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속에서 희망을 구하는 사람들

 새로운 삶을 꿈꾸는 이지선


일본 신주쿠 교엔이라 하는 공원에 가면 지선이 나무라고 이름 붙여진 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물론 공원 측에서는 전혀 모르는 사실이고, 저와 함께 그 나무를 바라봤던 목사님께서 붙여주신 이름입니다.


 그 나무는 특별한 나무입니다. 공원 안에 수 천 그루의 나무들이 모두 하늘을 향해 자라고 있었지만 그 나무는 어찌된 일인지 옆으로 누운 방향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연못을 향해 옆으로 누워있는 나무는 시원한 나무그늘 대신, 삶이 지치고 피곤한 이들에게 편안한 나무 침대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그 나무가 그렇게 나무 뿌리를 다 드러내고 자라면서 얼마나 많은 폭풍우를, 세찬 비바람을 견디어 왔는지, 어떤 세월을 지내왔는지 우리는 잘 알 수 없었지만 그 나무는 특별해 보였습니다. 그 나무는 다른 나무들과 달랐지만 분명 우리 눈에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지선이 나무입니다.


저는 대학교 4학년 여름에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에 55%,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여덟 마디의 손가락을 절단 해야 했고, 예전의 삶도, 모습도 잃었습니다. 감사하게 지금은 잃었던 평범함도 찾아가고 있지만, 2001년 가을, 그 나무 앞에 서 있던 저는 당기는 피부 때문에 눈도 잘 감지 못하고 입도 제대로 벌리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랬던 저에게 그 특별한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나무가 살아온 세월을 짐작해보았습니다.


이제 가야 할 길도, 살아갈 모습도 예전에 기대한 것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그리고 남들과도 참 많이 다른 모양으로 살아가게 되었지만, 기대와 다르고,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어그러졌다거나, 불행한 인생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늘을 보고 자라지 못하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 나무가 틀렸다고,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23년을 평범하게 남들과 다를 바 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사고로 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도 서있어도 눈에 띠는 아주 특별한 사람,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신주쿠교엔에 수천그루의 나무들중 그 나무 한그루처럼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보고 이렇게 이야기 하십니다. ‘나라면... 자살했을 꺼야.'


 지금의 특별한 모습을 하게 되기까지,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되고, 다시 지금의 모습으로 서기까지의 고통의 시간들을 자신의 일이었다고 상상해보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사실 저도 사고 나기 2달쯤 전에 TV에서 화상환자의 다큐멘터리 프로를 보면서 엄마하고 함께 이야기하면서 “저건 사는 게 아니라고... “ 울먹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몇 개월 후 TV에서 보았던 그 환자 앞에 저는 더 심한 화상환자의 모습을 하고 서게 되었습니다.


 ‘저건 사는게 아니라고..’했던 삶을 제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인간적인 제 의지로는 감당하지 못할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살아 남기 위해 이를 악물었습니다. 아픔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통스러운 시간이 훨씬 더 많은 날들이었지만 그래도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많은 대가를 치르고 얻은 다시 사는 삶은..제가 이전에 알았던 것 보다 훨씬 더 맛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고후 처음 일주일동안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의사선생님이 다가와 물었습니다. ‘혼자 숨쉴 수 있겠냐고'  제가 고개를 끄덕이니깐 잠시 후 몸속 깊숙히 박힌 것 같은 산소호흡기를 빼주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물을 주었습니다. 오랜 시간 말라있던 제 목을 축이는 그 물이 너무 시원하고 맛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물이었습니다. 많이 마시지 못하게 하는데도 저는 계속 마셨습니다. 아직도 그 시원한 맛을 잊지못합니다. 이제 겨우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진통제를 맞아야만 하루에 30분이나 잠이 들까말까한 그런 고통중이었음에도 그 물한모금에 저는 그때 ‘행복' 이란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아주 사소한 것 에서 감사함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족과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 인지... 짧아진 손이긴 하지만 두 손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게되었습니다. 살아서 맞게되는 2000년의 겨울 바람도, 밟으면 뽀드득 소리가 나는 눈도, 살아서 다시 보게되는 아름다운 가을하늘도… 모두 기쁨이고 감격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다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제게 얼마나 큰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인지도 모르고 , 얼마나 큰 감사거리인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전에는 다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하나씩 되찾게 되는 기쁨이란 정말 신나는 경험이었습니다. 이식한 피부를 뚫고 올라온 눈썹한가닥이 정말 감사했고, 친구들과 명동거리를 다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공부를 다시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간혹 이렇게 말하십니다. 지금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이, 과거의 나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 정말 진심일까...? 아마 그분들은 더 많이 가지고, 누리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제 인생이 너무나 고해이니깐 나를 너무 오래살게는 하지 말아달라고 기도한 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살아있어서 오늘도 행복합니다. 그리 오래살지는 않았지만, 인생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없는 나이이지만 고통의 긴터널을 지나오며 저는 이제 ‘사는 맛’을 조금씩 배워가는 것 같습니다.


 제 꿈은 몸의 장애와 마음의 장애로 ‘사는 맛’을 잃어버린 분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살맛나는 인생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실에서 꿈꾸었던 대로 미국에서 ‘재활상담’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보았던 그 나무처럼, 저는 친구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나무가 살아온 세월을 짐작해보았습니다. 이제 가야 할 길도, 살아갈 모습도 예전에 기대한 것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그리고 남들과도 참 많이 다른 모양으로 살아가게 되었지만, 기대와 다르고,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어그러졌다거나, 불행한 인생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늘을 보고 자라지 못하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 나무가 틀렸다고,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늘로 향한 나무가 보지 못하고 만질수 없는 것들을 누워서 자라며 연못에도 닿고, 땅과도 더 많이 맞대고 있는 그 나무는 보고 만질 것입니다.  제 삶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전에 모습으로는 만날수 없고, 이전에 삶으로는 배울수 없는 것들을 배워가며, 그 나무처럼 아름답게 느껴지는 인생이 되길 소원합니다. 그저 ‘다른’ 나무가 아니라 특별하고 ‘아름다운’ 그 나무 처럼 말입니다.



이지선


1978년에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유아교육과를 졸업했습니다. 대학 4학년이던 2000년,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오빠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얼굴을 비롯한 전신에 화상의 흔적이 뚜렷이 남게 됐습니다. 하지만 절망하지 않고 푸르메재단 홍보대사로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즐겁게 인생을 살아가는 그녀는 앞으로 장애인을 위한 삶을 위해 보스턴대학 대학원에서 장애인들의 재활상담 분야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지선아 사랑해》 《오늘도 행복합니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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