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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의 조건

 

M은 보수적인 남자인 듯 했다. 말이 없는 편입생으로 학우들의 질문에는 수줍은 미소로 답하던 그였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말문이 터진 거다.

가족 문제를 토론하는 수업시간이었고 교수님이 최근 변화된 가족의 개념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가족 개념은 불변하는 진리가 아니며, 따라서 가부장적인 가족 개념은 폐기하고 양성평등 개념 등 현대적인 가치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강의의 주제였다. 학생들은 대부분 교수님의 주장에 동의를 하는 듯 했고 남학생들도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교수님의 말씀에 공감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강의실 분위기에 반대하는 듯한 M의 주장은 매우 단호했다. 그는 수업기간 내내 상기된 표정으로 교수님과 토론을 벌였다. 교수님을 포함하여 다들 ‘오늘 쟤가 왜 저러나?’ 라는 표정이었다.

전반적으로 그의 주장은 강했지만 논리적인 근거가 부족했다. 가부장적인 가족 개념을 옹호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하지는 못했다. 결국 수업의 결론은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으로 내려졌고 그는 ‘안타깝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나는 남녀의 구분에 대한 그의 생각에는 공감할 수 없었으나 그가 미처 다 말하지 못한 것들이 궁금했다. 상기된 그의 표정 뒤에 내가 알지 못하는 무엇이 숨어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와의 인연이 뜻하지 않게 찾아 왔다. 삼학년 겨울 방학 때 서울을 훌쩍 떠나 강원도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가 춘천에서 문득 그가 생각났다. M의 고향은 태백이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재원이형! 반갑습니다. 저희 집에 오세요.” 무척 따뜻한 목소리였다. 나는 호기심 반, 반가움 반의 마음을 가지고 태백으로 향했다.

밤늦게 도착한 M의 집은 시내에 있는 작은 성공회 성당이었다. 성당 앞에는 백발이 성성한 신부님이 서 계셨는데 그의 아버지라고 했다. 어린이처럼 활짝 웃는 모습이 인상적인 분이셨다. 예상치 못한 환대를 받으며 잠자리에 든 나는 이틑날 아침부터 M의 일상생활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는 성당에서 운영하는 저소득 가정 어린이 공부방에서 실무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곳은 성당 공간은 개방하여 형편이 어려운 조손 가정이나 한 부모 가정의 어린이들이 함께 모여서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는 곳이었다. 인터넷 게임 너무 오래 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늘어놓고 근처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 노는 그의 모습은 그냥 어린이들의 친형 같았다. 그는 ‘공부방 아이들과 노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일’이라며 웃었다.

저녁에는 그의 가족을 만났다. 정말 대가족이었다. 뉴질랜드로 시집 간 큰 누나의 식구까지 포함하면 족히 이십 명은 넘어 보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가족이 수십 명 더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놀라는 나를 차에 태우고 한 시간을 달려 어느 깊은 숲속으로 데려갔다.

그곳은 ‘예수원’이었다. 예수원은 ‘산골짜기에서 온 편지’로 유명한 대천덕 신부님이 기도로 평생을 헌신하며 사셨다는 성공회의 생활공동체다. 여기에는 많은 기독교 신자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인들도 방문해서 조용히 기도하고 함께 노동을 하며 서로 섬기며 사는 곳이다. M은 그곳에서 나고 자랐다고 했다. 대천덕 할아버지의 바지끄댕이를 붙잡고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며칠 후 서울로 향하는 기차에 탄 나는 수업시간에 보았던 그의 상기된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의 얼굴 옆으로 그의 가족을 떠올렸다. 남녀를 구분하고 성역할을 구분하는 가족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다분히 전통적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정치적으로 옳바른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가족을 만났고 그의 과거를 걸어 보았다. 나는 그를 완전히 이해하진 못하지만 그리고 여전히 그의 가족관에 동의하진 않지만 그가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는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말이 아니라 삶 그 자체가 사람을 이해하는 최소한의 조건임을 알게 되었다.

M은 지금 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어린이를 섬기는 신부가 되기 위해서 공부하고 있다. 나는 그의 가족을 무척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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