채권 125,453


유형자산 11,537,533


총 기타 자산 43,800,799


총 자산 51,020,047




* 글/사진=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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