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기적

옥한흠 (사랑의교회 원로목사)




사랑의교회를 건축하자마자 한 젊은 부부가 예배를 나왔다. 젊은 부부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 이유는 매주 경기를 하는 정신지체 아이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팔 다리도 부자유스러운 듯 부부가 안아주어야만 자세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젊은 부부는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조심스러워하는 눈치였지만 성경 말씀을 듣고 찬양을 하면서 밝고 행복한 얼굴이 되는 것이었다. 남편은 중등부 학생들을 가르치는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기 시작했다. 그후 그는 사업을 모두 접고 신학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우리 한나를 통해 제가 해야 할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정신지체 아이들을 가르치는 주일학교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사람들은 장애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하지만, 그 순수한 아이들이야말로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더 큰 기쁨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고 믿고 잇었다. 장애인 주일학교를 지원할만한 여력이 없는 상태였지만 교회는 의욕적인 젊은이가 비전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기로 했다. 남편은 91년 우리 교회 전도사로 부임했다.


장애인 주일학교로 시작한 사랑부



▲ 사랑부에서 공동 작업한 벽화


‘사랑부’라 이름붙인 장애인 주일학교는 개설 4개월 전부터 교사를 모집하고 훈련하기 시작했다. 장애아동의 행동특성이 다양하기 때문에 그들을 이해하려면 교사가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고 했다. 소중한 생명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시간도 가졌다. 누구랄 것도 없이 눈물을 흘리며 교사들의 영혼이 먼저 변화됐다. 사랑부는 예배실도 없었던 터라 교육관 5층에 있던 다른 부서의 공간을 빌려 사용하게 됐다. 그 곳은 복도 끝에 있는 구석진 방이었다.




어느 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어두침침한 복도가 근사하게 바뀌었던 것이다. 복도 벽 한가득 동물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은 노아의 방주에서 온갖 동물들이 뛰어나오는 광경이었다. 사랑부 교사와 장애학생들 모두가 힘을 합쳐 매일 복도의 긴 벽 위에 페인트로 그린 것이었다. 젊은 전도사는 정신지체, 발달장애 아동들에게 시청각교육도 할 겸 사랑부의 연합을 위해 거대한 벽화를 그리게 했던 것이다.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어두컴컴했던 그 곳은 교회의 명소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구경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사랑부 사람들은 일요일뿐만 아니라 주중에도 수시로 모여 교제를 나누었고, 모이면 헤어질 줄 몰랐다. 교사들의 헌신은 일요일 하루에 그치지 않았다. 사랑부 아동들의 행동 특성을 잘 알고 있는 교사들은, 아이들을 돌보느라 지친 부모들을 쉬게 해주려고 수시로 학생들을 집으로 데려가 재웠다. 이곳저곳으로 데리고 다니며 구경시켜주고 먹을 것도 사주며 놀아주었다. 좋아서 한 일이었지만 일상생활 하나하나에 훈련이 필요한 정신지체, 발달장애 학생들에게 그것은 세상을 배우고 익히는 좋은 교육이 됐다. 특수교육에서 말하는 ‘사회적응훈련’이 되었던 것이다.


교사들의 헌신적 사랑


▲ 사랑의 복지관 장애인 친구들


시간과 정성을 아끼지 않는 교사들의 사랑은 장애학생들을 변화시켰다. 아이들은 사랑부에 오는 날을 기다리게 됐다. 예배시간 한 시간 전부터 와 기다리는 아이들도 생겼고, 매일 찾아와 사랑부 예배실을 들여다보기도 있었다. 글자를 알아볼 수도, 뜻도 알 수 없는 편지를 열심히 써서 선생님에게 주기도 하였다. 표정 하나 없던 아이가 웃을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은 것만도 큰 기쁨이었다. 그 아이들이 예뻐서 또 맡은 아이가 새롭게 변화하는 모습이 신나서 사랑부 교사들은 아이들 자랑을 입에 달고 다녔다. 처녀 선생님이 “우리 애가 말이야. 우리 애들이 지난 주엔...” 이렇게 말하기 일쑤여서 “결혼하셨던가요?” 라는 어리둥절한 질문을 받기도 했다.


어느 선생님은 맡은 발달장애 아동이 안정을 찾지 못하고 어수선하게 돌아다니자, 예배드리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아이를 업고 놀이터에 갔다. 아이는 한 시간이 넘도록 등에 업혀 칭얼대다가 마침내 잠이 들어 축 늘어졌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등허리가 뜨뜻해졌다. 살펴보니 새로 산 실크 원피스가 오줌으로 젖어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선생님은 아이의 어머니에게 다짐에 다짐을 두었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석은 안돼요. 예배시간 내내 업고 있어도 좋으니까 빠지지 말고 꼭 오세요.”


지금이야 발달장애가 무엇인지, 정신지체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그 때만 해도 “애 교육을 어떻게 시켜서 저 모양이야”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교사들의 헌신은 부모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아이들이 방안을 홀딱 뒤집어놓아도, 음식을 먹으며 침을 흘려도, 안아주고 냄새나는 얼굴에 뽀뽀를 해주는 동지를 얻은 어머니들은 교사들과 아름다운 교제를 더해갔다. 어머니들끼리도 성경공부 모임을 갖고 싶어했다. ‘학부모 다락방’이 만들어졌다.


다락방에 참석한 어머니들은 우리 교회 평신도 성경 인도자들인 ‘순장’들과 성경말씀을 통해 삶을 나누는 값진 체험을 하게 되었다. 순장들은 장애아동을 둔 어머니들의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 함께 웃고 함께 우는 사람들이 되어주었다.


▲ 사랑의 복지관 전경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 이리저리 헤매 다니며 가슴속에 쌓아뒀던 딱딱한 응어리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어머니들은 자녀의 육신적 장애가 자신의 영적 장애를 깨닫게 해 주는 도구임을 깨닫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살고 싶었던 너무나 인간적인 생각들이, 까맣게 몰랐는데 영적 장애였다는 걸 눈안개 걷히듯 깨닫게 됐다. 세상적인 이치로는 결코 풀어내지 못할 연약함의 신비이지만, 자녀의 장애가 곧 축복의 통로라는 사실도 터득하게 됐다.



장애를 보는 눈이 달라지자 상처 가득한 어머니들의 마음은 치유되기 시작했고, 얼굴은 봄꽃처럼 활짝 피었다. 어머니들이 받았던 축복은 향기가 되어 멀리 멀리 퍼져나갔다. 주일학교 사랑부는 이름 그대로 사랑이 가득하여 치유와 회복의 열매가 많이 나타나는 곳이 됐다.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장애아이들이 늘어나자 사랑부에서는 일요일뿐만 아니라 주간에도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줄지어 들어왔다. 사랑스런 우리 아이들이 조금만 더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조금만 더 집중적인 치료를 받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모습으로 발전할 거라는 희망의 소원들이었다.



영적 치유로 두터워지는 사랑의 공동체


사랑부 사람들은 간절한 소원을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사랑부에는 특수교사도, 사회복지사도 있어서, 이 소원은 점점 구체적인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일요일 하루가 아니라 매일 장애인들에게 전문적인 복지사업을 펼치는 장애인복지관을 세우는 것으로 꿈의 청사진이 만들어졌다. 나는 우리 교회의 비전을 떠올려 보았다. ‘가르치는 교회, 전파하는 교회, 치유하는 교회.’ 우리가 장애인복지관을 세운다면 치유하는 교회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교회 사람들이 크게 팔 벌리고 장애인들을 얼싸안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것이야말로 지역사회 안에서 우리 교회가 꼭 감당해야 할 사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회와 상의해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해 복지사업을 펴나가기로 결정하였다.


사랑의교회 사회복지재단이 설립되고, 97년 사랑의복지관이 세워졌다. 그 후 사랑의복지관은 사랑의교회에서 하는 좋은 복지관이라고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 복지사역을 배우러 오는 곳이 됐다. 서초구에서는 우리 교회의 복지관 운영 능력을 신뢰해 반포종합사회복지관까지 위탁운영을 의뢰했다.


교회와 주차장을 사이에 두고 있는 사랑의복지관이 생기고 나서 우리 교회 정경은 달라지게 됐다. 복지관을 다니는 장애인 친구들은 골목길을 지키고 있다가 낯익은 사람들이 나타나면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보통 사람은 하루에 한 번씩만 인사를 하지만 이 친구들은 열이면 열, 매번 처음 만나는 것처럼 아주 신나게 인사를 한다.


▲ 사랑샘 카페의 장애인 일꾼과 지도교사▲ 장애인들이 맛있는 빵을 만드는 사랑의 베이커리


새로 부임해오는 목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처음엔 이 인사세례에 당황스럽다가도 점점 더 장애인 친구들의 해맑음과 친근함에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것이다. 더구나 오랫동안 익은 내 얼굴이 교회 마당에 나타기라도 할라치면, 넉살좋은 친구들은 춤추듯 달려와 팔이 떨어져라 악수를 해대고 ‘옥한흠 목사님’이라며 부르며 아는 체를 한다. 그럴 때마다 난처하기도 하지만 어찌나 즐거워지는지. 내 사무실로 올라가는 길에 1층의 가장 좋은 방, 통유리로 볕 잘 드는 친교실을 살짝 들여다본다. 앞치마를 두른 장애인들이 진지하게 차 주문을 받고 있다. 이 곳은 우리 교회 사람들이 담소도 나누고 자유롭게 성경공부도 하는 장소였는데, 장애인 직업재활에 효과적이라는 말에 ‘사랑샘’이라는 카페로 꾸며놓은 곳이다.

사랑샘 카페에서는 모든 게 좀 느리다. 장애인 친구들은 열심히 일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다른 곳보다는 좀 어색한 점이 있다. 말도 느리고, 행동도 느리다. 간혹 주문한 녹차 대신 오렌지주스가 배달되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느림을 보면서 피에르 쌍쏘가 말한 느림의 철학을 공감하게 될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연약함으로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께서 사랑샘 카페에 오셔서 우리들의 조화로운 삶을 보시고 흐뭇해하실 모습도 떠오른다.


카페의 일꾼들은 자부심 가득한 태도로 복지관에서 장애인 친구들이 직접 만든 빵을 팔기도 한다. 찻잔을 조심스레 탁자에 올려놓으며 더듬거리며 수줍게 말하는 “맛있게 드세요”라는 인사를 듣고 있노라면, 순박한 장애인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와 말 그대로 손님인 나는왕이 되는 것 같다. 그들은 많은 것을 해야 하고 높아져야 하며 빨리 가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발상의 전환을 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순수하지 못한 우리들에게 깊은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좋은 선생으로 존재한다. 연약함은 한계와 이기심을 스스로 자각하게 만드는 동력이므로, 연약한 장애인을 우리 가운데 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임에 틀림없다.


개인이나 공동체는 한계를 받아들일 때 점차 자유로운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 가정이나 교회나 사회가 연약한 사람을 보듬는 사랑을 실천할 때 행복한 공동체, 하나가 되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속해있는 공동체마다 연약함의 신비를 간직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