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려 가을을 노래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곽 재 복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기획실장)


내가 일하고 있는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의 현관을 지나다 보면 드나드는 숱한 이용자를 볼 수 있다. 복지관에서 생활한 시간이 어느덧 21년이다 보니 그 동안 복지관을 이용하면서 만난 분들이 적지 않다. 한 분 한 분 모두가 장애로 인한 다양한 사연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다. 그 사연들을 듣노라면 소설이 달리 필요 없을 만큼 극적인 내용이 너무도 많다. 돌이켜 보면 안타까운 사연, 기쁨으로 다가오는 사연, 작은 보람을 느끼게 하는 것 등 만감이 교차한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뒤 일을 시작할 무렵 처음으로 만나 4살짜리 여자아이와 그 아이의 부모는 아마 평생 잊지 못 할 것이다. 부모는 아이가 발달이 늦어서 혹시나 하는 불안감을 갖고 찾아 왔다.


진단 결과 아이는 정신지체였고, 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차라리 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진단 결과를 듣고 하염없이 흐느끼는 어머니와 멍하니 아무 말을 하지 못하던 아버지, 그와는 대조적으로 천진난만하게 노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무슨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던 첫 경험이 아직 생생하다. 그 후 그 어머니는 종종 전화로 상담을 했고, 힘든 과정을 넘기고 웃으면서 “아이가 중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 말을 전한 뒤 지금은 소식이 없다. 첫 상담이었지만 그 가족이 성공적으로 일상생활을 잘 해나가는 것을 보며 ‘사회복지사로서 참 행운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장애라는 현실 앞에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장애인복지를 오래하면 할수록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사람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관계를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정신지체와 시각장애를 중복으로 갖게 된 자녀 때문에 함께 죽고 싶은 심정이라며 괴로워하던 부모에게 현실적인 대안이 되어 주지 못할 때의 자괴감으로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하는 의구심을 갖기도 했다. 기껏해야 몇 군데 시설을 안내하고 희망을 잃지 말라는 위로가 고작이니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복지관에서 근무하는 것이 무조건 어려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13년 전에 퇴근길에 뺑소니 사고를 당해 의사소통은 물론 손발조차 움직이지 못하던 한 사람을 복지관 나들이 프로그램에서 10여 년만에 다시 만났다. 그 당시에는 더 이상 상태가 발전된다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 그가 농담도 하고, 손을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을 보고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해서 무엇보다 기뻤던 때가 있었다. 그 때 ‘재활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또 잊을 수 없는 일은 발달장애 청년과의 인연을 들 수 있다. 당시 취업준비생이었던 그는 타인과 눈을 잘 맞추지 않던 자폐장애를 가진 청년이었다. 그가 쉬는 시간 배회하던 장소가 사무실 앞이어서 자주 만나게 되었다. 조카 같은 생각이 들어 매일같이 말을 걸었고, 관심을 보이자 서로 간의 신뢰가 쌓이게 됐다. 그 후 청년은 아침 저녁으로 사무실 문을 열고 출퇴근 인사를 할 정도로 발전했다. 시간이 흘러 그는 취업을 했고, 어느 해인가 스승의 날에는 상표가 너덜너덜하게 된 피로회복제 한 병을 놓고는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 때 느낀 뿌듯함과 고마움은 복지관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보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그 병은 아마도 평생 버리지 못할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하반신 마비로 18년간 고립된 삶을 살다가 외출을 통해 새로운 삶을 찾은 중년 부인, 여름캠프에서 물에 들어가는 두려움을 극복하는데 3년이 걸린 이야기 등 정말 파란만장한 사연들이 켜켜이 기억속에 자리잡고 있다.





이렇듯 복지관을 다녀 간 그 분들은 지금도 자신의 장애와 가족의 어려움을 안고, 사회적 차별과 매일 매일 힘겹게 싸우며 살아가고 있다. 장애를 지닌 분들과 그 가족이 이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는 개인적으로 떠안기에는 너무 가혹하다. 우리 사회가 있는 장애인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 좀 더 많은 성숙이 필요한 것 같다. 장애는 특정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고 누구나 다 지닐 수 있는 것이며, ‘우리 모두가 예비 장애인’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요즈음 출근길 마주치게 되는 나뭇잎이 각각 자신의 색깔로 물들면서 한데 어울려 가을을 노래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다양한 색깔의 삶이 인정되고 서로 조화를 이루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 그전에 내 생각이 변해야 한다. 장애인의 삶은 옳던 그르던 그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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