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았지만 괜찮아요!

2007년 포탈사이트에 올린 베토벤 월광 소나타 연주 동영상으로 UCC 스타가 된 뇌성마비 피아니스트 김경민씨(28)를 만났다. 5분 분량의 UCC 동영상으로 세상에 반짝 알려졌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자 상처를 받고 집에 칩거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고 나서였다.


"상처를 좀 받았지만 집에 숨어 지내지는 않습니다."



김경민씨는 매우 밝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누구나 가진 열정과 노력으로 관심 있는 피아노를 열심히 연습해서 남들만큼 잘 치게 된 것뿐, 자신은 '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주인공'이 아니라고 말했다. 남들은 제일 관심 있게 보는 장애에 대해서도 정작 본인은 누구나 가진 어려움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성실하게 노력하며 살아온 그의 인생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김경민씨가 처음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부모님이 운영하던 음식점 옆, 피아노 학원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에 이끌려 무작정 학원을 찾았다. 온몸이 마비되는 장애 때문에 손가락이 펴지지 않았고 손목까지 안으로 굽은 상태여서 처음에는 주먹을 쥐고 건반을 쳐야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학원이 문을 닫아 잠시 쉬다가 중학교 3학년 때부터는 독학으로 피아노를 연습했다. 꾸준한 연습 덕분에 손가락은 점점 펴졌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참가한 비장애인 콩쿠르에서 은상(3위)를 받기도 했다. 그때 대회에 참가하려고 3개월간 매일 10시간이 넘도록 연습한 곡이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였다.



고향인 안산에서 고등학교까지 특수학교를 다닌 그는 대구에 있는 모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다. 몸도 불편한 그가 객지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하자 주위 사람들이 모두 걱정하고 반대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은 꼭 해 내는 그의 열정과 호기심을 꺾지는 못했다. 청소년기부터 피아노뿐만 아니라 수영 2년, 사이클 2년, 스쿼시 1년 등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도전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교에 다니면서 김경민씨는 컴퓨터 정비소를 운영해서 스스로 돈을 벌었다. 독학으로 배운 컴퓨터 실력이었어도 데이터가 손상된 컴퓨터를 복구하는 고급 기술을 능숙하게 사용할 정도로 높았다. 처음에는 장애인이라는 편견 때문에 일을 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한 번 서비스를 받은 사람들은 다음에도 꼭 그를 찾았다. 높은 기술력과 저렴한 가격에 상세한 설명과 철저한 서비스를 제공한 게 성공 비결!


컴퓨터를 배우면서 동영상 촬영과 편집도 배운 그는 2006년 11월 월광 1악장 연주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UCC 게시판에 올렸다. 이 동영상은 당일에만 10여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할 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돕겠다는 연락이 이어졌는데 외국에서 돕겠다는 전화 걸려 올 정도였다.


하지만 밀물 같았던 사람들의 관심은 썰물처럼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여기저기에서 걸려오던 연락도 거의 끊겼고 가장 원했던 연주회도 취소되었다 다행히 모 지자체에서 관심을 보여 2007년 4월 마침내 독주회를 개최할 수 있었지만 실망감이 컸다.


그러나 김경민씨는 오래 슬퍼하지는 않았다 대중의 관심이 적어졌을 뿐 지속적으로 격려와 도움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매일 3시간씩 꾸준히 피아노 연습을 지속했고 작년에 총 4번 연주회를 열 수 있었다.



김경민씨는 자신의 장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살면서 장애 때문에 힘든 적은 없다고 말한다. 누구나 어려운 일을 겪는 것처럼 자신에게도 약간의 어려움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천성적으로 워낙 밝은 성격인 탓도 있지만 삶에 대한 성숙한 이해가 엿보인다.


가장 힘들었을 때를 묻는 질문에도 '가장 친한 친구가 죽었을 때'라면서 장애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말했다.


"저는 누구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꾸준히 노력하면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질적인 결과가 없다고 해도 최소한 자기만족감을 얻을 수 있잖아요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어요"


장애 때문에 뒤뚱뒤뚱 걸어서 밤이면 취객으로 오인 받아 사람들에게 머리를 맞으며 놀림을 받기도 한다는 김경민씨. 그럴 때마다 씩~ 웃어주고 넘긴다는 그는 오늘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신에게 생겨날 재미있는 일들을 향해 달려간다. 그의 발걸음에 늘 음악이 함께 하길 기원해 본다.


글=이재원 푸르메재단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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