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스승

날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니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다. 스쳐 지나가듯 의미 없는 만남도 있지만 진한 감동이 평생 이어지는 아름다운 인연도 있다.


내게 잊을 수 없는 것은 함석헌 옹과의 만남이다. 젊은 시절 그를 만난 것은 말할 수 없는 행운이다.


80년대 초 대학은 신군부의 억압과 통제 속에 신음하고 있었다. 연일 독재타도를 외치는 시위가 벌어졌다. 선후배와 친구들은 구속됐고 그나마 구속 안 된 사람들도 강제 징집돼 사라졌다. 세상이 온통 잿빛이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어느 일요일 오후, 도서관에 있는데 친구들이 찾아왔다. 함석헌 옹을 찾아뵙자는 것이었다. 당시 함석헌 옹은 잡지 ‘씨알의 소리’를 통해 소외된 민중의 힘을 역설하며 무교회주의와 민주화를 부르짖고 있었다.


수유지 버스 종점에 내린 우리는 묻고 물어 어렵게 함석헌 옹 댁을 찾았다. 마당이 있는 작은 기와집이었다. 30도가 넘는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함석헌 옹은 단아한 한복차림이었다. 여든이 넘으셨지만 눈빛만은 형형하게 빛났다. 세상 고뇌를 짊어진 우리는 앉기 무섭게 질문을 쏟아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내가 먼저 물었다. “선생님! 우리 사회가 어디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지금 생각하니 참 당돌한 질문이었다. 함 옹은 깊은 생각에 잠기시더니 잠시 후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네 이름이 뭔가. 무엇을 하기에 앞서 자네 자세부터 고치게. 고개를 꼿꼿이 들고 허리를 곧추세우게. 늘 바른 자세로 항상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게!” 많은 문답이 오갔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함석헌이라는 우리 현대사의 거목이 지적하셨던 ‘바른 자세로 바른 생각을 하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 말씀은 이후 내 삶의 좌표가 됐다. 소련 쿠데타 때 파견돼 포탄 떨어지는 내전 상황을 기사로 쓸 때, 강원도 백담사에 은둔했던 전두환 씨 취재를 위해 영하 20도의 추위 속에서 벌벌 떨 때, 국내 최초로 하우스맥주전문점 <옥토버훼스트>를 만들기 위해 계획서를 들고 투자설명회를 하러 다닐 때, 푸르메재단 설립허가를 위해 발바닥에 땀띠 나게 뛰어다닐 때 정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 때마다 “고개를 꼿꼿이 들고 허리를 곧추세우라”는 함석헌 옹의 말씀이 화두처럼 내 가슴을 때렸다. 넘어질 때 할 때 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나는 벌떡벌떡 일어날 수 있었다. 힘들고 지칠 때 마다 그와의 향기 나는 만남을 되새기게 된다. 함석헌 옹 같은 인생의 스승을 더 만날 수 있을까.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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