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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하우스의 열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페라하우스의 열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윤동 /2007 시드니 마라톤 참가선수, 시각장애인, 울산 시각장애이니 협회 회장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밤새도록 남녘으로 날아 2007년 9월 21일 아침, 이억만리 낮선 땅 호주 시드니공항에 착륙했다. 공항 문을 나서니 온통 알 아 들을 수 없는 말들과 몸으로 느끼는 선선한 바람으로 내가 드디어 처음으로 외국에 온 것임을 실감했다. 제일 먼저 산호초가 부서져 백사장이 만들어졌다는 본다이 비치(Bondi Beach)를 찾았다. 손으로 느껴지는 고운 모래밭과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 여기저기서 한국말 소리도 나고 마치 해운대나 대천에 온 느낌이었다.

 본다이비치(Bondi Beach)

나는 파도가 밀려나간 해변에 구덩이를 깊이 파고 손으로 모래를 뭉쳐 파묻었다. 이번에 같이 못온 아내와 언젠가 같이 오겠노라는 약속이었다.

‘캡틴 쿡 크루즈’라는 이름의 배를 타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시드니항을 유람했다. 선상에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우리나라도 이제 잘 살게 되었는지 한국 사람도 꾀나 많아 보였다. 사람들은 주변의 풍광에 취해 탄성을 지르는데 나는 별로 보이는 게 없네. 갑판 가운데 앉아 나는 “이 유람선의 선주다 승선한 사람들은 나를 위한 하객이다”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해졌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대회 전날 우리 일행은 마라톤 운영위원회에 찾아 배번호를 교부 받았다. ‘한번 잘 달려봐야지 ’하고 두 다리에 힘을 불끈 줘 본다. 대회장은 시드니의 명물인 하버브릿지가 바라보이는 오페라하우스 앞마당이다.

23일 마라톤 대회 당일. 새벽 4시에 기상, 특별히 준비한 특식 찹쌀밥으로 무장하고 새벽 5시 대회장으로 이동하는데 경찰이 교통 통제를 하고 있다. 버스를 내려 안내자가 사정을 얘기 하자마자, ‘아니! 호주 경찰 사이카 두 대가 우리를 컴보이해 주는 게 아닌가!’ 한국 장애인 마라톤 선수단은 갑자기 국빈 대우를 받으며 출발 현장에 도착했다. 기분이 상쾌했다. 선진국의 장애인을 배려하는 모습이 너무 달라 보였다. 출발시간까지는 1시간40분 남았다. 그런데 쌀쌀한 아침 날씨에다 러닝복 차림으로 기다리자니 한기가 엄습해 왔다. 나 떨고 있니?’ 나는 떨고 있었다. 그것도 심하게 떨고 있었다. 한기와 긴장감 때문이었다.

 

 출발에 앞서 모인 참가자들 (왼쪽부터 김정길, 이윤동, 차승우, 조중완씨)

오전 7시20분 출발 총성과 함께 주자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나와 도우미 김정길씨도 수많은 외국인주자들 틈새에 끼어 장도에 올랐다. 나의 최고 기록은 3시간30분, 나의 도우미인 김정길 형님의 기록은 3시간40분이니 오늘은 형님 페이스에 내가 따라 가는 식의 형태로 가면서 이것저것 좀 만져 보기도 하고 3시간 59분에 골인하기로 작전 계획을 세우고 레이스를 시작했다.

시작 전 마음과는 달리 뛰기 시작하자 신선한 공기에 다리도 가벼웠다. 하버브릿지 위에서는 다리 난간도 만져보고 여유를 부리며 10km를 51분에 통과하며 순조로운 레이스를 했다. 김정길씨는 “저기 앞에 다른 시각장애인 참가자 차승우씨가 가고 있다”고 말하기에 나는 “우리는 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우리 페이스대로 가자”고 주문했다. 그런데 김정길씨는 차승우씨가 신경에 거슬리는지 자꾸만 “몇 미터 앞에 그가 있다”고 하더니 12.5km 지점에서 “차승우씨가 갑자기 안 보인다”고 말했다. 화장실에 간 모양이다. 김씨가 “이때 우리가 따라 접자”며 더욱 가속페달을 밟으며 광란의 질주를 시작했다. 20km까지는 도심의 공원길을 달렸는데 너무나 쾌적한 분위기였다. 숲의 새소리는 시끄럽고 투박하여 우리나라 새의 아름답고 영롱한 새소리에 비하면 형편없었다.

벌써 반환점이다. 1시간 50분만에 통과했다. 평소 같으면 지칠 때가 되었는데 이국의 경치를 감상하느라 김정길씨는 열심히 설명하고 나는 즐겁게 들으며 가다 보니 힘도 덜 들었다. 반환점을 돌아오는데 시각장애인 차승우씨와의 차이가 500m정도 났다. 그런데 23km 지점에서 물을 마신 뒤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김정길씨의 속도가 점차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KTX에서 새마을호, 무궁화호로 비둘기호처럼 느려졌다. 나는 말했다. “형님! 이렇게 가면 서브4(4시간안에 골인)는 커녕 오버5(5시간 이상)가 되겠다”며 다그쳤다.

그리고는 끈을 잡은 손으로 김정길씨 팔을 잡고 등을 밀어붙였다. 이것 참 주객이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지, 봉사가 봉사자를 밀고 가다니 희한한 일이 발생했다. 그런데 좀 더 가다가 김정길씨가갑자기 “배가 아프다, 머리가 어지럽다, 메스껍다, 눈앞이 현기증이 난다”며 우는 상을 짓더니 말소리도 변성이 됐다. 28km지점에서 마라토너끼리 하는 말로 ‘완전 퍼졌다’너무 잘 하려다가 오버런(over run)을 한 것 같다. 겁이 덜컥 났다. 이러다간 완주는커녕 사람을 죽일 것 같았다.

나는 김정길씨를 그 자리에 눕히고 안마사인 나의 주특기로 만지고 주무르고니 그의 정신이 좀 돌아왔다. 지나가는 주자들이 “무슨 일이냐”고 묻기에 나는 주저치 않고 “앰블란스, 앰블란스!”하고 외쳤다. 그 때 김정길씨가 기진맥진해 있다가 용수철처럼 박차고 일어나 “Oh No. No No”라고 강력하게 손을 내 저었다. 그래도 나는 “형님 이대로 절대 완주 못합니다. 체면이고 뭐고 다 치우고 차를 탑시다. 죽습니다 죽어!” 하며 계속 도움을 요청하자 누가 신고를 했는지 두 명의 의료진이 달려 왔다.

김정길씨는 강하고 비장한 어조로 의료진을 뿌리쳤다. 가히 사생결단의 모습이었다. 아마 형님은 자신이 퍼지면 이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하며, 소임을 못한 비난은 어떻게 하며, 이번 행사를 망치게 될 수도 있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인간의 정신력은 무서웠다. 김정길씨는 기사회생하여 오뚜기 처럼 벌떡 일어났다. 우리는 천천히 걸으며 컨디션 조절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형님은 정상 컨디션을 회복해 갔다. 우리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어떤 여성주자가 내 팔꿈치에 바쳤는데 “I am sory”하니 그녀가 오히려 미안해 했다. 또 어떤 사람은 내 등을  툭 툭 치며 격려해주고 “Korean이냐”며 “Wonderful”이니 이상한 구호를 외치대며 달리는 나를 가로막고 박수도 쳐주었다. 많은 마라토너들이 우리에게 격려와 관심을 보여 줬다.

 

 완주 후 태극기를 들고 들어오는 김정길씨(왼쪽)과 이윤동씨

역시 스포츠 정신은 건강하고 아름답다. 외국인 장애인을 대하는 자세도 우리와 차이가 있어 보였다. “아! 아! 저기 오페라하우스 지붕이 보인다”며 김정길씨가 좋아했다. 우여곡절 끝에 골인 지점이 가까워진 것이다.

연도에 관중들은 우리를 보고 많은 박수를 보내 주었다. 결승선 500m쯤 전 누군가가 대형 태극기를 전해 준다. “대~한민국”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고 불끈 잡은 태극기는 시드니 하늘에서 요동친다.

코끝이 시큰해 오고 가슴에는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대한의 아들 됨이 자랑스러웠다. 오페라하우스의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우리를 환호한다. 우리의 열연을 보기 위해 모인 관중들일까? 순간 우리의 태극기는 춤을 추며 시드니 허공을 가르고 우리 두 사람의 심장은 결승테이프를 밀어 붙였다.

아 이 감격, 우리 둘은 서로 부둥켜안았다. 진한 감동이 밀려왔다. 오늘의 완주는 나의 도우미인 김정길씨, 아니 형님의 투혼이 합쳐진 걸작품이었다. 시드니의 맑은 하늘은 대한민국 장애인 감동의 마라톤을 축하를 해주고 있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준 푸르메재단과 에쓰-오일에 감사드린다.

 완주 후 장애인 참가자들이 기념메달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오른쪽이 이윤동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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