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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에는 늙어가는 것도 자연스럽다

공지영(작가)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아파트라는 곳에 살았다. 그 당시 서울 시내에는 아파트 단지라는 것이 거의 없던 때였는데도 서울 토박이인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무 거리낌없이 아파트라는 생활 수단을 선택하셨던 것이다. 내가 아파트를 떠난 것은 최근의 일이었는데, 작지만 혼자 방을 얻을 수 있는 돈과 자유가 허락되자 나는 미련 없이 아파트 아닌 곳을 선택해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드는 생각은 사람이 정말 사람답게 사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흙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은 얼마 전 이곳 수유리 국립공원 산기슭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더욱 분명해졌는데, 가끔 평일 낮에 혼자서 산을 오르다 보면 할머니들이 혹은 할아버지들이 파고다 공원이나 시내의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노인들과는 무언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무엇이 다른지, 그 정체를 그 당시로서는 딱히 꼬집어낼 수 없었다. 어쨌든 세 들어 사는 연립주택에는 주인의 배려로 인해 뒤뜰에 조그만 텃밭까지 얻게 되어 나는 서울 토박이치고는 기이하게도 흙을 일구어내는 기쁨도 알게 되었다. 봄이 되자 나는 불모지처럼 여겨진 뒤뜰을 혼자서 개척해 보았다. 처음엔 꽃삽을 사서 꽃씨라도 조금 뿌려볼 요량이었는데, 이 텃밭이라는 게 말만 밭이지 사실은 집을 짓고 난 쓰레기를 저장해둔 쓰레기터나 다름없었다. 비닐봉지, 벽돌더미는 그래도 예사였는데 나중에는 쓸모없는 콘크리트 더미까지 나오는 것이었다.

 꽃삽으로는 힘에 부쳐서 철물점에 가서 삽을 사다가 콘크리트 더미를 걷어내고 퇴비를 사다가 흙심을 돋웠다. 그러면서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진기한 기쁨을 맛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흙에서 어떤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런 갈등 없이 그 향내를 들이켰다. 나는 시골에서 살아본 일도 없으니 그건 향수랄 수도 없었을 거고, 그러면 무엇이었을까… 땀을 흘리던 나를 감동시키던 그 향기는

 나는 호박과 표주박, 그리고 열무씨와 과꽃을 내 마음대로 배치해 보았다. 날마다 물을 주고 녹차를 마신 찌꺼기를 모았다가 그 물과 함께 텃밭에 뿌렸다. 싹이 나오기까지 그 초조한 기다림이라니 어느 날 푸릇한 작은 점이 흙속에서 보였다. 나는 잠까지 설쳐가며 그 싹들을 기다렸다. 내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는지 싹이 돋은 거였다. 그 싹들은 생명에 충만한 머리를 들고 지상으로 몸을 내미는 게 아닌가.

 수유리로 이사온 후, 나는 이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번은 꽃망울이 터지던 어느 봄날 오후, 시장엘 가는 길에 나를 앞서 가던 어떤 노인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마도 풍이라도 맞은 듯, 그 노인은 거동이 몹시 불편해 보였다. 그는 한 손에 지팡이를, 그리고 한 손엔 작은 약수통을 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노인은 나를 얼 걸음쯤 앞서 걸어가다가 걸음을 멈추어 섰다. 우리 동네 어느 집 담장에서 골목으로 빠져나온 수양 벚나무의 늘어진 가지마다 피어난 벚꽃을 바라보는 모양이었다.

 이상한 경외심에 사로잡혀 그 노인 뒤에서 몰래 나도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 노인의 그 터져나오는 꽃망울을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다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물론 그 다음에는 그 노인보다 더 빠른 발걸음으로 그를 스쳐지나갔지만 내 가슴은 이상하게 설레고 있었다. 나는 그 노인이 터져나오는 그 꽃망울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붙잡고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그건 아마도 생명에 대한 경이였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꽃이 가지를 뚫고 터져 나온다는 것은, 겨울을 견디고 봄마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라는 생각 마치 기독교의 창조주가 이 세상을 창조하고는 바라보기에 좋았다는 것과 같았을 그 생각 나는 북한산 기슭에서 만난 할머니들에게 내가 받은 느낌이 어떤 것이라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다. 노인들은 자연과 더불어 있을 때면 아름답기조차 하다는 것이었다. 만일 내가 그들을 아파트 단지의 인조로 덕지덕지 꾸며진 공원에서 만났다면 나는 결코 그들을 아름답다고 생각하진 못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자연속에서는 늙어가는 것조차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는 수유리가, 아직 동네 개들이 어슬렁 어슬렁 짝을 찾아 돌아다니고, 소나무가 골목에 서서 한때는 이곳이 저바람이 스쳐지나가는 산이었음을 말해주는 이 수유리가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내 아파트 생활 20여 년 동안 내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언어였다.

 <상처없는 영혼> 중

공지영 선생님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8년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후, 세상의 변화와 여성의 현퓽?투시하는 섬세한 문학적 감성과 속도감 있는 문체로 주목받아왔다. 소설집 『인간에 대한 예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별들의 들판』, 장편소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착한 여자』 『봉순이 언니』, 산문집 『상처 없는 영혼』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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