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장애인과 친구들 [독일재활시설연수-제4편]

뮌헨 시내 페니히파라데재단 건물에서 열리는 클럽 “장애인과 친구들” 정기모임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약 200명 정도의 회원으로 구성된 이 모임은 올해로 31년째를 맞는다고 합니다. 장애인이 의도하는 것을 불편함 없이 할 수 있으며 삶을 즐길 수 있게끔 하는 사회환경을 만드는 것이 이 모임의 목적이라고 합니다. 회원 중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비율은 50 대 50 정도라고 하는데 정말 이날 정기모임에 참석한 분들도 반반 정도였습니다.


독일 역시도 1970년대에 들어서서 갑작스러운 산업화에 따라 여러가지 산업재해로 인한 중도장애인이 급격히 증가했다고 합니다. 그 시기에는 선천적인 시청각 장애인보다 팔이나 다리를 쓸 수 없는 지체장애인이 훨씬 많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독일 사회 전반적으로 장애인이 혼자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문제와 집 밖에서의 일상생활을 불편함 없이 할 수 있도록 이동권을 보장하는 문제에 큰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 비장애인 회원과 장애인 회원들


이 시기에 한 대학생이 장애인을 위한 정보교환, 문제 토론 등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런 모임을 만들기 시작해서 발족 6년만에 정식으로 사무실을 마련하고 탄생시킨 것이 바로 이 “장애인과 친구들”이라고 합니다. 초창기에는 50명 정도이던 것이 지금은 천여 명 규모의 기숙사를 운영할 정도로 성장했다고 합니다.

한 달에 한번씩 한가지 안건을 가지고 모여서 토론하고 각자가 해야 할 역할들을 나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차도와 인도 사이의 경계 블록을 위험하지 않게 만드는 문제 같은 것도 이 단체에서 몇 년 동안 관공서를 찾아다니면서 끈질긴 요청 끝에 얻어낸 결과라고 합니다. 사무실도 있지만 상근간사는 2명뿐이며 실제 모든 토론과 결정과 행동은 이렇듯 정기모임에서 일반 회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 모임 끝나고 나서 함께 기념촬영

이날 모임에는 열두 명 정도가 참석했는데 휠체어에 앉으신 큰 체구를 가지신 분이 현재 회장이고 뒷줄 왼쪽 빨간 티셔츠 입으신 분이 바로 전 임기까지 오랫동안 회장을 맡아오셨던 분으로 이 지역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분이라고 합니다. 이분은 양쪽 팔이 없는 상태로 겨드랑이부터 손이 뻗어나와 있습니다. 성격은 차분하고 조용조용하신데 어떤 일을 추진하기 시작하면 아주 끝을 보고야 마는 집념의 사나이^^라고 합니다.

모임 내내 눈의 띄는 꽤 준수하고 건장한 청년 하나가 있었습니다. 목 아래로는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전신장애인 옆에 딱 붙어서 과자도 먹여주고 빨대도 입에 물려주고 침도 닦아주고, 너무나 지극정성이어서 처음엔 그 장애인의 친아들이라고 당연히 생각을 했습니다. “참 효자도 다 있다. 이 저녁시간에 아버지가 모임에 나오고 싶다고 하니까 모시고 나와서 시중을 드는구나…” 하고요.


그런데 알고보니 대체복무를 하고 있는 공익근무요원이었습니다.




▲ 대체복무 중인 공익근무요원

독일에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병역의 의무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데 있어서 병영생활 대신 사회봉사활동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물론이요,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수많은 공익근무요원들을 우리도 이렇게 장애인 도우미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애인 관련뿐 아니라 사회복지시설 어디나 힘을 쓸 수 있는 남자 자원봉사자의 도움이 절실한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이쪽으로 활용하면 서로서로 좋은 일이 될 것 같아요.


(사실은 독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큰날개" 박정자대표님이 이 문제를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그 생각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을 보니 가슴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든 복지선진국에서는 이미 그것을 시행해 온 지 이미 오래"라는 생각도 꿈틀거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러니까 우리가 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들"이라는 생각도 꿈틀거리고...)


독일에서는 이렇게 공익요원으로 대체복무를 하는 쪽을 선택하면 자신의 경력에 오히려 더 도움이 된다고 하네요.


이 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기숙사는 반드시 장애인이어야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현재 자립생활을 하고 있지 못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고 합니다. 장애인, 비장애인 구별없이 통합 생활을 하고 있으며 오리를 기르거나 수공예 등의 일을 하기도 합니다. 식사는 기숙사에서 제공하는 공동식사를 하든지 숙소에서 직접 만들어먹든지 본인의 자유의지대로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설 운영 비용은 뮌헨시가 50%, 바이에른 주정부가 40%를 책임지고 있으며 나머지 10%는 회원들의 회비나 후원금으로 충당한다고 합니다.


늦은 시간에 모임이 끝났기 때문에 기숙사까지 둘러볼 수는 없었지만 끝나고 나오면서 군데군데 불켜진 기숙사 단지를 지나면서 보니 우리나라의 평범한 아파트 단지와 비슷한 풍경이었습니다.


독일에서는 이러한 시설을 모두 ‘기숙사’라고 통칭하는 듯합니다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무료숙식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숙소”라고 하는 게 가장 정확할 듯합니다. 이곳 말고도 저희가 둘러본 독일의 다른 모든 기숙사들도 마찬가지로 그 어느 곳도 ‘기숙사’, 혹은 ‘보호시설’이라고 불릴 만큼 규격화된 통제가 되고 있는 곳은 없어 보였습니다. 어딜 가나 출입이든, 생활이든, 식사든 모두가 거기에 사는 사람 자신이 가장 자유로운 상태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만약 이런 시설이 있다면 대기자가 넘쳐날 것이 틀림없는데 더욱 더 이상한 것은 그토록 좋은 시설의 재활병원이나 이곳 기숙사에도 대기자가 없이 누구든 들어오고 싶으면 당장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이런 좋은 시설이 도처에 많다는 것이겠지요. 낙원이 따로 없구나 싶을 뿐이었습니다.


다음날은 장애인을 위한 휴양소 (이곳에선 역시 ‘기숙사’라고 표현을 합니다만… 3,4일 머물다 가는 휴양시설이기 때문에 기숙사라는 말은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 제 임의로 ‘휴양소’라고 표현하겠습니다.)를 방문할 예정입니다. 이번 여행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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