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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페니히 파라데 재단

“설립자 ‘페니히’의 이름을 땄지만 독일의 작은 동전(페니히)이 모여져 낙원을 이룬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장애인에게 내 집 같은 편안한 집과 일자리를 마련하자는 거지요” 안내를 맡은 마르쿠스 크르체미엔(48)의 답변이다. 전후 굶주림과 질병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던 정신지체 어린이장애인을 위해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로 세워진 순수민간 재단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고 그는 강조한다.

히틀러 정권의 정신적인 고향이 됐던 뮌헨 지역은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나치독일의 군수공장으로 변모했다. 종전을 앞당기기 위해 연합군이 대대적인 공습을 벌이면서 도시의 절반 이상이 파괴됐고 그 영향으로 어린이 중 상당수가 극심한 정신적인 장애를 보이기 시작했다. 1948년 전쟁의 폐허 속에서 뮌헨 라디오 방송국이 중심이 돼 정신지체장애인 어린이들을 위한 첫 모금사업을 시작했다. 그 결과 2,000 마르크의 기금이 모아져 바이에른주 적십자사에 기탁됐다. 1952년 페니히(작은 동전)를 모으자는 기부운동이 바이에른 주에서 확산되면서 정신지체장애인을 위한 페니히 파레데 재단이 설립되는 결실을 낳았다.  뮌헨시 북동부 발락스트라세(Barlachstrasse)에 자리잡은 이 재단은 1979년을 기점으로 현재의 윤곽을 갖추게 됐다. 그후 1984년부터 1996년까지 22,000 제곱미터(6600평)에 걸쳐 기숙사와 문화관의 증축이 이루어지면서 종합복지타운으로 발전됐다.

페히니 파라데 재단 본부는 뮌헨 도심 한 복판에 위치해 있다. 고층빌딩을 연상하고 찾아갔는데 건물과 작은 정원이 조화를 이루는 도심 속 아파트 단지 같았다. 등교 시간인지 ‘체스트(Zest)’라고 씌여진 승합차가 부지런히 장애학생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우리 같으면 학부모와 교사, 운전기사가 한데 어울려 학생들을 차에서 내리느라 북새통일텐데 학부모와 교사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버스 운전사들은 학생들이 스스로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우리 같으면 주위 사람들이 불이나케 달려가서 도와줄 만도 한데 모두 수수방관이다. 장애학생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혼자 벨트를 풀고 휠체어를 뒷걸음으로 승합차에서 경사로를 내려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장애인 스스로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 독일 사회시스템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단 안내를 맡을 마르쿠스 크르체미엔(48)씨는 재단 건물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3층 본관으로 안내했다.

페니히 파라데 재단은 뮌헨시내와 교외에 장애인 기숙사, 작업장, 어린이 특수학교 등 모두 50여개의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가늠해보니 서울시가 운영하고 있는 장애인 시설과 맞먹는 규모다.

파라데 재단의 목표는 크게 세 가지로 장애인의 교육과 노동,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한 주택 확보, 의료와 재활이라고 한다.

재단 본부는 특수학교와 병원, 3개동의 기숙사, 행정동 및 관계자 기숙사, 강당과 레스토랑이 있는 문화관, 작업장 등 9개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안에는 크고 작은 정원이 자리 잡고 있다.


재단 본부에는 장애인 580명이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고 학생 170명, 기숙사 320명 등 1,100여명의 주로 정신지체장애인이 살고 있다. 또 이들을 위해 30명의 행정요원과 250명의 치료사 및 의료진 등 모두 1,700명의 일반 직원이 일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예산은 1억 170만 유로(약 1,580억원). 12개 작업장과 기숙사, 학교 운영비 등으로 쓰이며 뮌헨시의 지원금과 장애인 학생을 지원하는 보험회사의 보험금, 교육부의 지원금 등으로 재정의 100%를 충당한다. 부러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본부 기숙사에는 가정에서 생활하기 어려운 장애인 320명이 1인실과 2인실, 그리고 보통 4인실로 이루어진 한 아파트(Wohnung)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여기에는 도서관과 수영장, 볼링장, 탁구장을 비롯한 체육시설, 레스토랑, 우체국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한 아파트(Wohnung)는 특수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12명의 장애인이 함께 사는 곳이었다. 여러 장애 유형과 연령, 서로 다른 장애정도의 사람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같으면 성별과 연령, 장애유형을 구별해 획일적으로 살게 할 텐데 이곳에서는 함께 살며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다고 한다. 같이 살지만 사생활 보호를 위해 6평 이상의 개인 공간(방)이 배정돼있고 3~4명이 거실과 부엌, 화장실, 목욕탕 등 공동시설을 이용한다.

작업장은 주로 회사와 인근 마을에 필요한 광고지를 주문받아 디자인하고 출력하는 납품 공장이라고 한다. 다음날이 공휴일이어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퇴근했고 여성 장애인 한사람이 열심히 광고지를 포장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주로 경증 정신지체장애인들로 작업을 통해 기억과 생각을 되살리는 훈련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다.

뮌헨 서북부에 위치한 운터슐라이스하임(Unterschleissheim)에 출판과 제본소를 비롯해 뮌헨 시내에만 12개의 공동작업장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독일 장애인 작업장이 주로 닭과 돼지 등 가금류를 키우고 감자를 수확하는 농장 형태지만 페니히 파라데 재단이 운영하는 작업장은 IT와 각종 자료검색 및 저장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페니히 파라데 재단과 대기업간에 산학협동이 이뤄져 대기업 지멘스에서는 자료처리를, BMW에서는 회계장부처리를 요청하는 등 업무를 통한 연대가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독일 3대 은행의 하나로 뮌헨에 본사가 있는 히포페라인 은행에서도 재단과 함께 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IT분야에서 능력을 갖춘 장애인 중 기업에 직접 파견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기업 요청은 늘고 있지만 마이크로소프트사(MS) 처럼 회사 이미지를 위해 생색내기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컴퓨터회사 NEC은 독일에서 장애인 스포츠를 물심양면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기업 마케팅만을 추구하고 있다고 크르체미엔 씨는 분통을 터뜨린다.

기숙사 건물 1층에는 뮌헨 시내와 근교에 산재된 시설을 관리하는 행정처(Verwaltung)와 장애인중 외래 진료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진료실(Ambulant), 도서관, 재활치료를 받을 치료실, 실내체육관이 서로 거미망처럼 연결돼 휠체어를 타고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편리한 구조로 설계돼 있다.

성처럼 둘러싸고 있는 재단 건물 사이로 중원(中園)과 후원(後園)이 절도 있게 펼쳐져 있었는데 정원 한쪽에서는 어린이 병동에서 행정 일을 하는 한 여성 장애인이 책을 읽고 있었다. ‘퐁, 퐁, 퐁’ 솟아나는 분수 소리를 들으며 독서삼매경에 빠져있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본관 맞은편에는 장애인을 위한 학교가 위치해 있다. 이곳에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직업학교, 전문학교 과정이 개설돼 있으면 약 170명이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보통 뮌헨시내 일반학급의 경우, 많게는 한 반에 35명이 공부하지만 페니히 파라데 재단에 개설된 특수 학급에서는 12명이 수업하기 때문에 장애 학생은 물론 일반 학생들도 질 높은 교육을 받기위해 이곳으로 전학을 원한다고 한다.
크르체미엔 씨에게 “일반 학교에 왜 학생 수가 많으냐?”고 묻자 “독일에서는 최근 교사직을 원하는 학생 수가 급감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고 대답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초등학교 4년을 졸업하면 이수해야 하는 9년 동안의 고교과정(김나지움)을 8년으로 단축하자는 제안도 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인원이 적은 재단 내 학교로 비장애인 학생의 전학이 늘어나면서 장애와 비장애 학생 비율이 60대 40을 유지한다고 한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이들 장애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드는 비용은 국가에서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소득이 높은 학부모의 경우 일정액을 부담해야 한다고 한다. 부모들은 자녀의 장애정도와 증빙서류를 시청에 신청하면 된다.

실내 수영장을 찾았다. 수영코치와 수치료사를 겸하고 있는 50대 초반의 한스 씨가 친절하게 시설을 설명해줬다. 얼떨결에 신발을 신고 수영장에 들어가자, 면역이 약한 장애인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며 신발을 벗고 들어오라고 한다. 수영장 전면에 타일로 아름다운 그림이 모자이크되어 있다. 수영장이 마치 무슨 예술품 같다.

근육운동을 돕기 위해 장애인들이 유영을 하는 큰 풀장은 물의 온도를 31~32도로 유지하고, 수치료를 중심으로 하는 작은 풀장은 상시 34~35도에 맞춘다고 한다. 50평 규모의 작은 풀장이 장애정도에 따라 10cm부터 180cm에 이르기까지 자유롭게 높이를 조절할 수 있다니 신기하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의 경우 의자와 침대를 리프트에 매달아 유영을 하거나 물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페니히 파레데 재단은 장애인이 배우고 살아가는 공간뿐 아니라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겸하고 있었다. 다양한 형태의 작업 치료실에는 몸의 균형을 잡는 놀이 기구에서부터, 감각을 개발시키는  대형 물침대, 다양한 조명아래 빛에 반응하도록 설계된 방, 가정에 복귀하길 원하는 장애인들이 스스로 음식을 만들 수 있도록 싱크대의 조절이 가능한 주방 등 독일의 첨단기술이 장애인 시설까지 섬세하게 적용되고 배려돼 있다.

마지막으로 크르체미엔 씨가 근무하는 사무실을 방문했다. 건물 한 층 전부가 기억상실, 경련, 마비 증세를 앓고 있는 장애인을 위한 신경정신과 치료실이라고 한다. 독일에는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매년 10만명씩 증가하고 있고 이 중 30%는 반드시 주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치료를 받더라도 재취업은 고사하고 가정으로 복귀하는 것마저  힘들기 때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기관이 필요하고 이 일을 페니히 파라데 재단이 해오고 있다고 한다.

최근 들어 독일에서는 집권당인 사회민주당(SPD)이 보수당인 CDU ? CSU(기독교 민주연합 ?기독교사회연합)과 연립정권을 구성하면서 사회복지분야에 대한 예산이 축소되고 있다.  이 결과 곧바로 장애인시설에 대한 지원금 축소로 이어져 장애인 단체들은 기금을 따내기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신청하느라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독일 사회가 날로 고령화로 치닫고 있는 것도 장애인복지정책의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선거 때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권의 입장에서는 노인과 연금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정치적인 결집력이 약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멀어질 수밖에 없다.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이 위기의 시기를 맞고 있다. 이에 저항해 독일 적십자사와 디아코니, AWF(Arbeiter Wohl Fahrt), 카리타스, 파라티쉐 볼파라트 등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사회복지단체들은 연대해 독일 정부의 자세변화를 촉구하며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한 사회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들은 정부가 사회복지분야에 대해 더 많은 지원과 혜택을 주길 바라지만 세금이 증가하는데 대해서는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정부가 장애인과 노인복지에 대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길 바라지만 한편으론 이 분야의 정부지출이 과도하다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와 국회도 증액을 했다고 가장 생색을 내는 분야가 사회복지부문이지만 삭감에 가장 과감한 것도 사회복지분야이다. 이를 극복하기위해서는 정부의 과감한 결단과 사회적인 공감대 확산,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활동, 장애인 및 노인들의 정치적 연대가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크르체미엔 씨는 “앞으로 페니히 파라데 재단의 과제는 장애인의 일자리를 확보하면서 동시에 늘고 있는 노인들을 돌보고 일”이라고 강조한다. 뮌헨시 정부에서는 최근 노인 고령화 대책의 하나로 믿을 만한 사회단체에서 노인 100~1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계획서를 제출하면 부지와 건립비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재단이 지금까지 장애인 종합복지시설 사업을 집중해 왔다면 앞으로는 노인복지에 치중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백경학 /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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