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곁에 있는 기적




연예뉴스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초등학교 1학년 조카 민수가 내 방에 뛰어 들어오면서 말했다. “이모! 기적이 일어났어!” “기적? 무슨 기적?” “이모가 작년에 사 준 로봇 잃어버렸잖아. 지하방에서 찾았어! 도둑놈이 도로 갖다 놓은 모양이야.”


자기가 너무나 아끼던 로봇이 없어져서 도둑이 훔쳐 갔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그것을 찾은 모양이었다. “그게 기적이야?” 내 질문에 조카는 말한다. “그럼, 기적이지!”


마침 TV에서는 지난해 선행을 많이 한 연예인 중 10년간 40억 원을 기부했다는 가수 김장훈이 자신이 기부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었다. “저의 신조는 ‘나눠 쓰자’입니다. 제가 돈이 없을 때는 상대방의 돈을 함께 나눠 쓰자는 거였지만, 지금은 제가 돈을 버니까 제가 다른 사람들과 나눠 써야지요. 노래 잘하는 가수가 그렇게 많은데 사람들이 날 좋아해 준다는 건 바로 기적이거든요.”




나를 놀라게한 평범한 일들


즉 본인이 그 기적의 수혜자가 된 것이 너무나 고마워서 남과 나눠 쓰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다. 기적이란 상식이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던 일이 극적으로 이뤄지는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말한 ‘기적’은 그저 평범하게 남을 좋아하는 일, 나눠 쓰는 일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겪은 조금은 황당한 ‘기적’ 이야기도 있다. 작년 가을쯤 어느 회사의 박 팀장이라는 사람에게서 내게 강연을 의뢰하는 e메일이 왔다. “죄송하지만, 저는 선생님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사장님이 ‘강추’하셔서 서강대에서 e메일 주소를 찾아 연락드립니다.” 그리고는 내게 회사에 홍보할 수 있도록 짤막한 자기소개를 써 달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인터넷에서 나에 대한 정보를 찾아서 써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다음 날 박 팀장에게서 온 e메일 제목이 ‘당신이 바로 기적입니다’였다. 내가 기적이라고? 의아한 생각으로 e메일을 열었다.


“선생님이야말로 기적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후학 양성에 바쁘실 텐데 어떻게 그런 봉사를 하실 수 있는지요. 15년 동안 1000번이나 양로원을 찾으시다니요. 선생님을 강사로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선생님의 봉사생활에 대해 강의해 주십시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양로원? 1000번 봉사?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인가. 박 팀장에게 물으니, 인터넷에서 ‘장영희’를 찾으니 나의 봉사활동이 기사화돼 있더라고 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장영희’에 대해 꽤 긴 기사가 나와 있었다. ‘장영희(56·여) 씨는 15년째 봉사활동을 하면서 그동안 양로원 노인정 보육원 등을 방문한 횟수가 1000여 차례를 넘어서고 있다. 1992년 1500만 원을 들여 음향기기와 조명 장비, 1t 화물차 등을 구입한 뒤 충북 음성군과 충주지역의 노인, 아동 복지 시설 등을 방문해 봉사활동을 시작한 장 씨는….’


나는 15년 동안 1000여 곳의 양로원을 찾아 봉사한 ‘장영희’는 내가 아니라고, 나는 그런 ‘기적’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 봉사에 대해 강의하기 어렵다고 박 팀장에게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바다가 갈라져 땅이 되고 몇 백만분의 1 확률로 몇 십억 원짜리 로또복권에 당첨되는 일만 기적인 줄 알았는데 이들이 말하는 기적의 의미가 새삼스럽다. 우리 조카 말처럼 도둑이 훔친 물건을 돌려주는 일, 김장훈이 말하듯 남을 좋아해 주는 일, 내가 가진 것을 남과 나누는 일, 그리고 박 팀장이 말하듯 남을 위해 봉사하는 선행도 일도 따지고 보면 다 작은 ‘기적’들인지도 모른다.


나눔과 봉사 꽃피는 한 해


나와 김장훈이 다른 점은 난 그 기적의 수혜자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를 봉사의 기적을 행한 ‘장영희’로 착각한 것은 황당한 일이지만, 어쩌면 나도 그런 기적을 일으키며 살아 보라는 계시인지도 모른다.


우선 나부터 회심하고 2008년은 양심의 기적, 나누는 기적, 봉사하는 기적이 많은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참, 이런 모든 기적을 솔선해서 일으키는 새로운 대통령을 갖는 것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기적’이다.


장영희 서강대 교수·영문학


<2008년 1월 7일자 사설,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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