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열매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그대!

 


이 기 우


1.

우리 몸속에서 암세포가 증식하는 과정은 놀랍기만 하다.

암세포가 자랄 때 우리의 혈관조직은 전혀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뇌의 명령에 따라 정확하게 종양을 만들어낸다. 마치 건강한 세포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계획되고 통제되고, 이미 정해진 프로그램을 수행하듯 완벽한 조직망이 가동된다. 우리의 몸은 종양을 만들어낼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뇌는 가능한 한 생명을 오래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할 터인데, 대체 그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우리 뇌가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심리적 갈등을 생리적 현상으로 전환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민망할 때 헛기침을 하거나 당황해서 진땀을 흘리거나 또는 성적 흥분으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은 심리적 갈등이 생리적으로 처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몸의 선택이다. 우리 뇌의 처방이다. 생리적 갈등은 심리적 갈등보다 한결 견디기 쉽고, 우리 몸의 에너지 소모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치명적인 종양조차도 하나의 생존전략이었던가?


동양의학의 오랜 전통과 서양의 현대의학은 질병이 우리의 생명을 구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질병이란 뇌가 심리적인 차원에서 더 이상 관리할 수 없게 된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수단이라고 한다. 갑작스럽게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암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우리의 뇌는 기꺼이 암을 선택한다는 것. 질병이 발생하면 그때부터 두려움은 사라진다. 두려움이 질병의 형태로 우리 몸 밖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심리적인 압박은 그 어떤 질병보다 견디기 힘들고, 두려움은 암보다 우리를 더 빨리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물리치료 분야에서 통용되는 격언은 모든 질병에 그대로 적용된다. “만일 당신이 아픔을 느낀다면 그것은 치유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2.

휴가철 우연히 서가에서 꺼내 든 책이 프랑스의 저명한 심리치료사 기 코르노가 쓴 ‘마음의 치유’(북폴리오 펴냄)였다. 어찌 생각하면 무더위에 지쳐 잠에서 깨어난 여름 날, 더위는 단지 마음이 느끼는 것이라는 법정스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위안을 삼던 그 열대야의 밤에 이 책을 만난 것은 우연만은 아닌 듯싶기도 하다.


이 책은 병마와 죽음에 자신을 내맡겼던 한 남자의 이야기다. 바로 저자 자신의 이야기다. 의식의 끈을 놓은 채 죽음의 경계에서 서성이던 저자는 고통스러운 자신의 체험과 여러 정신과의사, 신경학자, 심리치료사와 만남을 통해 질병의 근원을 파들어 간다.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의사들과 과학자들도 적지 않을 것이나 질병과 고통, 그리고 삶의 시련에 대한 그 심오한 통찰만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3.

우리는 병에 걸리면 모든 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질병은 자아를 궁지에 몰아넣으며 집요하게 추궁한다. 왜 왜 나여야 하지? 왜 지금이란 말인가? 대체 무엇이 잘못이지? 이처럼 꼬리를 무는 의문 속에서 우리는 마침내 고통 이면에 숨어있는 고통과 마주하게 된다.


저자는 질병의 속성이랄까 그 메커니즘을 이렇게 정리한다.

“우리 몸은 우리가 자기 자신과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우리 몸은 우리가 규칙을 위반할 때마다 불쾌감이나 뻣뻣함, 고통 등의 증상으로 우리에게 그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의 몸은 그 나름의 지혜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에게 균형이 깨졌을 때 신호를 보낸다. 질병은 우리로부터 배신당한 육체가 우리에게 대화를 요구하는 방법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질병을 단지 몸의 일시적인 변덕으로 받아들인다. 겸손하고 초라한 육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오히려 채찍으로 우리 몸을 더욱 다그친다. 우리 몸을 생각 같은 것은 할 줄 모르는 노예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질병은 단지 뽑아버려야 할 충치가 아니다. 저자는 질병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스승이라고 강조한다.

“질병은 나 자신과의 일대일의 만남이다. 그것은 병 이상인 것이다. 그것은 기회다. 질병은 자기 자신에 대해 깨달을 수 있는 기회다. 자기 자신에 대한 무지, 그때까지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다. 모든 증상은 자아를 무시하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는 자신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앓고 있는 것이다.”


비행기 추락사고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았던 한 승객은 마치 신앙고백을 하듯 이런 얘기를 들려준다. 이 승객은 만신창이가 된 육신을 돌보면서 육체적 고통은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게 해주었다고 토로했다.

“모든 것에는 작은 틈이 있습니다. 빛은 바로 그 틈을 통해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몸이 상처를 입지 않았다면, 나는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절대로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나 자신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단지 겉으로 보이는 내 모습만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 사고 덕분에 나는 내 자신의 내면 속으로 추락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날아오를 수 있었습니다….”


4.

질병은 존재의 완벽한 표현이다. 질병, 그것은 마치 운명이 당신에게 보내는 윙크와도 같다. 그것은 우리의 내면세계와 외부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신비로운 관계의 문을 두드리는 전령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표면에만 머물러 있다. 세상이라는 파도에 따라 이리저리 출렁거리며, 폭풍우 속에서 살아남고자 안간힘을 쓰며, 과거의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스스로를 헐뜯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는 너무도 강렬하게 현실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미처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다. 어디에서도 위안을 찾지 못한다. 자기 자신이 바로 사랑이며, 자신의 은신처임을 알지 못한다.



저자는 불행을 기적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우리가 계속해서 고통의 문 앞에만 서 있다면, 그 문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고통에게 말을 걸어보라. 우리의 내면에 귀를 기울여라. 자기 자신과 우정을 쌓아라.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라. 소란스럽게 구는 아이를 진정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그 아이에게 관심을 주는 것이다. 처음부터 무언가를 하려고 시도하지 말고, 해안에 부딪쳐오는 파도에 그저 몸을 맡겨라. 아무런 판단도 기대도 요구도 하지 말고 자아에 충실한 태도로 임하라. 그런 의미에서 심리치료는 자아에 대해 작업을 하는 연금술과 같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우리 내면에 살고 있는 용들을 아름답고 용기 있게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우리 시대 최고의 마음의 과학자라 할 달라이라마는 이렇게 갈파했다. “모든 것은 머릿속에서 시작되었으니 해답은 그곳에서 찾아야 한다.”


현대과학은 우리의 내면상태가 우리가 경험하는 첫 번째 현실을 구성한다고 한다. 우리의 심리상태가 우리의 현실을 만든다는 것. 무언가에 대해 강력하게 상상한다면, 그것은 이미 우리의 현실이 되어 버린다. 우리의 몸은 상상의 곤경과 실제의 곤경을 구분하지 못한다. 우리 뇌는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과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렇게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만일 상상의 스트레스가 우리의 면역체계를 약화시킬 수 있다면, 이와 마찬가지로 상상의 행복은 우리의 면역체계를 강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융이 말한 대로 ‘깨어있는 채로’ 꿈을 꿔라!


5.

고통과 시련, 그리고 질병은 우리가 자신을 잊고 있으며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우리가 발에 안 맞는 신발을 신고 있으며, 우리가 자신의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그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우리는 자신의 인생에서 단지 스쳐지나가는 관광객으로, 눈에 띄지 않는 승객으로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슬람의 수피교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옛날 어느 밤중에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는 한 기사가 있었다. 그 기사는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혹시 내 말(馬)을 보지 못했습니까?”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기사에게 차마 진실을 말해줄 수 없었다. 그 기사는 자신이 그토록 찾고 있던 그 말 위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아직도 자신이 타고 다니는 말을 찾아서 이 마을 저 마을을 기웃거리며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이 뿌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잊은 채 늘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열매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건강해야 한다? 즐거워야 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 발전해야 한다? 이 모든 기대가 당신이 삶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질병의 근원을 찾아 깊은 내면의 세계를 탐험했던 저자는 이쯤에서 숨을 고른다. 그리고 우리가 갇혀 있는 새장은 너무 작아졌으며, 우리가 활짝 열린 문 앞에서 더 이상 망설이지 말라고 충고한다. 새장 속의 횃대가 아니라 저 넓은 창공으로 훨훨 날아오르라고 채근한다. 생에 대해서 눈을 활짝 뜨라고 독려한다.


삶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모든 존재를 지지해주는 것이다. 폭군의 눈에서나 희생자의 눈에서나 똑같이 삶에 대한 욕망을 보는 것이다. 사랑, 그것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사랑, 그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사랑, 그것은 우리가 삶에서 더 이상 낯선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설혹 불행이 찾아오더라도 그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그뿐이다! 그리고 행복한 일이 생기면 최대한 그것을 즐기면 된다.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지 않던가. “여름은 여름이다! 겨울은 겨울이다!”




▲ 그림 1 <소녀와 토끼> 설명

풀밭에 인형처럼 누워있는 소녀는 마치 환영을 보듯 토끼 두 마리에 시선을 주고 있다. 어쩌면 소녀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종종 꿈이란 운명이 우리에게 윙크를 보내는 놀라운 우연의 일치를 보여준다고 했으니, 소녀는 우리의 내면세계와 외부세계를 이어주는 신비로운 관계의 실타래를 풀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토끼는 소녀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운명이나 사고의 형태로 그의 인생에 개입하고 있는 것일까.

<일러스트레이션 이상무=일러스트레이션은 미대에 다니는 필자의 아들이 그렸다. 화실의 도록에서 언뜻 보았던 유화 그림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 그림 2 <초원의 빛> 설명

인적이 끊긴 황폐한 도시의 무너진 담벽 사이로 한가로이 사슴이 노닐고 있는 초원의 빛이 비친다. 자연과 문명의 이 극명한 대비는 인류의 역사에서 오래 동안 짓눌려왔던 우리 내면의 소리, 영혼의 빛에 대한 갈증과 염원으로 다가온다.<일러스트레이션 이상무>




이 글을 쓰신 이기우님은 1960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나고, 전주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에 동아일보사 편집국 기자로 입사하였습니다. 사회부, 국제부, 문화부 기자 및 차장, 문화전문기자를 거쳐 현재 출판팀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2003년 10월부터 1년간 그날그날 발생한 사건과 생몰 인물에 관한 역사 칼럼인 [책갈피 속의 오늘]을 연재하여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칼럼 [테마가 있는 책 여행] 및 북 리뷰 기사도 담당했습니다.

저서는 [매혹과 환멸의 20세기 인물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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