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의 오보에

이 병 규 변호사 (법무법인 다래)



제게는 사촌 누나가 한 분 있습니다. 저와는 한 살 차이이고, 어렸을 때는 저희 집과 대문을 마주보고 있는 바로 앞집에 살았습니다.


누나는 소위 왈가닥이었습니다. 덩치도 크고 힘도 세서 동네 남자아이들하고 싸워도 밀리지 않았습니다. 요즘 어느 개그맨의 유행어대로 하자면 “맨손으로 북경오리를 때려잡고 떡볶이를 철근같이 씹어먹으며 달리는 마을 버스 2-1에서 뛰어내리는” 강인한 체력과 두둑한 배짱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어느 날부터인가 저녁 해질 무렵이면 아름다운 목관악기 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 퍼지곤 했습니다. 당시에는 “리코더”라고 불리는 관악기가 초등학교에 널리 보급되어 음악 시간에 그 연주를 배워 그걸로 음악 시험도 치고 조회 시간에 합주도 하곤 했는데, 동네에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고음인 리코더와는 다른 조금 중저음의 참으로 애수 어린 음색을 가진 악기 소리였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 특이한 악기의 정체는 “오보에”라는, 당시로서는 이름조차 생소한 목관악기였고, 그것을 연주하는 주인공은 바로 왈가닥 우리 사촌 누나였습니다. 당시 의외로 음악에 취미가 있던 누나는 어찌된 영문인지는 모르나 수많은 악기 중에서 오보에를 전공으로 택하였고, 날마다 레슨에서 돌아오면 온 동네 사람들을 청중 삼아 열심히 연습에 몰두했던 것입니다. 터프한 성격의 누나가 섬세한 클래식 음악의 세계로 들어섰다는 것이 조금 뜻밖이기는 했고, 수많은 악기 중에서 왜 하필이면 오보에였을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누나는 그 후 예고를 나오고 음대에 진학하여 오보에 연주자로서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불행은 911 테러처럼 어느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불쑥 들이닥쳤습니다. 음대 졸업 후 잠시 집안일을 돕고 있던 누나가 지방 도로에서 큰 교통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차량 두 대의 정면 충돌이었고 사망자까지 있었던 큰 사고였는데 천만다행히도 누나는 목숨은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혼수상태를 헤메던 누나가 정신을 차렸을 때의 기쁨도 잠시뿐, 그 후 본인과 가족들 앞엔 기나긴 재활치료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큰 충격과 손상을 입은 누나는 사고 후 오랜 기간 입원해 있었고, 한동안은 가족과 간병인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백부님, 백모님의 눈물겨운 간호와 꾸준한 재활치료 덕분에 누나는 조금씩이나마 차츰차츰 회복을 보였고, 처음에는 말도 못하고 몸도 잘 가누지 못하던 누나가 이제는 약간의 대화와 짧은 거리의 보행이 가능한 수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물론 퇴원 후 병원과 집을 오가는 불편한 통원치료가 몇 년 동안이나 길고도 지루하게 계속되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신체기능과 지능과 언어 기능이 느리게나마 조금씩 회복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누나는 오보에를 다시 불지 못 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앞으로 언제 다시 누나의 오보에 소리를 듣게 될지 아무도 기약할 수 없습니다.


환자 중심의 재활치료 전문병원을 만들겠다는 푸르메재단의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누나를 떠 올렸습니다.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좀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재활치료를 받았더라면 지금쯤 누나가 다시 오보에를 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수백년 된 아름드리 나무도, 다 처음엔 하나의 작은 씨앗에서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씨 뿌리는 자의 역할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그러나 씨앗만 뿌린다고 큰 나무로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랜 세월 동안 좋은 토양에서 따뜻한 햇빛을 받고 시원한 빗물을 마시며 크는 것입니다. 잡초도 뽑아주고 기름진 거름도 준다면 더 튼튼하게 성장할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거목을 키우는 것은 햇님과 흙과 구름과 바람과 비와 농부의 공동작업인 셈입니다.


지금은 비록 묘목에 불과하지만, 푸르메재단도 수고하시는 많은 자원봉사자들과 후원회원들의 햇살과 빗물을 먹고 큰 나무로 무럭무럭 자라기를 기원해 봅니다. 많은 장애인들에게 새로운 생명과 건강을 되찾아 주는 크고 푸른 산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그리하여 언젠가 들어서는 푸르메병원에서 환자들이 다 같이 여는 작은 음악회에서 누나가 오보에를 다시 연주하게 되는 그날을 그려 봅니다.








필자는 법무법인 다래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으며 푸르메재단의 후원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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