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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에 나선 민사고 학생들

명동 거리에 희망의 홀씨를 날려요

 민들레하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나요? 저 멀리 지평선마저 푸른 넓은 들판에 노란 수를 놓은 듯 핀 민들레가 떠오르나요, 아니면 삭막하고 시끄러운 도시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희망을 심어놓는 민들레의 모습이 떠오르나요? 태어나서 도시를 떠난 적이 없기 때문일까? 내 머릿속 민들레의 이미지는 깨진 시멘트 사이에서도 피는 강인한 생명력이다.

민족사관고등학교
2학년 안영란(G4)

어떻게 저런 곳에서 꽃이 필까 경이로운 민들레. 봄에는 이곳저곳에 별빛희망을 심고 가을에는 누구보다 가볍게 날아 곳곳에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 되어주는 민들레. 내 마음 속에 푸르메가 처음으로 내려앉을 때, 민들레 씨앗이 내 마음에 내려앉는 듯했다.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동기는 불순했다. 단순히 독특한 봉사활동을 한다고 자랑하던 아이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고 싶어 잡지 신문 등을 뒤적이다 발견한 것이 푸르메다. 우연히 들어간 푸르메재단 사이트에는 각종 정보가 가득했다. 장애인들을 위한 민간병원을 짓고 싶은 병원이라는 설명을 보고 한국 최초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시민들이 스스로 돈을 모아 민간병원을 지을 거라는 소리에 우리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이트에서 여러 동영상을 보고, 후원자들이 남긴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푸르메는 더 이상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풀이 아닌, 나만의 샛노란 민들레로 다가왔다. 비록 푸르메를 알게 되기까지, 동기는 모질지만, 모진 곳에 싹을 틔운 민들레라고 아름다운 꽃이 피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지 않은가?

누가 그랬더라, 시작이 반이라고. 이 말을 한 사람은 정말 인생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아무리 푸르메를 돕고 싶단 마음이 가득해도, 정작 학생의 신분으로 내가 얼마나 푸르메를 도울 수 있는지 또 어떻게 도와야 가장 바람직할지 생각만 가득하지 도저히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수 없었다. 내겐 마음에 자리 잡은 씨앗을 싹틔울 거름과 물이 필요했다.

다행히 나는 푸르메재단을 방문함으로써 비옥하고 아름다운 거름을 얻을 수 있었다. 건물들이 빽빽이 서있는 도로 한복판 좁다란 간판을 가진 사무빌딩 하나. 그곳은 푸르메재단과 병원이었다. 재단은 상상했던 것보다 작은, 하지만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따뜻한 곳이었다. 학생인 내가 푸르메재단을 위해 엄청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당연하고, 나는 많은 푸르메재단 후원자 중 한 명일 뿐이었는데도 그곳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게 푸르메재단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나의 작은 도움에도 정말 고마워했다. 내게 푸르메재단이란 곳을 알려준 신께 감사하다 기도를 드리고 싶을 정도로 사람들은 나에게 자상했다.

사무실을 나와 치과와 한방센터에 가보니 그곳엔 또 다른 사랑으로 넘쳤다. 순수한 봉사와 헌신으로 장애인 환자들을 대하는 의사선생님들, 아픈데도 꾹 참고 치료를 받는 장애인 환자들. 서로를 이해하고 위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이곳에서 나는 사랑과 봉사 그리고 헌신으로 가득한 거름을 얻을 수 있었다. 이 거름은 내 마음 속 씨앗을 싹틔우기에 충분했다. 정말 이곳을 위해 무엇이든 해주고 싶고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다.

푸르메재단에 다녀와서 많은 고민을 했다. 어떻게 도와주어야할까. 학생이란 위치에서 푸르메재단에 많은 돈을 기부한다는 것은 억지다. 원래 기부금을 모아 푸르메에 전달하려고 했지만, 아주 적은 양의 돈을 잠깐 동안 모아 전달하는 것은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고민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푸르메를 홍보하는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한테 푸르메를 홍보하는 동시에 작은 기부금도 마련할 수 있는 활동, 사람이 많은 명동에서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 하지만 푸르메 캠페인 전에도 여러 캠페인 활동에 참여한 적은 있었지만 주로 큰 활동이었고 어른들이 주축이 되었던 활동이었기에, 이번 캠페인은 정말 긴장되었다. 주변 사람들 도움 없이 잘 해나갈 수 있을까, 우리가 충분히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을까. 어떻게 모르는 사람들한테 다가가 푸르메를 알려야할까. 이런저런 고민들이 슈크림 빵이 부풀듯 내 머릿속을 꽉 채웠다.

왁자지껄 시끄러운 명동거리. 붐비는 사람들. 명동거리 한 복판에 작은 책상에 푸르메 모금함을 올려놓고 작은 현수막을 좌우에 배치시켜 작은 모금장소를 만들었다. 나와 친구들이 아무리 분주하게 움직여도 관심이 없는 사람들. 과연 이 사람들의 시선을 잘 끌 수 있을까?

>>좌로부터 김보원 안영란 최상현 학생

명동에서의 캠페인은 눈물과 기쁨의 반복이었다. 겨우 용기를 내어 “1000원의 나눔에 동참해주세요!”라 소리치며 지나가던 행인에게 사탕과 우리가 만든 재활용비누를 나눠 주려해도 우리를 무시하고 지나가는 사람들. 아이들이 사탕을 받으려고 하면 이런 거 먹으면 안 된다고 우리를 막는 아이의 부모님들.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비웃으며 우리를 따라하는 학생들. 이들은 우리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그리고 무관심의 무서움을 알려주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무관심이 무섭고 또 괘씸해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우리에게 보이는 무관심은 이들이 장애인들을 대할 때 보이는 것과는 비교도 하면 안 될 정도로 작을 것이다. 또 우리는 학생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강한 신뢰를 주는 이미지를 갖고 있지도 않기에, 나라도 그들처럼 우리를 무시했을 것이기에 그들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낼 수 없었다. 그저 너무나 당연한 듯 보이는 사람들의 무관심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끝까지 노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무시했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과 나들이 나온 아주머니들이 반갑게 웃으며 우리를 도와주시기도 했고, 명동거리를 청소하시던 아저씨들이 도와주시기도 했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좋은 일을 한다고 보기 좋다며 응원해주시기도 했다. 그런데 아주 놀라웠던 것은 한국인들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우리에게 많은 기부를 해 주었다는 것이다. 일본인, 프랑스인, 중국인 등. 우리가 하는 말도 잘 이해하지 못할 외국인들이 우리를 가장 많이 도와주었다. 다른 관광객들에게 우리를 홍보해주기도 했다. 뜻밖의 도우미들. 우리는 그들이 정말 고마웠다. 그들의 응원과 도움에 힘을 얻어 더 크게 소리치고 더 활발하게 돌아다녔던 것 같다.

힘든 것을 견뎌내기 위해,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른 캠페인에 참여했을 때보다 더 적극적이고 열심히 활동했다. 친구들 모두 햇볕에 얼굴이 타 벌겋게 변했다. 목이 쉰 아이도 있었고 목이 말라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아이도 있었다. 힘들었지만 기뻤다. 목이 쉰만큼, 피곤한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푸르메를 알렸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작게나마 모은 돈들을 예쁘게 펴 종이봉투에 담을 때 병원에서 본 아이의 밝은 얼굴이 생각나 눈물이 글썽이기도 했다.

사실 우리가 모은 돈이 푸르메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와 친구들 모두 안다. 하지만 어른들 뿐만이 아니라 우리 청소년들도 푸르메를 응원한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우리는 우리의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푸르메를 응원하고 또 응원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푸르메가 성장할 때 비록 많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를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미소 지을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비록 어설픈 시작이었지만, 나는 믿는다. 이렇게 노력하다보면 민들레씨앗처럼 푸르고 맑은 마음이 온 세상 멀리멀리 날아가 전 세계를 푸르게 뒤덮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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