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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속이지 않는 삶

제가 성철 스님께 출가한 시절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출가하기 전 처음으로 성철스님을 뵈었을 때 스님께 평생 제가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좌우명을 요청 드렸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절 돈 3천원을 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 3천 배를 하라는 말씀입니다.힘들게 절 3천 배를 마치니 스님께서는 달랑 “속이지 마라”는 한 마디만 하셨습니다. 큰스님께서 주시는 좌우명이라면 평생 실행하려고 해도 힘든 굉장한 말씀일 줄 알고 기대했는데 기껏 “속이지 마라”고 하시니 말 그대로 스님께 속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큰스님께서 주신 “속이지 마라”는 좌우명에 실망한 것은 큰스님이 아닌 누구로부터도 그 말을 귀 따갑게 들었던 흔한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해인사 백련암 다녀온 석 달 후, 하루는 문득 큰스님께서 하신 “속이지 마라”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남을 속이고 산 일은 없지만 내가 나를 속이고 산 날이 너무도 많지 않은가! ’남을 속이지 마라‘가 아닌 ’자기 스스로를 속이지 마라‘ 이렇게 좌우명을 주셨더라면 정말 내가 평생 지키지 못할 좌우명이 아닌가!’ 하는 데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큰스님을 다시 찾아뵙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출가하게 된 것입니다.

출가한 첫 날, 큰스님은 “내일부터 일주일 동안 매일 3천 배 기도를 해라. 새벽 예불 후 천 배, 아침 공양 후 천 배, 점심 공양 후 천 배 이렇게 매일 3천 배 기도를 일주일하고 나서 보자”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속으로 ‘절에 들어와서 머리 깎으면 그만이지. 또 무슨 절인가’하고 생각했습니다. 절의 살림살이를 책임진 원주스님이 객실로 안내하면서 “일주일 3천 배 기도를 잘 마쳐야 삭발합니다. 삭발해야만 행자로 받아들여집니다”하고 일러주었습니다. 1월 중순. 음력으로는 정월이라 날씨가 몹시 추웠습니다. 새벽 3시경 일어나 차관(茶罐)에 물을 담아 영자당(影子堂)에 들어가 다기(부처님 앞에 놓인, 청정수를 담는 그릇)에 물을 올리고, 절을 했습니다. 어찌나 추운지 절을 시작한지 얼마 안돼 물이 얼고 이내 얼음이 부풀어 올라 쩍 갈라질 정도였습니다.

그런 추운 날씨에 이른 새벽 일어나 절을 하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습니다. 한 3일 동안 매일 3천 배를 부지런히 했는데, 그날 저녁에 ‘아이고, 백련암으로 출가했다간 평생 절만 하라면 어쩌나. 이렇게 힘든 절을 자꾸 시키면 신세 망치는데….’ 하는 못된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리지 않는 곳이 없이 온 몸이 쑤시고 아팠습니다.

‘앞으로 백련암에서는 당분간 절만 시킬 모양이다. 절만 하다가는 사람 죽어 나가겠다. 이렇게 힘든 절을 하느니 차라리 세상에 나가서 열심히 살지….’ 하는 생각 등 별의별 상념이 다 떠올랐습니다. 안 하던 절을 갑자기 하니 옴 몸이 어찌나 아파 오는지, 마음까지 약해져 이런 저런 망상이 끊임없이 일었습니다. “출가하라”고 하신 성철 큰스님은, 절을 시킨 뒤 다리가 풀려 마당을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있는 저를 보고도 “네 놈 언제 보았나” 하고 눈길 한번 주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에잇! 내일 아침 도망가 버리자.’고 결심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잠 속에 갑자기 눈썹이 허연 노스님들이 “나는 누구다, 나는 누구다” 하시는데, 하나같이 선종(禪宗)의 역사에서 쟁쟁한 선사들이었습니다. 그 노스님들이 하나같이 “내일 도망가지 말고, 일주일 기도 회향 잘해서 스님노릇 잘 해라.” 당부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화들짝 놀라 잠을 깼습니다. ‘그것 참 이상한 꿈이다. 내일 아침 도망갈 생각을 하니 이상한 꿈도 다 꾼다.’ 생각하고, 또 잠이 들었습니다. 새벽 기도를 마치고 아침 공양도 마쳤습니다. ‘도망가더라도 그동안 기거하던 큰 방 청소나 하고 떠나야지.’ 하는 생각으로 물걸레를 들고 방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 마침 성철 큰스님이 방문 열고 들어오시면서 “니 임마! 도망가야지. 왜 아직 도망가지 않고 있어!”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갑자기 당황스럽고 무안스러웠습니다.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무척이나 부끄러웠습니다. “스님! 정말 절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도망가려고 짐을 싸 두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 이렇게 도망가는 것을 훤히 알고 계시니, 도망갈 생각을 접고 열심히 절하겠습니다.” 하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절하는 사람 다 힘들지. 힘들지 않는 사람 있나. 열심히 절해서 기도를 마쳐라.” 하십니다. 다시 영자당에 올라 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힘들게 7일간 3천 배 기도를 마쳤습니다. 얼마나 추웠는지 손 발 귀 등 온 몸이 근질근질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7일 기도를 마치고 정식으로 머리를 깎았습니다. 그리고 벌써 30년이 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때 7일 기도를 마치지 못했으면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 3천 배가 제 인생을 결정지은 최대의 기로였을 것입니다. 흔히 무언가 힘든 일이 있을 때 포기하는 것은, ‘이 정도면 충분해’ 하며 스스로 만족하거나 ‘내 주제에 해 봐야 얼마나 하겠어’ 하며 스스로를 깔보는 마음 때문입니다. 성철 큰스님이 제게 주신 “속이지 마라”는 말씀에 비춰보면 모두 “자기를 속이고 사는 것”입니다.

7일 기도를 포기하고 절을 도망가려는 제 마음을 읽고 붙잡아 주신 것은 성철 큰스님의 지혜의 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누군가는 지혜의 눈을 밝히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원택스님
경북고, 연세대 정외과. 1972년 성철스님의 문하로 출가했습니다. 성철스님의 뜻에 따라 불교서 번역을 위해 1987년 장경각출판사를 설립한 뒤 장경각 대표,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중앙총회 부의장을 역임했습니다.현재 푸르메재단 이사, 파라미타 불교청소년협회 회장과 녹색연합 공동대표로 있으면서 부산 고심정사 주지를 맡고 있습니다. 1998년 문화부장관 표창과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저서 <성철스님 시봉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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