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 때 더 나눠야지요!

지난 20일 후원자님을 찾아가는 길. 흩뿌리던 빗물이 마치 양동이로 쏟아 붓는 듯 장대비로 변했습니다. 언제 세워졌는지 고층빌딩이 즐비한 낙성대역을 지나 서울대 후문쪽으로 자동차가 진입하자 일군의 아파트 숲이 나타났습니다.


반갑게 저를 맞아준 분은 서울대 국제대학원 일본연구소 남기정 교수님입니다. 올 봄까지 가끔 재단을 방문하시거나 북한산 자락으로 재단직원들을 초청해 점심을 대접해 주셨던  교수님은 지난달 국민대에서 서울대로 자리를 옮기셨다고 합니다.오랜만에 찾아와서 ‘내가 길을 잘못 들었나?’하는 순간 서울대 교수회관이라는 푯말이 보였습니다. 몇 년 전에는 관악산 숲자락이었는데…….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을 실감하며 기억을 더듬어 국제대학원을 찾았습니다.


남 교수님은 2005년 재단이 설립되자 가장 먼저 정기후원을 해주셨습니다. 지난해 갑자기 찾아온 경제위기로 아쉽게도 많은 후원자님들이 후원을 중단하실 때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어려울수록 더 열심히 일해 달라”며 후원금을 두 배로 올려주셨습니다.


연구실은 아직 정리가 끝나지 않은 듯 여기저기 책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책으로 정신이 없지요? 하지만 책들은 저의 분신과 같습니다. 아마 정리해도 어수선 할 겁니다”하고 웃으시는 남 교수님의 눈매가 선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귀국한 뒤 사회적 약자들을 제대로 배려하지 못하는 우리 현실을 보고 안타까우셨다는 남 교수님. 그는 환자들이 편안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재활병원을 짓겠다는 푸르메재단 설립 소식을 들으시고 눈이 번쩍 뜨여 주저 없이 후원을 결정하셨다고 합니다.남 교수님은 매일 시위가 끊이지 않았던 혹독한 80년대 초반 봉사동아리를 만들어 대학생활 내내 인근 보육원에 봉사활동을 하셨습니다. 일본 도쿄 대학 유학시절 그리고 도호쿠 대학에 교편을 잡으셨을 때 일본 정부와 지역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배려하는지 눈으로 목격하고 많은 감동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교수식당에서 맛있는 점심을 사주시며 재단의 근황을 물으시던 남 교수님은 “아름다운 마음을 모아 꿈꾸는 병원을 착공하길 기대하지만, 너무 서두르지 않고 꼼꼼하게 준비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강의와 연구에 쫓겨 재단 직원들에게 점심 사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는데, 이젠 멀어져서 어떡하지요?”


직장은 조금 멀어졌지만 ‘마음의 거리’는 훨씬 더 가까워진 것 같아 뿌듯한 기분으로 돌아왔습니다. 푸르메재단 후원자님들은 정말 남다른 분들이십니다!


글/사진=정태영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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