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소통하는 법 [월간 샘터]

세상과 소통하는 법

근육이 굳어지는 병을 앓고 있는 민식의 꿈은 계곡물 소리를 듣는 것.
그 소망을 알게 된 주위 사람들이 그를 계곡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고 물이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다.
눈가에 눈물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는 오른손 손가락 두 개를 꿈틀거려 세상과 소통했다. ‘나는 행복하다.’
초등학교 때 ‘근디스트로피’란 희귀병에 걸린 김민식 씨(24세)는 줄곧 방에서만 누워지냈다. 근디스트로피란 근육이 점점 수축되고 마비되면서 보통 스무 살을 넘기지 못하고 호흡 곤란으로 죽는다는 무서운 병.

‘얼굴이 붓고 배가 불룩 튀어나오더니 몸이 급속하게 여위기 시작했다. 하체가 점점 굳어가고 피부는 화상을 입은 것처럼 겹겹이 벗겨졌다. 밤마다 통증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얼마 안 있어 나는 걸을 수조차 없게 되었고 학교도 그만두어야 했다.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시련이 주어졌을까? 나는 아직 다 자라지도 않았는데, 내가 앞으로 몇 년밖에 살 수 없다니…. 나를 볼 때마다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훔치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파 밤마다 이불을 적시며 하염없이 울었다.’

그러던 어느 날 라디오에서 잔잔한 음악과 함께 흘러나온 시를 듣고서 그는 큰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좋은 시를 써서 자신처럼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주변의 사물들이 새롭게 보였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도 사랑스러웠고 나뭇가지 끝에 걸린 햇살, 뒷산 떡갈나무 숲의 향기, 이름 모를 새들이 불러 주는 노래를 마음으로 보고, 만지고, 들을 수 있었다. 몸은 비록 병마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지만 영혼은 점점 맑아지는 것 같았다.’
그는 1998년에 마침내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첫 시집을 엮어 낼 수 있었다. 요즘은 ‘하늘을 닮은 너에게’라는 제목의 세 번째 시집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 나는 많이 힘들다. 마르다 못해 갈비뼈만 앙상한 내 몸뚱어리. 제대로 앉을 수도 컴퓨터를 켤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도 없는 내 처지가 한탄스러울 때도 있다. 텅 빈 방의 고요함, 마음속에 가라앉은 앙금을 모두 쏟아 내고 싶은 외로움,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그 때마다 나는 공책을 열어 시를 쓰면서 내게 주어진 슬픔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 가고 있다.’

그 날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그는 삶을 받아들일, 아니 사랑할 힘을 얻었다.

 

*사진 캡션
눈은 보이지 않지만 손이 있어 행복한 어린이들. 서울 종로구의 서울맹학교 어린이들이 손으로 지구본을 더듬어 우리나라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손으로 세계를 만나고 있는 이 아이들은 과연 어떤 꿈을 키우고 있을까?
*여기에 실린 사진은 푸르메재단이 지난 9월 5일부터 10일까지 서울갤러리에서 개최한 ‘장애인 사진전’에 소개된 작품들입니다. 경민대학교 사진학과 조승래, 박찬학 교수와 학생 20여 명으로 이루어진 촬영팀은 전시를 위해 30여 개 장애인 단체와 기관을 찾아다니며 6개월간 촬영했습니다. 장애인 하면 얼핏 떠오르는 아픔과 고단함의 이미지가 아닌, 현재에 만족하는 기쁨이나 새로운 삶에 적응하려는 재활의 의지를 사진에 담았습니다.
푸르메재단은 인간적이고 자연친화적인 민간 재활전문병원 건립을 추진하는 비영리법인입니다.
홈페이지 www.purme.org
전화 (02)720-7002

글/ 박혜란 기자

<샘터> 2005년 10월호 ‘응원가를 불러 주세요’