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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욱 작가] 장애가 있다고 꿈까지 작을 순 없다.

한겨레-푸르메재단 공동캠페인 <희망의 손을 잡아요- 우뚝 선 장애인>

⑧ ‘가방 들어주는 아이’의 작가 고정욱씨

장애가 있다고 꿈까지 작을 순 없다

» ‘가방 들어주는 아이’의 작가 고정욱씨.

아들이 대학에 입학했다. 전공은 건축학. 전공 선택에 대해 내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는데 녀석이 스스로 정한 전공이다. 대견하기도 하지만 어려운 분야에서 과연 잘 해낼까도 궁금했다.

“건축을 전공하려는 너의 꿈은 뭐냐?”

“그, 글쎄요?”

하긴 아직 대학 1학년짜리에게 꿈과 비전이 확실하게 자리 잡기는 어려운 일이다. 나의 경우를 돌이켜 봐도 그때는
갈 곳 몰라 방황하지 않았던가.

내가 꿈다운 꿈을 가진 건 바로 대학 2학년 때였다. 어렴풋하게 작가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것도
그저 작가 자체가 꿈인 거였다. 작가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어떤 비전이 있는지도 잘 모르면서.

애초에 의대에 진학하려던 나의 꿈은 장애인은 입학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대학 당국의 방침에 따라 깨지고 말았다.
부모님과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급선회한 전공이 바로 국어국문학. 장애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전공이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너는 장애가 있어서 세상 경험이 부족할 텐데 어떻게 작가가 되려고 그래?”

» 성대신문주최 소설공모에서 단편소설이 당선돼 조좌호 총장에게 상장을 받고 있는 고정욱씨.

같이 문학을 공부하는 친구들이 던지는 의문이었다. 과연 그런가. 장애인은 이 사회를 모르고, 인간 삶의 진지하고 원초적인 고민에서 동떨어져 있는 존재인가?

결론은 ‘아니다’였다. 장애야말로 또 다른 특별한 삶이고,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필요충분 조건이었다.

그런데 문학은 나의 적성에도 어느 정도 맞았다. 어려서부터 장애로 인해 집에 틀어박혀 책을 많이 읽은 덕을
보았다. 시간이 지나자 문학을 공부하게 된 걸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아니, 문학을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살았을까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때론 정말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길이 사람들 앞에 준비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건 인간의 의지나 염원을 초월하는 것이기도 하다.

» 서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고정욱 작가.

10여 년의 습작과 문학 공부 끝에 나는 작가가 될 수 있었다.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된 것이다. 대학 시절의 꿈을 이룬 것이다.
동시에 박사학위도 받았다. 세상을 상대로 뭔가 해낼 수 있는 무기를 손에 쥔 것만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작품을 써서 작게 인정받은 게 뭐 그리 대단한가 싶지만 말이다.

작가가 되고 보니 그게 또 새롭고도 막막한 시작이었다. 좋은 작품을 끊임없이 써서 독자들의 삶에 영감을 주고,
문제의식을 던지며, 또한 즐거움을 선사해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가 발등에 떨어졌다. 그건 작가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다행히 어려서부터 쌓은 많은 독서 경험은 도움이 되었다. 처음 낸 책이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나는 비교적 운 좋은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역사소설:<원균>) 그 뒤 나는 부단히 작품을 발표하며 독자들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작가가 되려 노력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새로운 비전과 꿈은 일상의 관성적이고 습관적인 창작에 함몰되고 없었다.

» 독서캠프 강연을 마친 뒤 어린이들이 고정욱 작가의 책에 사인을 받고 함께 포즈를 취했다

그런 나에게 새로운 비전이 생겼다. 나만의 독특한 경험이고 나의 숙명인 장애를 문학의 장으로 끌어들인 것이었다. 미래의 세상을 장애인이 차별 받지 않는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면서 나는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게 장애를 소재로 한 동화를 발표했다.

고맙게도 나의 그런 시도는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으로 돌아왔다.(<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실이>, <가방 들어주는 아이>,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등) 많은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게다가 수많은 강연요청이 쇄도했다. 전국의 초․중․고교, 도서관, 사회단체 등의 강연을 다니며 나는 내가 작가인지
강연가인지 모를 정도다. 남들은 그런 나에게 왜 실익도 없이 힘든 강연을 하느냐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백문이 불여일견. 장애인에 대해 아는 것은 책만으로 모자라다. 직접 장애인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모습을 한번이라도 본 어린이라면 평생 그 머릿속에 나의 이미지로 장애인들을 느끼고 그들에게 다가갈 것이라 여기는 까닭이다.

그러나 꿈은 늘 새롭게 변하고 발전하며 커지는 법. 작가가 된 뒤 수차에 걸쳐 참관한 해외 도서전에서 나는 내
앞에 열린 새로운 지평을 발견했다. 아직도 대다수의 국가에서 장애인은 부끄러운 존재이고,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천벌을 받은 사람으로 여길 뿐이었다. 그들에게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책이라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장애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 고정욱 작가는 강연을 통해 만난 수많은 사람들에게 “꿈꾸는 자만이 이룰 수 있다 ”는 말을 잊지 않는다.

이후 나의 꿈은 전 세계에 내 책을 발간해 세계인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으로 변했다. 현재 10여권의 책이 중국, 일본, 대만, 태국, 미국 등지에서 출간되었거나 번역중이다. 그러나 그걸로 양에 찰 리 없다.

유럽과 북남미 지역을 포함해 더 많은 나라에 나의 책을 알리고 소개할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많은 여행을
통해 그들의 삶을 알고 배우려 애쓰고 있다. 세계인의 보편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함을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의 꿈은 진보하고 있다. 죽는 날까지 이 길로 매진할 것이다. 장애의 고통과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담은
독자적인 작품을 쓰면서……. 꿈은 꾸는 자만이 이룰 수 있지 않은가. 나의 이런 꿈과 비전을 들은 아들이 며칠 뒤 나에게 말했다.

“아빠 저도 꿈을 정했어요. 아주 큰 꿈이에요.”

“뭔데?”

“나중에 우리나라가 통일이 될 거 아니에요? 그럼 제가 통일 한국의 신도시 전체를 설계할 거예요. 이념과,
민족과, 분단 화합 통일 이런 거 모두 다 아우르는 개념으로요.”

그렇다. 누구에게나 어떤 처지에 있거나 꿈꾸는 자유는 허락되는 것이다. 장애가 있다고 꿈까지 작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고정욱 /작가

■고정욱 작가 프로필

이 글을 쓴 고정욱은 성균관대학교 국문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문학박사이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은 그는 1급 지체
장애인으로 휠체어를 타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다.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작가가 되었고, 최근에는 장애인을 소재로 한 동화를 많이 발표했다.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실이》,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의 일기》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특히 《가방 들어주는 아이》는 MBC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 선정도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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