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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부탁해] 휠체어 타고 풀칠 가위질… 뮌헨 호크리드 병원은 미술수업 중

 

[기적을 부탁해]
휠체어 타고 풀칠 가위질…뮌헨 호크리드 병원은 미술수업 중

[어린이 재활병원의 미래를 보다]上 유럽 어린이병원 내 수업

 

《 재활치료와 직업교육을 같이 받으며 자립을 준비할 수 있는 곳. 장애아 부모의 마음도 돌봐주는 곳. 본보와 푸르메재단이 ‘기적을 부탁해’ 캠페인을 통해 꿈꾸는 어린이재활병원의 모습이다. 독일 스위스 미국을 찾아 푸르메 어린이재활병원의 미래를 그려봤다. 》

‘FC 바르셀로나, 메시는 스피드가 빨라서 좋아, 호날두는 멋있어, 10000$$, 쿵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오늘의 그림 주제다. 열네 살쯤 돼 보이는 소년은 도화지 가득 축구 선수 이름을 썼다. 돈을 좋아하는 모양인지 지폐도 여러 장 그렸다. 또 다른 남학생은 풀칠하랴 가위질하랴 정신이 없다. 가위질은 교통사고 이후 불편해진 손가락을 훈련하는 ‘교정’ 프로그램이란다. 기자를 보더니 장난스럽게 쿵후 시늉을 한다.

교실 안에선 남학생 세 명이 단출하게 수업을 받고 있었다. 풍경은 여느 중학교 교실과 다르지 않다. 아이들이 다리에 깁스를 했거나 휠체어를 타고 있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 ‘교육은 치료만큼 중요한 재활프로그램’

오랫동안 병원에 다니다 보면 학교를 빼먹기 일쑤다. 학교생활에 대한 흥미도 잃어버린다. 이 때문에 유럽의 어린이병원은 병원 안에 학교를 둔다. 독일 뮌헨 호크리드 어린이청소년재활병원 헤르만 마이어 원장은 “어린이병원들은 치료만큼 교육에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호크리드 병원에서 매일 170명이 공부한다. 학업 수준에 따라 그룹을 나눠 각각 가르친다. 160개의 병상에 입원한 아이뿐 아니라 근처에서 통원 치료를 하는 학생들도 ‘병원 내 학교’에 다닌다. 병원은 남부 독일에 있지만 재활훈련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북부 독일에서도 찾아온다.

교사들은 모두 교사 자격증이 있다. 아픈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특수교육을 받은 교사가 대다수다. 이곳의 교육시스템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지난해 일반 유치원 교사 500여 명이 이곳에서 연수를 받았을 정도다. 마이어 원장은 “아이에게 치료는 긴 인생의 어느 한 부분에 불과하다”며 “치료 때문에 또래가 얻을 수 있는 경험을 누리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 ‘병원은 신나는 놀이터’

뮌헨 어린이재활센터의 벽면은 곳곳이 그림액자로 채워져 있다. 유화, 연필화, 수채화 등 종류도 다양하고 꽃과 가족 등 소재도 풍부하다. 미술관에 온 듯한 느낌이다. 이 병원 의사인 코이크츠 씨는 “아이들의 집중력을 높여주기 위해 그림 치료를 한다. 작품은 모두 액자에 넣어 전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음악 수업이 이뤄지는 방에는 다양한 길이의 고무호스가 널려 있었다. 뭐하는 데 쓰는 물건일까…. 바로 그때 음악치료사가 호스를 잡고 휙휙 돌렸다. 속도를 내니 호스의 길이에 따라 제각기 다른 음이 나왔다. 여러 호스를 한꺼번에 돌리자 화음이 만들어지는 듯했다. 코이크츠 씨는 “음악이 재미있는지 수동적인 아이들도 이것만은 자꾸 해보려고 한다. 아이를 즐겁게 해 마음을 여는 게 좋은 치료법이다”라고 말했다.

스위스 취리히의 슈피탈 어린이재활병원은 건물 외벽 한 면과 계단 통로 곳곳에 암벽 등반을 할 수 있는 플라스틱 손잡이를 만들었다. 재활훈련을 받는 아이들이 즐겁고 쉽게 운동할 수 있도록 공간을 재구성한 것.

이 병원은 1층, 2층이란 표현이 없다. 코끼리 층, 원숭이 층, 카멜레온 층 등 동물그림을 이용했다.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숫자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동물 모양으로 표기할 경우 더 잘 기억할 수 있다는 것.

이 병원 꼭대기 층에는 종을 울릴 수 있는 긴 끈이 있다. 재활훈련을 마치고 퇴원하는 아이에게 이 종의 끈을 잡아당기도록 한다. 꼭대기의 오래된 종이 ‘댕∼’ 울린다. 조용한 시골 마을 전역으로 이 소리가 퍼져 나간다. 병원은 “아이 한 명 한 명의 퇴원이 기쁜 일인 만큼 온 마을에 알리라는 뜻으로 종을 치게 하는 것이다. 온 마을이 한 아이의 퇴원을 축하해 달라는 뜻도 있다”고 밝혔다.

○ ‘몸과 마음을 다 같이 치료’

유럽의 어린이재활병원은 신체의 불편함만 치료하는 곳이 아니다. 선천적 발달장애뿐 아니라 후천적 발달장애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호크리드 병원 마이어 원장은 “휴대전화와 같은 전자기기를 쓰는 청소년 가운데 또래 집단보다 말을 잘 못하는 아이들이 매년 25%씩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에 대해서는 언어장애 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 최근에는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증상부터 거식증, 비만, 자폐증에 이르는 심리적 질환이 많아지고 있다. 재활병원의 심리치료 중요성이 점차 커지는 추세다.

호크리드 병원 복도에서 만난 10대 청소년들은 겉보기에는 평범하고 쾌활했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상처 때문에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이었다. 살찌는 것이 너무 싫어 먹은 것을 다 게워 내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폭식을 하는 아이들에게는 요리 수업을 듣게 한다. 직접 쿠키를 굽게 하며 음식 제조 과정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도록 하려는 의도다. 놀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치료다. 마이어 원장은 “한국도 점차 어린이와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육체적인 치료 못지않게 아이들의 심리치료를 위해 병원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뮌헨·취리히=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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