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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벨리콘 병원, 치료뿐 아니라 인생설계까지 책임지는 재활병원

""“재활환자에게 몸에 맞는 신발 뿐 의족과 의수를 병원에서 직접 만들고 있습니다.” 병원이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곳이 아니라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살아가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한다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절망에 빠진 환자들이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갈 준비를 하는 곳이라면 이상적인 병원의 모습이 아닐까.

환자 의족을 직접 제작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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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취리히 근교에 있는 벨리콘 병원은 교통사고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에게는 이런 병원으로 비춰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병원 지하 1층에 있는 보조기 제작 작업장. 환자들에게 필요한 의수족을 제작하는 공간으로 족히 50평은 넘어 보인다. 웬만한 의수족 공장 규모다. 보안경을 착용한 직원이 의족을 만드느라 작업이 한창이다. 환자의 허벅지와 닿는 의족 부분을 열심히 다듬고 있다. 관심을 보이자 가까이 오라고 손짓한다.

그는 “전자로봇이 장착된 이 의족은 몇 달 전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은 환자 것”이라며 “오늘 마지막 손질을 하면 제대로 된 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웃는다.

병원에서 적성에 맞게 분야별로 재교육

병원내 환자들이 사회 진출에 앞서 자기 적성과 능력에 맞는 재교육을 위해 기계, 전자, 금속, 목고예 등 분야별로 설치된 작업장은 10여개에 이른다. 쇠를 녹여 장식품을 만드는 곳에서부터 벽돌을 쌓고 파이프를 절단하는 건설 작업장, 사무용품이 진열된 대형 매장 작업장 등에서 어느 정도 신체기능을 회복한 환자들이 직업교육을 받는다. 작업실 한쪽에는 뇌졸중 환자의 균형감각을 키우기 위해 목재를 이용해 1.5미터 높이의 집을 짓는 작업장도 있다.

작업장의 모습

그런데 이런 시설을 갖춘 벨리콘 병원에 입원 환자가 몇 명일까. 돌아온 답은 놀랍게도 200명. 200명 환자의 재활을 돕기 위해 400명의 직원이 일한다고 한다. 한 명의 환자들 위해 의료진 한 명과 행정요원 한 명 등 평균 두 명이 일한다.

병원의 기능도 다양하다. 병원이 재활치료와 사고로 잃은 손발을 만들어주고 환자의 상해정도와 피해보상액을 산정하고, 환자의 남은 인생 설계까지 해준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병원이 자문변호사이고 재정 컨설턴트역할을 한다. 환자가 입원하게 되면 치료책임을 맡게 될 주치의를 비롯해 물리치료, 작업치료, 언어치료, 음악 및 미술치료, 심리치료의 범위가 결정되고 이와는 별도로 피해보상 및 보험 업무를 담당하는 의료 감정팀이 상담을 시작한다고 한다.

이것을 가능케 해주는 것은 벨리콘 병원을 운영하는 주체가 주바(SUVA)라는 상해보험회사이기 때문. 90년 역사를 가진 주바는 1974년 아예 의료법인을 세워 현재 스위스 벨리콘과 지웅 지역에 교통사고 전문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마케팅 책임자인 찰스 로미오 코벨트 씨는 “우리 병원의 목표는 재활치료 외에 교통사고 예방과 수술환자들이 최대한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입원한 사람들은 단순한 환자가 아니라 구매력을 갖춘 고객으로 대우받고, 병원은 컨설팅 역할(New Care Management)을 한다는 것.

인근 주택가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병동

모든 환자가 VIP 고객

병원 찾는 환자들은 주로 자동차와 낙상사고를 당한 사람들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취리히 대학병원이나 다른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사람 중 상해보험 가입자들이 대부분이다. 병실은 모두 1인실로 구성돼 있으며 환자가 입원하게 되면 앞서 말한 대로 재활치료를 위한 의료진과 행정요원, 보험관계자, 재정컨설팅 전문가가 배치된다고 한다. 환자 모두가 VIP 고객인 셈이다.

벨리콘 병원 병실과 복도

그렇다면 어떻게 병원이 운영될까. 우리 같으면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면 엄청난 의료비와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실직으로 환자와 환자가족은 서서히 하류층으로 몰락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벨리콘 병원에 입원 환자 중 65%는 다시 일자리를 찾았으며 35%는 정부로부터 연금과 수당을 받고 있다. 사고 후 33%는 삶의 질이 떨어졌지만 67%는 ‘괜찮다’고 응답했다. 질병과 사고가 인생의 나락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가 되기도 한다. 벨리콘 병원에서 재활치료와 교육을 통해 일자리를 다시 찾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환자들이 몰린다고 한다. 지난해 스위스 내 병원 서비스 평가에서 벨리콘 병원이 1위를 차지했다.

코벨트 씨

코벨트 씨는 “재활환자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감으로서 환자 본인과 가족에게도 행복한 일이지만 국가와 사회도 이들이 일을 하지 못해 치러야 하는 실업보험이나 각종 연금 등 경제적인 비용을 3배 이상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결과적으로 사회와 병원이 협력해 환자를 하루빨리 사회로 복귀하도록 하는 것이 본인은 물론 어려운 상황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게 한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년 동안 입원 1587명, 외래환자 2337명 등 3924명이 치료를 받았으며 1인 평균 입원기간은 41.5일. 2006년 병원의 매출은 5400만 프랑으로, 우리 돈으로 380억원에 이른다. 의료서비스의 질이나 인력 및 시설 유지 면에서는 벨리콘 병원을 운영하기에 부족한 금액이지만 이 병원이 위치한 취리히 근교 아르가우 칸톤(주) 정부와 중앙정부가 사회보장비를 통해 적자 부분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재활은 사회적 비용을 1/3로 줄이는 것 유럽의 병원들이 그렇듯 벨리콘 병원도 환자들에게 마치 집 같은 편안한 분위기를 내는데 최대 역점을 두고 있다. 유리로 된 본관 로비에 있는 카페에는 많은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모두 일반 복장을 한 환자와 환자가족이었다. 병원 로비에 중동사람과 인도 모습을 한 사람들도 많아 코벨트 씨에게 물었더니 “몇 년 전 파키스탄 지진 당시 다친 파키스탄 사람들을 치료하기위해 벨리콘 병원으로 우송했고 이 과정에서 따라온 현지 의사들이 정착해 머물고 있다”고 설명한다.

병원 로비에서 대화를 나누는 환자들

벨리콘 병원의 다른 특징은 특수 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들을 위한 병실을 갖추고 있는 것간호사 데니세 베티의 안내로 방문한 곳이 전신 화상을 당한 환자가 머무는 방이었다. 병실 옆에 병실보다 큰 목욕탕이 마련돼 있고 그 중앙에는 월풀식 욕조가 자리 잡고 있다. 환자는 매일 소금물로 목욕을 하면서 새살을 돋게 한다고 한다. 교통사고로 두 팔을 잃은 환자를 위해서는 병실입구부터 벽면 곳곳에 센서를 설치해 환자가 몸을 갖다 대기만 하면 기능을 하는 전등과 샤워 꼭지, 창문, 터치스크린을 이용한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다. 일반 환자 1명을 위해 이런 시설을 투자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보쿰 의료부원장은 “환자가 입원하면 전 분야의 전문가들이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방법을 통해 재활과 사회복귀를 유도하고 있고 이를 위해 가장 좋은 의료서비스를 실현하는 것이 벨리콘 병원의 역할”라고 설명한다. 벨리콘 병원이 유럽내 교통사고 환자 뿐 아니라 멀리 중동으로부터 환자가 몰리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 같다.

현재 크게 4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벨리콘 병원은 1974년 본관 건립을 시작으로 2004년까지 증축과 리모델링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병실안에 있는 욕조와 팔 없는 환자를 위한 전자센서

취리히는 비록 150만명의 인구를 가졌지만 남서부 유럽의 중심도시이다. 인근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 비해 스위스 국민들은 모든 면에 적극적이고 다혈질적인 성격을 가진것도 선진국중 비교적 높은 교통사고 발생율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취리히 외곽에 위치한 벨리콘 병원이 교통사고 전문병원으로 발전하게 된 하나의 원인임은 틀림없다.

인구 1500명의 작은 마을에 벨리콘 병원이 들어선 이후 현재는 인구 5만명의 취리히 근교에서 손꼽히는 고급주택가로 탈바꿈했다고 한다. 재활병원이 도시를 형성하고 지역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병실 창으로 보이는 스위스 초원과 멀리 보이는 알프스 산맥만 바라보는 것만으로 어느 정도 환자들이 정서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는 병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실에서 보이는 초원과 알프스 산맥

* 글/사진 = 백경학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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