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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마라톤의 우승자는 여러분입니다

가을이 짙어가는 11월 1일 한국에서 온 5명의 장애인 마라토너들이 아름다운 맨하탄 거리와 센추럴파크를 달려 40주년을 맞는 뉴욕 마라톤대회에서 감동의 완주를 했습니다.

29일 뉴욕에 도착한 한국장애인선수단은 뉴욕특파원과 가진 기자간담회에 이어 31일 이번 뉴욕대회에 참가 선수들과 축제형식으로 달린 펀런행사에 참가했습니다. 드디어 11월 1일 오전 10시 출발하는 대장정이 열렸습니다. 올해 마라톤에서 한국 선수들의 선전을 지켜본 뉴욕시민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역주를 진심으로 축하했습니다.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김용기 선수가 경기용 휠체어 부분에 출전해 아시아인으로는 두 번째로, 휠체어부분 선수중 열 번째인 2시간 14분의 기록으로 결승점인 뉴욕 맨하탄 센추럴파크에 운집한 시민들의 박수를 받으며 골인했습니다.

이어 전기사고로 두 팔을 잃은 김황태씨가 가슴에 태극기를 붙인 채 골인을 했고 시신경 망막색소변증이라는 희귀질환으로 31살에 시력을 읽은 신현성씨, 청각장애인 이수완씨가 잇따라 스테이튼 아일랜드와 브롱스, 퀸스, 부르크린, 맨하탄 등 뉴욕시티내 5개 지역을 달려서 결승점에 들어왔습니다.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김용기 선수가 경기용 휠체어 부분에 출전해 아시아인으로는 두 번째로, 휠체어부분 선수중 열 번째인 2시간이어 전기사고로 두 팔을 잃은 김황태씨가 가슴에 태극기를 붙인 채 골인을 했고 시신경 망막색소변증이라는 희귀질환으로 31살에 시력을 읽은 신현성씨, 청각장애인 이수완씨가 잇따라 스테이튼 아일랜드와 브롱스, 퀸스, 부르크린, 맨하탄 등 뉴욕시티내 5개 지역을 달려서 결승점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이날 처음으로 출전한 푸르메재단 홍보대사 이지선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씨는 2000년 대학4학년때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오빠차로 귀가하다 음주차량의 추돌사고로 전신화상을 입었습니다. 30여차례의 수술과 위험한 고비를 여러번 넘겼지만 이씨는 이에 굴하지 않고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 보건복지부에서 인턴을 하며 푸르메재단에 들렸다가 뉴욕마라톤 참가를 제안받고 흔쾌히 이날 출전한 거지요. 그런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지선씨가 마라톤에 대비해 운동연습을 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과다한 체력소모가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도 알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지선씨는 새로운 삶에 도전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첫 고비는 3킬로미터 지점이었습니다.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이 먿을 정도의 고통이 왔을 때 한강성심병원 중환자실에서 함께 어려운 순간을 보냈던 김황태씨가 나타났습니다. 김씨는 절뚝거리는 이지선씨를 보고 “우리가 중환자실에서 함께 죽을 고비를 넘겼잖아요. 포기하지말고 한발 한발 빠르게 걸어보세요!”하고 격려했습니다.

이때부터 지선씨는 보폭을 빠르게 하면서 때로는 뛰고 지치면 빠르게 걸으면서 결승점을 향해달렸습니다.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한국 교민들과 외국인 선수들이 나타나 “이제 거의다 왔어요. 힘내세요”하고 외쳤습니다.

지선씨는 결국 붉게 물든 단풍이 검은색 어둠으로 덮인 뉴욕 맨하탄을 뛰어서 7시간 22분의 기록으로 감격적인 골인을 했습니다. 이 시간 스탠드와 골인지점에 몰린 300여명의 시민들은 태극기를 앞세운채 결승점을 향해 달려온 이지선씨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말 그대로 감동의 순간이었습니다. 10킬로미터 정도를 달리다 포기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푸르메재단이 주최하고 에쓰오일이 후원한 이번 대회에 값진 승리는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 추운날씨와 난코스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완주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점은 참가한 다른 선수들은 물론 국내서 450만명의 장애인들에게도 작은 희망이 됐습니다.

이날의 마라톤 우승자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역주한 장애인 선수단과 국민 여러분입니다.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글/사진=최성환 푸르메재단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