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나눔의 토스트맨 "희망을 팝니다" [국민일보]

희망을
굽는 사나이

새벽 4시50분. 한 사나이가 거울을 보고 3뻐(기뻐
바뻐 예뻐)를 외

치며 미소 연습을 한다. “너는 할
수 있어” “너라면 꼭 해내고야 말거야”라고 말한
그는 성경 잠언을 읽은 후 “주님! 이 손에 솜씨와
맛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한다.

서울 무교동 코오롱 본사 옆 1.5평의 스낵카에서
매일 아침 토스트를 굽는 ‘석봉토스트’의 김석봉(48·반석성결교회
협동전도사) 사장의 출근 풍경이다. 그의 연 매출액은
1억여원. 외환위기 때보다 더한 불황이 계속되고 있는
지난해 체인점을 60여개 늘렸고 무교동 효령빌딩 12층에
11명의 직원을 둔 회사까지 설립했다.

그러나 연간 억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그는 9년째
구청 단속반의 살벌한 단속 가운데 어렵사리 스낵카에서
장사를 하고 있으며 서울 남가좌동의 전세집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
가족 생활비를 제외한 수익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오전에 장사를
하고 오후에는 장애인복지관 천사원 등을 방문해 따끈한
토스트로 사랑을 전하며 독거노인과 소년소녀 가장들을
돕고 있다. 또 새 삶을 찾는 이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 체인점 가입비와 보증금 없이 ‘석봉 토스트’
체인점을 내주고 있다.

그가 억대연봉의 신화를 이루기까지에는 숱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15세 때부터 자동차정비소 세차장 과일행상
웨딩촬영기사 등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단한 삶을
살아왔다. 유치원 교사였던 아내 하영숙(46)씨를
만난 후 그녀의 뒷바라지로 신학공부를 할 수 있었고
어린이 사역자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7년 아내가 셋째 아이를 출산한 후부터
아내에게만 가정경제를 떠맡겨 놓을 수 없었다. 오전에
일하고 오후에 봉사할 수 있는 토스트 장사가 제격이었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새벽에 일을 나가면서
곤히 잠들어 있는 올망졸망한 아아들과 아내를 바라보면
눈물이 울컥 솟구쳤다. 단속반에게 쫓기고 멱살을 잡히며
서러움을 눈물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도
가난했고 나도 가난하다. 분명히 나의 아들들도 가난할
텐데 내 대에서 가난을 끊어야지. 열심히 일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가졌다. 토스트 하면
‘석봉’이란 이름이 떠오르게 하리라고 다짐했다. 요리사
가운과 모자를 착용하고 토스트에 대해 공부했다. 야채로
맛을 낸 소스를 개발했다. 성공이었다. 그의 스낵카는
어느새 무교동의 5대 명물로 자리잡았고 관광가이드북에까지
상세히 소개됐다. 그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토스트를
판매할 정도로 프로의식을 가졌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이야기는 일본 매스컴에 소개돼 ‘석봉 토스트’의 맛을
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는 일본인 관광객들도 생겨났다.
석봉토스트의 신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그에게 또 한번의 고난이 찾아왔다.

상처가 아닌 약속

2002년 11월. 몸무게가 급격히 줄었다. 병원에서
‘급성 위암’이란 진단을 받고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당시 아내는 넷째 출산을 앞둔 만삭의
몸이었다. 그는 아내에게 “수술하면 괜찮대…”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만삭인 아내,어린 자식들 셋.
신앙이 유일한 생명의 동앗줄이었다.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얘들아 기도하자. 아빠는 해낼 수 있어. 하나님의
뜻은 분명히 있을 거다. 모두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자”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아빠,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며
울먹였고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포옹하며 “사랑한다”고
고백했다.

그해 12월 위 75%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몇 개월 요양한 후 다시 일을 시작했다. 항암제 때문에
몇 차례 쓰러지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가족을 기억하며
이겨냈다. “가족의 기도는 내 삶의 응원가입니다.
요즘엔 운전을 하다가 감격해서 혼자 잘 울어요. 다시
살려주셔서 감사하고 가족과 함께 행복을 누릴 수 있어
너무 감사하기 때문이지요” 그의 몸의 수술자국은 ‘내가
너를 붙들어 줄 것이라’는 하나님의 또렷한 약속이었다.

김씨는 요즘 특별한 기도를 한다. 어린이 사역을
위한 전문 캠프장 설립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
사역에 대한 비전을 품고 있는 그는 이제 푸른 복음의
꿈을 버무리는 희망 전도사로 살길 원한다.

이지현기자 jeehl@kmib.co.kr [국민일보
2005-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