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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의 삶이 달라졌어요

우리 아이의 삶이 달라졌어요
2010년 장애어린이 보조기구 지원사업, 그 이후의 이야기

1년 전인 2010년 4월, 장애어린이들이 또래 친구들과 더 많이 소통하고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며 ‘장애아동 보조기구 지원사업’을 실시하였습니다. 이 사업에는 저소득 가정의 13세 미만 장애아동 132명이 지원하여 34명이 지원받았습니다. 올 해 보조기구 지원사업을 준비하며, 지난해 이 사업으로 인연을 맺었던 어린이들과 가족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찾아가 보았습니다.

할머니가 업고 걷는 무게, 32KG

은현이는 태어난 지 100일쯤 지났을 때 뇌수막염을 앓은 뒤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은현이와 할머니가 단둘이 살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습니다. 할머니와 은현이는 좁고 험한 골목 끝에 있는 허름한 집에서 연탄에 의지해 아직도 겨울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지난 10년 동안 은현이를 업고 병원과 복지관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는 동안 은현이의 몸무게가 30kg을 넘었고, 할머니는 더 이상 은현이를 업고 이동하기 힘들어 졌습니다.
재단은 작년 4월 은현이네 집에 휠체어와 발보조기, 보조신발을 지원하였습니다. 발보조기와 신발은 은현이의 성장과 함께 진행되는 발목의 변형을 막아주었고, 휠체어는 할머니의 등을 대신해 은현이를 병원과 복지관에 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복지관에 가기도 하고(왼쪽), 학교 친구들과 나들이도 갈 수 있게 된 은현이(오른쪽)
휠체어를 타고 복지관에 가기도 하고(왼쪽), 학교 친구들과 나들이도 갈 수 있게 된 은현이(오른쪽)

1년 만에 찾아간 은현이네 집. 자리에 앉자마자 할머니는 ‘보조기구 덕에…’로 시작하는 은현이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은현이의 변화로 인한 할머니의 큰 기쁨이 가슴으로 전해 옵니다. 휠체어가 있어서 이제는 좀 편해지셨냐며 우문을 던지자 현답이 돌아옵니다. “추워도 춥다고 말 못하는 은현이의 신발도 못 신은 발을 볼 때마다 가슴이 무너졌어요. 이제는 보조기 위에 보조신발을 신을 수 있게 되어서 은현이 발만 봐도 웃음이 나와요.”라고. 10년의 세월을 업고 지내던 삶의 무게도 아이의 따듯해 보이는 신발 하나에 눈 녹듯 녹아 내리나 봅니다.

할머니는 몸이 아파 은현이에게 봄이 온 것을 보여주지 못해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 할머니 뒤로 보이는 조그만 베란다에 은현이를 위해 가져다 둔 화분에 꽃이 가득합니다. 아마도 봄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나 봅니다.

은현이 자랑을 하시며 밝게 웃으시는 은현이 할머니
은현이 자랑을 하시며 밝게 웃으시는 은현이 할머니

하루에 16시간, 민이에게 엄마가 필요한 시간

누구에게는 당연한 것이 다른 누구에게는 도전입니다. 1.7kg밖에 되지 않는 작은 체구로 태어난 민이는, 작년에 5살이 되고도 여전히 몸무게가 11kg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유난히 작고 연약한 민이는 어린이집의 발달이 빠른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결국은 그만두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민이의 어린이집 등원에 도전하고 싶어요.’라며 자전거와 자세유지의자를 신청해 왔습니다.

1년 만에 찾아간 민이는 건강하고 잘 웃는 아이로 변해있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거나 어디가 불편하면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곤 했던 민이었기에 1년 동안의 변화는 놀라웠습니다. 어머니가 “민아, 책 읽을까?”하고 말하자 곧장 의자에 앉습니다. 책을 내밀자 싫어하다가도 “미미한테 책 읽어주자.”고 하니 물개인형 미미를 앉히고 책을 펼쳤습니다. 민이의 이런 모습은 보조기구를 이용해 아이를 가르쳐 온 어머니의 남모르는 노력 덕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동안 자세유지의자에서 책도 읽고, 자전거를 타고 공원에 가서 놀기도 했다고 합니다. 복지관이나 치료실에서 사용하는 의자를 집에서도 사용하다 보니 적응이 더 쉬웠던 것 같다며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작고 느린 우리 민이지만 앞으로 잘 자라 무시당하거나 상처받지 않고, 민이에게 알맞은 작은 자리 하나가 주어져 사회를 위해 한 몫을 해낼 수 있으면 참 좋겠어요.”라며 어머니는 걱정과 바람을 함께 말씀하셨습니다. 그 작고도 큰 바람에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물개인형 미미에게 책을 읽어주는 민이(왼쪽), 직접 만든 해바라기 꽃도 매만져봅니다.(오른쪽)

11살, 걷는다는 것의 의미

27주 만에 태어나 뇌병변장애를 갖게 된 탓에 재훈이는 다리 힘이 약하고 움직이기 힘듭니다. 그 탓에 휠체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유난히 자라버린 키가 걱정이었습니다. 사용하던 휠체어가 너무 작아져 발도 끌리고 자세도 불편하게 돼 몸에 변형까지 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참 클 나이의 재훈이에게는 크기 조절이 가능하고 안전한 휠체어가 꼭 필요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휠체어는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의료급여 48만원을 보태도 살 수 없을 만큼 비쌉니다.

어머니의 신청으로 재단은 휠체어와 목발, 그리고 손으로 잡아 상체 힘에 의지해 걸을 수 있게 해주는 ‘워커’를 지원하였습니다. 1년 만에 찾아간 재훈이는 의자에서 떨어지듯 무릎으로 내려와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워커는 학교에 있다며 기어서 거실로 나옵니다. 워커가 없었다면 재훈이가 학교에서 어떻게 화장실에 가고 음악실에도 가고, 또 어떻게 친구들과 마주보고 수다를 떨 수 있었을까요?

재훈이는 팔을 이용해 몸을 지지하다 보니 또래 중에 팔 힘이 가장 세다며 밝게 웃으며 팔씨름 결투신청을 해옵니다. 이젠 워커로 화장실도 가고 걸터앉아 친구들과 이야기도하며 장난도 친다고 합니다. 참 다행스럽고 기쁜 일이었습니다. 워커를 이용해 친구들과 나란히 걷게 되면서 자신감까지 되찾았나봅니다.

어머니는, “휠체어가 생겨 편하지만, 언제까지나 제가 재훈이를 데리고 다닐 수는 없어요. 재훈이가 커서 많은 것을 보고 싶어 할 때, 내가 힘들어 아이가 원하는 만큼 움직일 수 없을까 두려워요.”라며 마음을 털어놓고, 워커로 열심히 연습해서 혼자 걸을 아이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내비추셨습니다. 그런 간절한 마음 때문에라도 재훈이는 열심히 노력해서 무한한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아이가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듭니다.

2011년, 다시 시작합니다.

장애어린이들이 작아지는 휠체어 걱정 없이 안심하고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도록, 그래서 그 꿈도 함께 커질 수 있도록, 작고 느리더라도 함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모두 우리의 몫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장애인과 장애어린이의 어머니가 홀로 그 짐을 짊어지기에는 너무 무겁습니다. 국가차원에서 보조기구 구입을 보조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필요한 보조기구를 구입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럽거나 현실적이지 못한 부분이 많습니다.

더 많은 장애어린이들이 보조기구를 통해 더 큰 꿈을 꿀 수 있도록, 우리들의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은현이 할머니가 은현이를 위해 가꾸신 베란다 꽃밭에서 봄이 시작하듯, 장애어린이와 장애인, 장애인 가족의 행복에서 우리 모두의 행복도 시작되리라 믿습니다.

*글,사진=이예경 배분사업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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