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을 가슴에 품고 잘 있니?


정호승 시인이 백두산트래킹에 참가한 청소년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종원아, 규범아, 유진아, 소연아, 경우야, 시원아, 윤상아, 그리고 희도야, 형진아!


이렇게 다시 너희들의 이름을 불러보니 너희들의 얼굴 하나하나, 눈빛 하나하나, 몸짓 하나하나가 다 떠오르는구나.


우리들이 백두산을 다녀온 지 벌써 20여일이 지났다. 그동안 잘 있었니? 내 귀엔 아직도 “종원아, 규범아, 소연아” 하고 너희들을 부르던 여러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너희들하고 차를 타고 백두산을 향해 달려가는 것만 같구나.


추석은 잘 지냈는지? 송편은 많이 먹었니? 나는 이번 추석에 여든이 넘으신 늙은 어머니가 손수 만든 송편을 무지하게 맛있게 많이 먹었단다. 아마 너희들도 엄마가 만들어주신 송편을 맛있게 많이 먹었을 거야.


나는 지금도 백두산을 오르기 직전에 엄홍길 대장께서 하신 말씀이 잊혀지지 않아.

“우린 지금부터 백두산을 올라가는데, 각자 혼자 올라가는 게 아니고, 다 함께 같이 올라가는 거야. 누가 먼저 올라가고 하는 게 아니야. 알았지?”

엄홍길 대장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때 너희들은 “네!” 하고 힘차게 대답했지.

나는 지금도 너희들의 그 힘찬 대답소리가 내 마음에 들려와. 그때 난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지.



‘맞아. 우린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가는 게 중요해. 그게 우리가 백두산을 찾은 까닭이야. 많은 사람들이 혼자 먼저 올라가려고 하니까 세상 살기가 이렇게 힘든 거야.’


그날 우린 정말 엄대장님의 말씀을 따라 다 함께 손을 잡고 발을 맞추어 백두산을 올라갔지. 누구 한 사람 먼저 올라가는 사람이 없었어. 혹시 누가 뒤처지지는 않는지 잠시 쉬면서 뒤돌아보기도 했지. 나도 1천2백여 개나 되는 계단을 힘들게 올라갔지만 천지를 보는 순간, 힘들다는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너무나 놀랍다는 생각만 들더군.


어떻게 2천7백50미터나 되는 그 높은 산꼭대기에 그렇게 깊고 넓고 푸른 물이 고여 있는지 정말 아름다웠고 신비로웠어. 그래서 나는 얼른 내 가슴속에 백두산을 품고 또 천지를 품었어.



사실 백두산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천지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니. 만일 백두산에 천지가 없다면, 어쩌면 백두산으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잃어버릴지도 몰라. 따라서 내가 한 인간으로서 아름다운 것도 결국 내 마음속에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라.


동화작가로서 단 한 권의 시집을 남긴 정채봉 씨는 그의 시 「슬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에서 백두산 천지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지.


아!

이렇게 웅장한 산도

이렇게 큰 눈물샘을 안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난 이 시를 참 좋아해. 내가 슬플 때 나만 슬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야. 백두산도 슬퍼서 천지와 같은 눈물샘을 가지고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내 가슴속에 눈물샘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라.



우리가 여행의 마지막 날 밤 식사 후에 삼행시 짓기 대회를 했는데 그때 소연이가 셋째 행에서 ‘산은 역시 백두산이다’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 지었을까? 아마 소연이도 천지에 대한 감동 때문에 그런 삼행시를 지었을 것이라고 생각돼.

맞아. 우리들은 그날 각자 자기만의 백두산을 하나씩 선물 받은 거야. 이제 그 백두산을 어떻게 소중히 간직하느냐 하는 것은 각자 우리 자신들에게 달렸어. 난 슬프고 힘들 때마다 내 가슴속에 있는 백두산을 생각할 거야. 그리고 백두산에게 말할 거야. “그래, 너처럼 웅대한 산도 슬퍼서 눈물샘이 있는데, 나도 슬플 때마다 항상 널 생각하고 힘을 낼게” 하고 말이야.


참, 백두산 금강대협곡에서 우린 잊을 수 없는 일을 보았지. 의수화가이신 석창우 선생님 말이야. 나는 석선생님께서 의수로 붓을 쥐고 그림 그리시던 모습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양팔이 없으시고 발에 발가락도 몇 개 없으신 석선생님이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기까지 그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일들이 많았을까’ 하고 생각하니 갑자기 숙연해지는 거야.


난 그날 석선생님이 붓을 놀릴 때마다 숨을 죽였어. 아, 붓끝에서 피어나는 우리들의 모습! 너희들도 참으로 신비롭게 생각했을 거야.



난 그날 석창우 선생님께 참 많이 배웠어. 석선생님에 비해 그동안 난 참으로 편안하게 살아왔구나 싶어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어. 조금만 힘들어도 힘들다고 불평불만이 많았던 나 자신을 반성하고 또 반성했지. ‘앞으로 그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석선생님을 늘 생각하자’ 하고 말이야. 아마 나처럼 너희들도 그런 생각을 했을 거야.


참, 석선생님이 그림 그리실 때 종원이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는데 무슨 기도를 했니? 아마 석선생님 그림 그리시는데 더 이상 큰 어려움은 없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거야. 그런 기도를 한 종원이 마음 그 얼마나 예쁜 마음이니.



지금 생각해보니 참 재미있는 일도 많았어. 나 실은 너희들한테 고마워 할 게 하나 있어.


엄홍길 대장께서 통화시 호텔에서 저녁에 강연하실 때 난 왜 그리 잠이 쏟아지던지. 눈을 똑바로 뜨려고 해도 자꾸 눈이 감겨 그만 앉은 채로 졸았는데, 그런 나를 보고도 못 본 척 해준 너희들 정말 고마워.


며칠 전 점심 때 어느 추어탕 집에 갔는데 반찬으로 번데기가 나왔어. 어릴 때 먹던 번데기를 생각하면서 몇 점 집어먹었는데 고소한 맛이 어릴 때 그 맛 그대로였어. 문득 너희들과 중국에서 밤늦게 고기 구워 먹을 때 반찬으로 나왔던 커다란 벌레가 생각났지. 그 벌레도 실은 번데기인데 난 못 먹었어. 너무 크고 징그러워서 말이야.


너희들은 먹었니? 누구누구 먹었는지 정말 궁금해.



그리고 그날 밤 모닥불을 지펴놓고 우린 노래를 많이 불렀지. 그날 밤에도 규범이가 사회를 보았지. 규범인 정말 사회를 너무 잘 봐. “정말 노래를 잘 부르십니다. 신이 내린 목소리입니다. 파가니니의 목소리를 닮았습니다” 하고 격정적으로 소리치던 규범이의 목소리가 아직도 들려. 유머 감각이 풍부한 규범이가 우릴 늘 즐겁게 해주었는데 지금에서야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되는구나.



물론 마음 아픈 일도 있었어. 난 압록강에서 북한의 산을 바라볼 때 마음이 무척 아팠지. 헐벗은 산. 일부러 나무를 다 깎아버린 산. 신록이 우거진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북한의 산이 그렇게 민둥산인 것은 탈북자들을 쉽게 체포하기 위해 북한 측에서 일부러 그렇게 한 거래.


난 그 산을 바라보면서 분단된 우리 민족의 현실이 더 뼈저리게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어. 그래서 ‘모두다 인간답게 잘 살아 탈북자가 생기지 않는 북한이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지만 그날 집안에서 장수왕릉과 광개토대왕릉을 보고 과거 고구려 시대에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위대했는가 잘 알 수 있어서 그나마 마음을 달랠 수 있었어.



오카리나로 찬송가를 잘 부르던 종원아, 멋지게 사회를 보던 탁월한 명사회자 규범아, 어엿한 숙녀의 모습으로 환하고 복스럽게 웃음 짓던 유진아, 엄대장님과 형진 오빠의 손을 꼭 잡고 백두산 계단을 열심히 오르던 소연아, 남성적인 듬직한 웃음을 씨익 웃곤 하던 경우야, 조용하고 침착하던 시원아, 비록 말은 없었지만 윤상아, 그리고 맏형다운 카리스마가 돋보이던 희도야, 우리 시대의 가장 멋진 마라토너 형진아!


우리 다시 만나면 그날 그때처럼 까르르까르르 웃곤 하겠지. 수많은 세월이 지난 뒤에도 그날 우리들 가슴속에 자리 잡은 백두산을 잊지 말도록 하자. 백두산이 울면 우리도 같이 울고, 백두산이 웃으면 우리도 크게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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