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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서라도 올라 갈 거에요

 

전화기를 놓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말쑥한 제복차림의 경찰관 2명이 여지없이 집으로 들이닥친다. 우리 집은 2층이다. 집으로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방문 할 때는 휠체어를 탄 채로, 혹은 안아서 2층으로 올라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건장한 남성이 최소한 두 명은 필요하다. 다행히 집 근처 1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파출소의 도움을 빌리곤 한다. 몇 번 도움을 청했더니 이제는 주소를 말하기가 무섭게 알았다는 듯이 곧바로 달려오곤 한다. 도무지 귀찮은 구석이 없다. 오히려 즐거운 일거리를 제공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말까지 덧붙이기도 한다. 때로 우리 집에 놀러오는 어떤 장애인은 이 색다른 경험을 즐겁게 받아들이곤 해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언젠가 친구가 집으로 놀러와 관악산 자락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만 식사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너무 시장한 나머지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아 우리는 중국집에 짜장면을 시켰다. 한번 해보기나 하자고. 십분도 안 되어 배달이 되고 우리는 신나고 재미있게 순식간에 짜장면을 먹어 치웠다. 나중에 우리 둘은 한강시민공원에서도 한번 해보자는 재미있는 농담을 나누면서 그 날 즐거운 짜장면 파티를 마쳤다. 이 사건(?)을 계기로 친구와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가 아직 신뢰할만한 사회라는 것에 충분한 공감을 하게 되었다. 즐겁게 달려오는 경찰과 노상에서 주문한 짜장면을 순식간에 배달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었던 그들은 우리에게 든든한 이웃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또 그 옆에 연탄집이라고 하는 그곳은 삼겹살을 파는 식당이다. 우리 사무실 화제 중에는 슈퍼와 연탄이 자주 등장한다. 주로 이야기 내용은 슈퍼아저씨와 연탄아저씨 이야기다. 얼굴에 선함과 인자함이 그대로 흐르는 슈퍼아저씨는 설날이 지난 후 커다란 배 하나를 가지고 와서 쑥스럽게 내밀었다. 작지만 깎아 먹으라고. 배 하나에 흐르는 정을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있으랴! 환호성을 지르며 고맙게 받는 우리 사무실 일꾼들의 태도가 곱디 곱다. 어느 날 복사를 한 장 하고 싶다고 오셨다. 사무실 일꾼들의 엄청난 환대에 아저씨는 어쩔 줄 몰라 한다. 연탄집은 우리 사무실 휠체어가 드나드는 통에 출입문에 경사로를 만들었다. 누가 직원인지 모를 정도로 상추를 갖다 먹기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손님이 많아 아저씨 혼자 바쁠 때 우리 직원들은 서빙도 마다 않는다. 때로는 점심때 밥까지 빌려다 먹는다. 갚은 적은 없는 듯. 이웃집을 잘 둔 덕분에 우리 사무실 앞 경사로까지 아주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그 경사로 시멘트에는 누가 언제를 새겨두었다. 늦으막에 퇴근하는 날 사무실 일꾼들과 슈퍼아저씨 연탄아저씨가 합류하는 날에는 여지없이 그 다음날 동네 슈퍼와 연탄집 오전은 개점휴업이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무실 일터도 오전은 널럴(?)하다. 동창이 밝을 때까지 계속된 어울림의 아름다운 후유증인 것이다. 하지만 어찌 아름답기만 하겠는가. 후유증은 때로 감수해야하는 고통을 동반한다. 지나가는 행인의 치약하나, 길거리 아저씨의 붕어빵 한 봉지가 우리 사무실의 일하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바로 지역사회에서 일하는 깊은 맛과 인간적인 멋은 함께 일하는 자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슈퍼도 연탄집도 모두 우리의 든든한 지지자이면서 후원자다.

언젠가 사무실 봄맞이 소풍을 춘천에 있는 중도유원지로 갔다. 그곳은 욘사마라 불리는 배우의 드라마 촬영지로 관광객이 많아진 곳이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 30-40대 여성 팬들이 우루루 관광을 즐기고 있었다. 어린아이까지 데리고 온 중년 여성들의 한가로움이나 일본 여성특유의 몸짓과 표정을 간간이 쳐다보면서 배를 함께 타게 되었다. 대화내용을 조금씩 귀 기울이면서 고개를 돌리는데 낯익은 안내자의 모습이 보였다. 얼마전 대구에서 열린 한.일 장애인교류대회 때 가이더를 했던 분이었다. 그 당시 한복을 입었던 내 모습을 기억해주어 참 고마웠다. 어찌되었건 외국인들을 만날 때 간혹 개량한복을 입어보는 나는 역시 의상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번더 하게 해 주었다. 그분에게서 지난번 교류대회의 경험이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어디서든 장애인을 만났을 때 자신의 태도가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묻지도 않았는데 그런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해주었다. 고맙고 다행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 안내자에게 일본의 장애가 있는 아줌마들을 대상으로 욘사마 프로그램을 한번 같이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진담을 농담처럼 하고는 헤어졌다. 사람의 욕구는 모두 비슷할 것이므로.

휠체어를 필요로 하는 중증장애를 가지고 있는 그녀의 사회에 항거하는 자세와 도발적인 눈빛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휠체어로 지역사회에 있는 은행을 수시로 드나들어 문턱을 경사로로 바꾸어내고야 마는 그녀에게 분명 휠체어는 가장 강력한 사회변화의 무기임을 입증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역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손사용이 불편한 그녀는 외출 때 화장실조차 활동보조가 필요하다. 하지만 누구나 그 집에 가본 사람이면 먼지하나 없는 집안환경과 깍두기를 맛있게 담가먹는 그녀의 살림솜씨에 놀라게 된다. 또한 손님접대를 극진히 하는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반하게 된다. 그녀는 영화 오아시스의 실제 모델이기도하다. 나중에 장관으로 지내기도 한 감독과 여성주인공인 영화배우와 함께 그녀와 만나 영화제작에 대한 논의를 하였다. 이후 영화가 만들어지고 그녀에게 영화제작진에서 선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가 원했던 선물은 바로……… 영화의 남자주인공과 웨딩사진을 찍어보는 것이었다. 세상에… 맙소사….

그녀의 집에는 영화 오아시스 남자주인공과의 결혼사진이 걸려 있어 집에 오는 이들로 하여금 누구나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우리 사람들은 곧잘 사소한 일에도 두려움과 절망을 하게 된다. 손과 발 모두 자유롭지 못한 그녀이기에 그녀의 재치와 유머는 더욱 주변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함께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막의 진정한 오아시스가 될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지난해 결혼을 했다. 이제 한번 집으로 놀러가야 겠다. 사진을 어찌하였는지 궁금도 하고…

오래전 처음 만난 날 우리 집에 놀러오고 싶다는 그녀에게 나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이라며 미안해했다. 그런 나에게 그녀가 한 말은 지금까지 나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되고 말았다.

 박정자_‘장애인이 지역 사회에서 어울려 살려면 일자리가 꼭 필요하다’는 믿음으로 장애인 자립   생활센터 ‘프랜드케어’와 장애인 사회적 기업 연구단체 ‘큰날개’를 이끌어 오는 등 장애인의 사     회적 참여를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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